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잉. 어제, 오늘 돌아다니면서 유심칩 가게 말고는 한국인의ㅎ도 본 적이 없는데 놀랬다. 그는 최소자본으로 여러 나라를 여행 중인 20대 청년이었다. 그와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 다음 여정을 알게 됐다. 심...? 뭐요? 시마? 시라? 심라? 그게 뭔데요? 아, 여기서 좀 떨어져 있는 북쪽이요. 야간 버스 타고 넘어가는 거예요? 오.. 언..언..제.. 가시는데요? 아 북인도. 너무 좋죠. 저도 가고 싶긴 한데 고민 중이라서요...
북쪽에 있는 라다크를 가고싶어서 인도에 왔는데 지금은 폭설때문에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정확하게는 비행기로는 이동 가능하다. 겨울이라 도로가 얼고 위험하기 때문에 버스로 육로 이동은 어렵다고 했다. 인도 가기로 마음먹고 품은 첫 로망이 마날리에서 라다크까지 버스타고 이동하는거였다. 풍경 보면서 웅장한 마음을 가득 안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그거 다들 아시려나요. 현실은 힘들어서 징징거리겠지만 온 몸이 지친 와중에 만나는 풍경이 얼마나 황홀한지 아니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 떠다니는건 그때 느낀 감정과 풍경 한조각 뿐이니까. 품어온 첫 로망을 날려먹고 어쩔 수 없이 남인도로 눈을 돌려 갈 곳을 열심히 찾았다. 어제 그 커플을 보내고나서 눈알 빠지게 구글맵에 살았다. 맵에서 인도 아래쪽을 바라보면서 아무 지역이나 찍어보고 아래쪽에 뜨는 그림과 간단한 설명을 보고 패스, 오케이를 결정했다. 해외로 장기 여행가면 루트 정할때 해오던 방식이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정보가 상세하게 나와서 하지도 않은 내 여행을 빼앗긴 것 같다. 억울한 기분이 든다. 랜덤박스였던 내 물건을 투명망토로 미리 보는 기분이랄까. 알 수 없는 기대감과 설렘을 빼앗기고 싶지않아서 블로그 검색은 잘 안하는 편이다. 아, 네 사실은 귀찮아서 그렇습니다.
남쪽은 고아말고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 때문에 구글맵으로 겨우겨우 루트를 만들었다. 커플이 떠난지 두시간이 지나도 나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이유다. 선뜻 결제까지는 못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당장 내일도 떠날 수 있기에 어느정도 해결했다는 생각으로 호스텔로 왔다. 일단 델리는 떠나야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려던 찰나에 로비에서 세계 여행중인 한국인을 만난 것이다. 아, 에스파파가 부릅니다. 참 다행이야. 몇일 뒤에 북인도를 갈 생각이라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기회라 생각했다. 기회가 왔는데 잡아 안 잡아. 죽자고 잡아야지. 안 그래요?
그래 뭐. 억지로 남인도 가야지. 그래야지. 꾸역꾸역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한국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혼자 야간버스는 엄두가 안 나지만, 둘이라면 조금 더 안전할거라 생각했다. 두 손 가득 공손한 마음으로 물어봤다. “혹시.. 이동만 같이해도 될까요? 가서는 알아서 갈 길 가는걸로요.” 그 친구가 흔쾌히 동의해줘서 드디어 북인도를 가게 됐다.
이 친구는 유투버로 활동하고 있어서 편집을 다 해야만 다음 도시로 이동할 수 있었다. 편집 역량은 본인의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움직였으므로 정확히 말 할 수는 없지만 이틀정도 걸릴 것 같다고 알려줬다. 나는 이틀이건 3일이건 함께 이동만 해주신다면 기다리겠다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나에게 다시 주어진 델리 여행시간. 델리의 뜨악스러운 모습을 보며 도망가기 바빴던 내가 과연 이틀동안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걱정 되었지만 이틀이 지나면 진한 보상을 받을테니 가치있는 기다림이라 생각했다. 이때까지만해도 나는 델리를 피하려하고 도망가기 바빴다. 그때 도망갔다면 이 재미있는 일들을 어찌 겪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