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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gongnyeon Jul 31. 2023

퍼킹인디아

호스텔에 도착했을 땐 정말 집에 가고 싶었다. 내가 왜 왔을까. 앞으로 맨 백팩과 등으로 이고 지고 온 50리터 배낭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인천공항 노숙으로 출발해서 베트남에서 경유 대기를 하고 겨우 도착한 델리 공항에서 또 노숙. 이 모든 게 새롭고 즐거운 척 나를 속여가며 도착했다. 당장 내가 원하는 건 익숙한 내 침대에서 포근한 이불을 걷어차며 일어나는 아침이다. 그걸 왜 차버리고 개고생 찾아 삼만리일까. 안온한 일상을 즐기는 게 그렇게 지겹나? 그게 그렇게 어렵나? 나는 지독한 병에 걸린 게 틀림없다며 주절거리다가도 탓할 사람은 오로지 나인 걸 알아차리고 잠의 세상으로 도망갔다. 찝찝해서 잠 못들줄 알았는데 어라? 잘 자버렸네. 일어나니까 배고프고 난리네? 자고 일어나니 모든 침대의 주인이 다 사라지고 없다. 아, 저 구석에 시체처럼 자고 있는 한명만 빼고. 저 친구 일어나면 같이 밥먹자고 해볼까? 아 영어로 머리쓰기 싫은데 지금 너무 피곤한데 어쩌지. 혼자 오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 친구 일어날 생각이 전혀없다.


생각을 멈추고나니 다시 들리는 비둘기 떼 소리, 알 수 없는 괴상한 소리, 벌레가 없을리가 없는 방 컨디션이 나를 지배했다. 어두운 곳에서도 느껴지는 침구과 수건의 위생상태였다. 과연 세탁을 했을까 싶은 침구와 수건을 바라보다 씻으러 화장실로 갔다. 밝은데서 보니 수건에 뭐가 묻어있다. 오 역시 내 감각 살아있어. 나이스. 아니 근데 이런것조차도 기대하면 안되는 인도인걸까. 휴지걸이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바닥은 실외와 뭐가 다를까 싶은 청결이였다. 아, 물론 따듯한 물도 안나온다. 그래도 괜찮다. 휴지는 사면되고, 화장실은 크록스 신고 들어가면 되고, 내가 가져온 수건을 쓰면 된다. 근데 24시간 쉬지않는 괴상한 소리와 비둘기 울음소리는 내가 감당이 안된다. 일단 여기를 나가기로 마음먹고 부스럭거리자 시체처럼 자던 친구가 일어난다. 여행자들의 스몰토크는 늘 같다. 여기 언제왔니. 얼마나 머무르니. 스몰토크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밥먹으러 가자는 빌드업을 세우고 있었다. 때 마침 호스텔 직원이왔고, 나가서 먹을걸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여기서 파는 메뉴판을 건네주고 갔다. 오, 이 호스텔의 인재인 것 같다. 시체처럼 자던 친구는 아르헨티나에서 왔고 이번이 두번째 인도 여행이라고 했다. 나는 첫번째 여행이라 모든게 어렵고, 힘들고 피곤한 일들만 가득한 것 같다고. 진짜 솔직히 말하면 너무 집 가고 싶다고. 내가 여기 왜 왔는지 모르겠다고. 장난인척 진심을 가득 담아 말했더니 이 친구가 “어 맞아. 퍼킹 인디아”라고 외쳤다.


와, 나 사실 그 말 너무 하고 싶었다 친구야. 반갑다 친구야. 이 친구가 4개월 전 처음 인도에 왔을 때 똑같은 마음이였다며 지금은 힘들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도 적응할거고 나중에는 그리워질거라 했다. 과연 그럴까. 글쎄. 본인을 보라며 결국 4개월도 못 가 그리워 오고 말았다며 돈워리라고 말했다. 비 해피~로 장단을 맞춰주려는 순간 호스텔 오면서 겪은 상황에 대해 퍼킹 인디아를 외쳤다. 음, 인도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곳이 확실하군. 두번째 여행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 친구는 나에게 고수 같았는데 진짜 베테랑 가이드 같은 모습도 보여줬다. 인도에서는 돈이 정직한 나라니까 너무 싼 가격을 피하는게 좋다고 했고, 어느 화장실을 가든 휴지가 없으니 호스텔에서 휴지를 받아서 가방에 넣고 다니라는 알뜰한 팁까지 알려줬다. 여러 꿀팁을 듣고나니 어느새 내 손에는 그녀가 쥐어준 휴지 뭉탱이가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나는 긴장을 풀었고, 이 친구는 잠을 깼다. 같이 내려가 거실에서 호스텔 밥을 시켰다. 처음 먹어보는 짜빠띠와 커리였다. 우리가 아는 커리맛 보다 더 카레같은 맛이랄까. 더 자극적이고 진하고 강렬한 맛이었다. 엄청 색다른 맛이 아니라서 와! 인도다! 라는 감각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로비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 친구들이 있어서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다. 영어 쓸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던 난 오, 예스. 굳굳을 반복하다 밖으로 나왔다.


매번 장기 여행을 떠날때면 현생을 떼놓고 온 거라 실시간으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을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데이터나 유심칩을 절대 구매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법칙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인도는 달랐다. 나와 여행 결이 비슷한 친구들도 여기서 살아 남고 싶으면 유심칩을 꼭 사야한다고 했다. 조언이나 추천을 넘어선 강요였다. 여행을 잘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사라니. 이들이 이토록 말하는데는 이유가 있겠지. 가격 비교가 귀찮았던 나는 한국인에게 유명한 판매처를 찾아갔다. 나빈 가게에는 한국인이 있었고, 그 뒤로는 다양한 한국 컵라면과 과자들이 진열 되어있었다. 역시 어딜가나 작은 대한민국을 만들어내는 한국인들 멋져요. 괜히 으쓱해진 마음으로 당당하게 인사를 건넸다. 하이가 아닌 안녕하세요. 유심칩을 사고 처리하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30분이면 뚝딱 끝날줄 알았던 일들이 오래걸린걸 보니 아, 여기 인도였지. 라는 생각이 훅 들었다. 거기에는 나처럼 금방 도착한 아저씨, 유투브를 하고 있는 30대 남성, 인도에 살듯이 자주 오는 의문의 남성이 있었다. 의문의 남성은 여기서 이것저것 도와주고 방문한 한국인들의 100만가지 질문에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사업을 하시는건지 인도에 친구도 꽤나 있는 것 같고, 정체는 모르겠으나 나도 꽤나 도움을 받았다. 인도를 밥 먹듯이 오가는 저 분은 뭐가 좋아서 계속 오시는걸까. 나도 과연 인도의 매력을 알게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대로 앉아있고 다른 손님들은 계속 찾아왔다. 또 다른 한국인 도움으로 환전을 쉽게했다. ATM 출금대신 모바일 뱅킹으로 한국 돈을 보내드리고 현찰로 루피를 받았다. 한국을 벗어나면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와주고 싶고, 말 한번 보태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이런것도 애국심일까. 살아남기 위한 본능일까. 서로 좋은 여행하라며 훈훈한 인사를 뒤로하고 다시 길거리로 나왔다. 복잡했지만 견딜 수 있는 정도였다. 서울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델리정도면 중수 정도 레벨일까? 사람도 많고, 시끄럽고 복잡했지만 강남역을 떠올려보면 나쁘지 않았다. 강남역과 다른 점은 모두들 나만 쳐다보고, 나한테 말걸려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그런다던데. 내가 너무 인상 찌푸리고 다녔던걸까? 나에게 말을 걸거나 의식할정도로 빤히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여행 준비가 착착 되어가는 느낌이다. 베테랑 가이드의 팁도 얻었고, 유심칩이라는 안전 장치도 생겼고, 길거리가 생각보다 피곤하지 않았다. 오늘 할 일을 다 마치고서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면 괴상한 소리와 베드버그에 불안한 마음으로 몸을 뉘어야겠지만 이틀 내내 공항과 비행기에서 쪽잠을 잔 나는 선택권이 없었다. 일단 좀 더 자면 괜찮아질거야. 인도야 우리 출발 나쁘지 않다. 앞으로도 쭉 잘 부탁한다. 잘 지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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