끝내 거부할 수 없던

by sogongnyeon

가진게 없을수록 고집은 왜 이렇게 세질까.

인도여행을 다녀와서 원래 할려고 했던 것들이 사라졌다. 한국에 남기로 했고 여기서 미래를 위해 차곡차곡 쌓아가야했다. 집주인의 도움 없이는 어디에서도 잘 곳이 없었고, 먹을 식량도 없었다. 그러니까 집주인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바빴을텐데 집주인 덕에 내일도 떠올려볼 수 있는 삶이였다. 늘 알아서 잘해야한다고 생각해왔던지라, 그렇게 사는게 내 방식이라고 믿어왔던터라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가야한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사실 따지고보면 내가 온전히 '나'로서 '나'에게만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집주인의 든든한 지원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안정적인 관계가 있어서 가능한 부분일텐데 그땐 그런게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인도가서 난리치려는걸 그만두고 원래 소망대로 시골에 눈을 돌렸다. 경제적인 이유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면에서 지금의 나는 가진게 너무 없다는걸 알았다. 못 미더운 나를 앞세워 어떻게든 달려가야하는데 어디에 깃발을 꽂아야 하는지 몰랐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니 어떻게 해야할지도 알 수 없었다. 어떤 질문을 해도 혼자 달려나가는건 어렵고 계속 머리가 복잡해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온 생각이 다 꼬이자 모든걸 밀어내고 싶었다. 집주인의 차려주는 스페셜 밥상, 자주 체크하는 나의 기분, 항상 깨끗한 내 방을 보며 부담스러웠다. 괜찮아. 내가 알아서할게.. 라는 말을 내뱉고 또 뱉었다. 쪼그라질때로 쪼그라진 나를 보며 집주인이 내미는 손길을 자주 내쳤다. 어떻게든 혼자서 해결해볼거라고 끙끙거리며 짱구를 이리로 저리로 굴리다 마.침.내 인정했다.


'지금, 나는 가진게 없구나.'


당장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경제적인 상황도 온전치 않고, 앞 뒤 안보고 달려갈만큼 용기가 있는 사람도 아니였다. 그러니까, 집주인의 안정적인 생활환경과 지원아래 어떤걸 할 수 있는지 차분히 생각하고 아장아장 걸어가야하는 시간이다. 답이 없는 내 주제를 파악하고 나가서 뜀박질을 했다. 땀 한 방울마다 온 몸 구석구석에 있는 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뱉었고, 땅에 발이 닿을 때 마다 집주인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냈다. 꼬박 한시간을 달리고 돌아와 집주인에게 고백했다.


"나 혼자 모든걸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서 많이 밀어냈는데 미안해. 중요한건 드디어 지금 내 상태를 인지했다는거야. 나는 집주인의 도움 없이는 생활할 수 없어. 내가 원하는 미래도 마음대로 그릴 수 없어. 나는 집주인이 주는 도움을 죄책감 보다는 무한한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어. 이제 주는거 다 받고 자식 노릇 즐기면서(?) 열심히 살게. 고마워."


고백인지 독백인지 집주인에게 주절거리며 내 마음을 말했더니 집주인도 만족한 표정으로 즐기라며 화답해줬다. 속이 다 시원했다. 이렇게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그렇게 꽁꽁 싸매고 돌다니. 그 날부터 개운한 마음으로 한 지붕살이가 시작됐다.


집주인의 매력은 과연 거절할 수 없었다.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일이 내 것이 아닌 기분이랄까. 독립해서 따로살 때 가끔 집주인네에 오면 미안하면서도 은근 즐기던 영역들에 대해 여전히 자유로웠다.


(밥 먹기 전) 밥먹고 설거지 내가할게~

(밥 먹은 후) 후앙ㅇㅇ 좀 자고 할까아아앙~하지마~ 나중에~내가할궤에에~

(밍기적거리다보면 이미 설거지 완료되어있다)


혼자 살면 해야하는 빨래, 밥 차리는 일, 쓰레기통을 비우고 청소하는 일, 설거지 등 그 모든 일거리에서 나는 무관한 사람이 되었다. 밥을 다먹고 설거지 정도는 내가 해야하니까 부엌으로 얼쩡거리면 '걸거치니까 비키라'는 사랑스러운 말로 나는 쫓겨난다. 옷은 깨끗한데 양념이 튀어서 일부만 손빨래하면 되는 부분들은 퐁퐁을 발라두고서 슥- 세탁실에 두게된다. 거부할 수 없는 집주인의 손길들에 자연스럽게 젖어들었다. 너무 편하다. 너무 편해서 미안하다. 근데 너무 편하다. 하숙생 추가로 당연히 집주인의 일거리가 늘어날 걸 알기에 그걸 막으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이건 내 영역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율적으로 따져도 더 잘하는 전문가가 하는게 낫지. 내가 알짱거려봤자 제대로 일처리도 안되는데 뭐하러 그러나. 집주인도 '내가 하면 5분인데, 니가하면 20분. 누가 하는게 낫겠노?' 라고 말하는 효율적인 사람이라서 후퇴하기 좋은 영역이기도 했다.


그래도 월세 안내는 하숙생으로서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기로했다.

거부할 수 없는 집주인의 매력을 즐기는 대신 가끔 잘 먹어보지 못한 요리를 해주기로 다짐했다.

집주인 세대에서는 낯선 마라샹궈나 코코넛 우유가 들어간 카레라던지 건강한 빵이라던지 뭐 그런 모든 것들.

효율적으로 집주인이 잘하는건 주인이 하고, 집주인이 생소한건 하숙생이 하면서 지내기로 마음먹으면서 또 한번 개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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