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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gongnyeon Aug 02. 2023

그러니까 여기는 인구 세계 1위 인도라니까

“으아아악!!! 얼 유 코리안?!?!?!?!?”

나는 놀라며 예스..라고 했고, 그들은 한참 동안 대한민국을 외쳤다. “코리아?! 코리아!! 코리안!!!!!!” 진짜 존경합니다 BTS형님들. 자랑스러운 k-pop덕에 한국인은 이 곳에서 연예인 놀이를 할 수 있다. 소녀들은 릴스를 찍다가 나를 보고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떠나는 시간까지 함성을 외쳐줬다. 괜히 으쓱거리며 공원 주변을 다시 돌았다. 그러다 반대편에서 오는 젊은 커플을 만났다. 믿을만한 현지인이 아닐까 싶어 공원 출입문을 아냐고 물어봤더니 본인들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서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걸어봤는지 공유하다 문이 있긴 한 걸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 중 누구라도 찾으면 소리 한번 질러주자면서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조금 걷다보니 어떤 아저씨가 따라왔는데 뭐 이젠 모두가 알거라 생각한다. 뻔한 질문과 대화였다. 그래도 출입문을 찾느라 지치고 지겨울즈음에 아저씨를 만나서 나쁘지않았다. 나는 당하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편하게 얘기를 했다. 그래서일까 아저씨가 지쳐서 작별인사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너 되게 좋은 사람 같은데, 여기 나쁜 사람 많아. 사기꾼도 많으니까 조심해.” 이거였고, 나는 속으로 '너도 사기꾼이였잖아. 됐어 임마' 하며 입 밖으로는 "유 투, 해버나이스데이"를 외쳤다.

 

아직도 문 열 생각이 없어보이는 상점들 속에서 목적없이 걷다 그 커플을 다시 만났다. 두번째 만남이 이렇게 반가울줄이야. 끝끝내 출입문을 찾지 못한 우리들은 이 공원 들어갈 수는 있는거냐며 농담을 주고받다 자연스럽게 걸음을 맞추었다. 커피 한잔 하자며 커플이 구글맵을 열었다. 현위치에서 가장 가까운곳을 찾아 걸어갔다. 그들은 만난지 얼마 안 된 대학생 커플이였고 여자친구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에서 꿀이 흘러 넘쳐서 속이 달아죽을 지경이였다. 도착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먹고 개운하게 씻어내야지. 도착한 카페는 과연 쾌적했다. 아, 자본의 공기와 냄새. 에어컨이 빵빵하고 밝은 조명에 우드 테이블, 깨끗한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커플은 맛있는 음료를 하나씩 고르고 나에게 거기서 제일 비싸고 달콤한 커피를 추천해줬다. 내가 혼자왔으면 절대 먹지않을 금액이였다. 인도에서 커피 한잔에 6,000원을 쓰라고? 친구들아 나는 하루 예산 숙박비가 10,000원인 사람이야. 제일 싼거를 찾는데 그 친구들이 이거 진짜 맛있다고 먹어보라며 권했다. 속으로는 울었지만 겉으로는 세상 신나는척 오케이를 외쳤다. 지갑을 꺼내는 와중에 그들은 이미 계산을 해버렸다. 나는 그 금액을 다시 확인하고 지폐를 꺼내 주려는데, 노우노우노우. 코이띠까네이를 계속 외치는 그들. 응? 무슨일이지. 계산대 앞에서 이러는거 한국이야 뭐야. 커플이 계속 괜찮다길래 미안한 마음에 혹시 빵 먹을래? 디저트 이거 먹을래? 저거 먹을래? 묻는데 괜찮다고 한다. 혹시 너네 나 털려고 그런거야? 왜 그러는거야. 나는 얼떨떨한 마음에 오히려 경계심이 들었다가 그런 내 모습이 바보 같아서 조금 편하게 마음을 내려 놓았다. 내 마음이 왔다갔다 하는 와중에도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묻는 내용과 대화의 방식이 달랐다. 길거리에서 만난 그들은 대답을 듣기보다 본인들이 말하기 바빴고, 언제든 종착역인 인포메이션 센터로 가기위해 해야 할 질문들을 퀘스트처럼 하고 있었다. 이 친구들은 자유롭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내 대답을 끝까지 들어줬다. 그리고 본인이 관심있는 노래나 영화를 알려주며 취향을 공유해줬다.

 

커플에게 델리에서 살다보면 차와 사람이 많고, 시끄럽고, 복잡한게 익숙하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까지 많은 인구를 살면서 본 적이 없어서 놀랐다며 이 정도의 복잡함은 처음이라 조금 무섭기도 하고 예민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커플은 복잡하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계속 지내다보니 익숙해졌다고 답했다. 나는 길거리에 걸으면 누구를 만나든 인포메이션 센터로 연결되는게 웃기기도 하고, 정말 길거리에 사기꾼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더니 그들은 그래서 대접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 여기에 이상하고 나쁜 사람도 많은데, 델리가 꼭 그렇지만은 않아. 착하고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도 있어. 인도에서는 항상 게스트 이즈 골드야. 손님이 귀한데 너가 겪는 일들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 그 기억을 바꿔주고 싶어서 이렇게 소박하게나마 대접하고 싶었어.”

 

아, 게스트 이즈 골드. 지나가면서 사기꾼들에게 인포메이션 센터 만큼이나 많이 들었던 문장이였다. 게스트 이즈 골드를 다르게 활용하는 이 친구들을 보면서 '그래, 인도는 사람이 많지. 참 넓은 세상이야.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는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끝까지 크로스백을 몸에서 내려놓지 않았던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내일 델리를 떠날 예정이라 갈 곳을 알아보고 기차를 예매해야 한다고 했고, 그들은 편하게 하라며 다른데 놀러갈거라했다. 커플은 비싸고 맛있는 커피를 사주고 같이 사진 몇장 찍고 대화를 좀 하다 쿨하게 갔다. 즐거운 여행하고, 다음에 델리에 오면 또 연락하라고, 그때 보자면서 떠났다. 완벽했다. 즐거운 만남과 나만의 시간. 델리에 와서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인도 오기 전에는 라다크를 여행하다 네팔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북인도나 네팔을 좀 떠돌다 돌아와야지 생각했는데, 델리에서도 쉽지 않은 인도를 보고 과연 혼자 북인도를 갈 수 있을지 의문이 커졌다. 그래서 사막이 있는 중부지역을 여행하다 남쪽으로 내려갈까 생각하며 기차를 알아봤다. 선뜻 결제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곳은 위쪽인데 겁나서 밑으로 가야한다고? 고작 그 이유 때문에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하지 않는게 마음에 걸렸다. 모든 에너지를 끌어당겨 고민했더니 출출해졌다. KFC로 이동해 치킨을 먹었다. 산책하듯 걸어와 커피 마시고, 익숙한 음식을 먹고, 배 두드리며 공원을 돌아본다는 오늘의 계획은 나름대로 수월하게 풀렸다. 물론 그 과정에 사기꾼인지 알 수 없는 청년을 만나고, 커플을 만나 대접을 받기까지 했지만. 큰 맥락으로 보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집에 돌아가려는데 또 따라붙는 다양한 아저씨들 덕에 지쳐버려서 걸어갈 수 없었다. 나는 어플로 릭샤 시세를 파악하고서 서있는 릭샤기사와 딜을했다. 생각보다 가격을 후려치지 않아서 오히려 당황했다. 가는동안 그는 호스텔이 어딘지 몰랐나보다. 계속 멈춰 다른 기사들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봤다. 마지막에는 기사들이 모여있는 짜이집에 세우더니 다같이 모여 대토론을 했다. 이렇게까지 성실하게 집에 데려다주신다니 황송하옵니다. 숙소가 코 앞인데 꽉 막힌 도로를 보며 그는 화내지 않았다. 내게 내리라고 눈치주지도 않았다. 뭐지 이 친절함. 숙소를 데려다주기위해 고군분투해준 기사에게 고마움을 담아 돈을 더 드리고 여기서 내리겠다고 했다. 

 

로비에 도착해 버려뒀던 가방을 챙겨 배정받은 방으로 이동했다. 어제는 혼성 도미토리, 오늘은 여성전용 도미토리다. 방을 같이 쓰는 친구들과 인사하고, 짐을 풀었다. 서로 이름을 알려주고 어떤 여행을 하는지 얘기를 나누다 창문하나 없는 방이 답답해서 로비로 나갔다. 창문이 있어도 마찬가지라는건 로비에서 알게됐다. 스탭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뒤에서 익숙한 언어가 들렸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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