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gongnyeon Aug 01. 2023

야 이건 호스텔 문제가 아니잖아

아침에 호스텔을 옮기려고 걸어가는데 어떤 사람이 옆으로 다가왔다. 어디로 가냐는 질문에 친절히 답을 했더니 본인이 길을 안다고 말했다. 아, 이거 많이 들었는데. 길 알려주고 돈 받을 것 같은데. 내 머릿속에 있는 데이터를 꺼내며 그에게 말했다. “나도 어딘지 알아. 여기 구글맵 보고 잘 가고 있어. 고맙지만 너 도움은 괜찮아.” 활짝 웃으며 여유로운 척 말했다. 이 친구는 “오케이”를 외치며 여전히 나와 보폭을 맞추고 방향도 틀지 않았다. 괜히 불안해져서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 걸었다. “너 왜 이쪽으로 가? 나 아는데?” 나는 호락호락한 사람이라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웃음기를 살짝 빼고 말했다. 그랬더니 본인은 친구 만나러 가는 길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머쓱해진 나는 괜히 헤헤거리며 똑같이 “오케이”를 외쳤다. 그러자 훅 들어오는 질문 공세. 인도에 처음 왔니, 며칠 동안 있니, 뭐할 거니 등등 나의 모든 계획에 대해 질문을 했다. 나는 거짓말로 일관했다. “인도에 처음 왔지만, 내일이면 내 친구가 올 것이고, 우린 함께 라다크에 있는 다른 친구 집에서 관광할 거야” 한마디로 지금 여기서 관광할 생각이 없고,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 건드리지 말았으면 좋겠고, 네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 못 할 것 같으니 이만 안녕할까? 라는 말을 잘 포장해서 대답했다. 이건 완벽한 거짓말이었다. 나는 아무 계획이 없었으니까.


이 친구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짜이를 먹어보았냐고 물었다. 대답할 새도 없이 인도에 왔으면 짜이를 먹어봐야 한다며 짜이를 마시자 했다. 나는 금방 호스텔에서 짜이를 먹고왔고, 지금 호스텔 체크인 때문에 정신없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대답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좋은 하루 보내 안녕”하고서 지나가는데 나를 애타게 부른다. 헤이 헤이 헤이. 시계를 가리키며 한시간 뒤에 짜이 마시자고 한다. 폰 번호를 주는 것도 아니고, 한시간 뒤에 내가 안 나타나면 그만이고 난 짐만 넣어놓고 바로 나갈꺼라 마주칠 일도 없을테니 “오케이, 씨유” 하고서 호스텔로 갔다.


무거운 배낭을 이고지고 호스텔 로비에 가보니 모두가 자고있다. 인도에서 아침 9시는 많이 이른 시간이구나.  원래 지냈던 호스텔을 도망치듯 나와서 최대한 빨리 왔더니 이 모양이다. 일단 리셉션 안에 가방을 다 던져두고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여길 택한 이유는 루프탑이 절반이였다. 숙소 컨디션은 다 비슷할거라 생각했고, 사람많은 길거리를 매번 나다니기는 싫고, 이 거리 근방에 도망갈 카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 한번 외출하고 루프탑에서 죽치면서 편집도 하고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며 지내야지 생각하며 결제한 새로운 숙소였다. 루프탑으로 올라가는 복도에 창문이 깨져있다. 오, 일단 빠른 실망 좋았어. 루프탑으로 들어가니 누가 호다닥 숨는다. 뭐야, 고양이가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도망가는척 다시 돌아왔다. 아.. 처참하다.. 루프탑.. 그래 루프탑. 깨진 창문에서 내가 많이 내려놨다 생각했는데 아니였네. 나 그래도 계속 기대했구나. 뭐 루프탑 맞긴 맞았다. 하늘이 바로 위에 있었으니까. 그 옆에 또 비둘기떼가 있고, 어제 누가 먹다 남은 음식이나 맥주캔이 나뒹굴고 있었을 뿐이다. 괜찮다. 어서 도망가자. 델리가 문제구나. 그럼, 일단 델리를 뜨면 다 해결될거라 믿고 또 믿었다.


여행자들이 많이 머무는 빠하르간지라는 동네에서 2km정도 떨어진 곳에 코넛플레이스가 있다. 거긴 프랜차이즈가 많은 부자 동네라고 들었다. 나는 더 쾌적하고 조용한 곳이겠거니 기대하며 스타벅스가 있는 그곳으로 향했다. KFC도 있다니까 익숙한 음식을 입에 넣고, 프랜차이즈의 청결한 기운을 느끼다보면 마음이 편해질거야. 지도로 보니 코넛플레이스 근처에는 큰 공원이 있었다. 자, 그럼 스타벅스에 가서 앞으로 어디를 여행할지 살펴보고, 당장 내일 떠날 수 있는 곳을 찾아야지. 미션을 완료하면 익숙한 행복을 찾아 KFC를 갔다가 배 두드리며 공원 가서 산책하고 지나가는 사람 구경이나 해야지. 아주 완벽하다며 혼자 킬킬대며 걸어갔다. 2km면 30분 정도면 되니까 주변 동네 구경도 할 겸 걸어갈려고 했다. 코넛플레이스 가는 길이 낮에는 안전하고, 밤에는 180도 바뀌어 위험한 곳이라고 들어서 아침 일찍 나섰다. 아침에 걸어갔다가 해 지기 전에 똑같이 걸어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구글맵에 코넛플레이스를 치고 길찾기를 눌렀다. 숙소에서 나와 10분정도 지났을까 코넛플레이스 가는 큰 길가로 겨우 나왔다. 가는 동안 나는 여러명을 만났고, 같은 대화를 했다. 대부분 순서만 다를 뿐 질문지와 종착역은 같다.


“인도에 몇 번째야?”

“어디 여행할거야?”

“얼마나 여행할거야?”

“혼자왔어?”


질문공세 끝에 마지막 내용은 다 똑같았다. “저기 가면 인포메이션 센터있는데 지도가 있거든. 거기서 니가 도움 많이 받을거야. 뭐하면 좋을지 다 나와있어. 인도에서는 손님을 귀하게 여겨서 알려주는거야.”

나는 오케이 오케이 땡큐를 외치면서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릭샤, 오토바이, 소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집 나선지 10분밖에 안 되었을 때 깨달아버렸다. 2분거리를 10분 걸리게하고, 땀을 온 몸으로 뽑아내는 인도에 왔구나. 그래, 이제 진짜 인도 여행 시작이구나. 그들의 모든 질문지와 종착역이 같은걸로 보아 나는 사기꾼으로 판단하고 대충 대답했다. 코넛플레이스 가는 방향이 헷갈려 여긴가 반대편인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그들은 정확한 방향을 알려줬다. 구글맵으로 한번 더 확인하면 그들의 말이 맞았다. 사기꾼이지만 정직했다. 참, 순수한 사기꾼들이라 생각하며 코넛플레이스로 걸어갔다. 가는길은 무난했다. 인도가 잘 깔려있었고, 오른편에는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였다. 하지만 인생은 늘 쉽지않고, 인도에서는 더더욱 크게 느껴진다.


5분쯤 걸었을까 인도 한 복판에 노숙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는 허공에 대고 삿대질과 과격한 말투로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다 감정이 더 격해졌는지 본인 머리를 때리고 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지나가는 누군가를 맞추고 싶어했다. 아, 인도로 가면 맞거나 무슨일이 생길지도 모르겠고, 도로로 가자니 쌩쌩달리는 차밖에 없어서 무서웠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깨달은건 인도는 확실히 사람보다 차가 먼저다. 우리나라는 사람이 있으면 입으로는 욕하더라도 차를 멈추지만, 여긴 사람이 코 앞까지 있어야만 선다. 심리적 공포가 더욱 크다. 그런 곳에서 쌩쌩달리는 차를 등에 두고 걷겠다? 목숨 내놓고 걷는거 아닌가. 그렇다고 이 사람을 지나가기엔 내가 무슨일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어떡하지 싶어서 머뭇거리며 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그 때 내 앞에 걸어가던 청년이 뒤로 힐끔 몇번 보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돈워리, 돈워리, 코이띠까네이라고 했다.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본인이 노숙자와 가까운 곳에 걷고, 나는 노숙자에게서 좀 떨어져있는 인도를 걷게 해주었다.


그 앞을 지나고 나는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외쳤다. 코넛플레이스로 가는 쪽으로 길을 건너야하는데, 횡단보도가 없었다. 인도에서는 사람이 신호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서 무작정 달려오는 차를 피해서 잘 건너야한다. 여긴 너무 넓은 도로였고, 나는 또 무서웠다. 그 청년은 한번 더 돈워리, 돈워리, 코이띠까네이를 외치고 같이 길을 건너주었다. 그러다 말문이 트였는지 내게 어딜가냐고 물었다. 나는 코넛플레이스 가는길인데 이제 다왔다고 말해줬다. 청년은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순간 슈퍼맨으로 보였던 그를 다시 사기꾼으로 봐야하나 고민하던 중에 청년은 결국 똑같은 종착지로 가버렸다.


“저쪽에 가면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어. 너를 위해 같이 가줄게.”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본인도 정말 괜찮다고 계속 같이 가주겠다며 옆에 붙어서 걸었다. 순간 공포감이 올라왔다. 분명 이 사람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었는데, 지나가다가도 관광객이다 싶으면 그냥 사기를 칠 수 있는건가? 그니까 직업이 사기꾼이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일반인 아니였나. 아니면... 그의 직업은 사기꾼인데 출근길에 내가 걸린건가... 오만 생각이 들다가 정신을 차렸다.


내 대답은 이츠 오케이에서 노우로 바뀌었다. 나는 약국에서 사야할게 있는 척 도와줘서 고맙다며 강제 


내 대답은 이츠 오케이에서 노우로 바뀌었다. 나는 약국에서 사야할게 있는 척 도와줘서 고맙다며 강제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눈 앞에 보이는 약국으로 뛰어 들어갔다. 당연히 살건 없었다. 눈 앞에 문 열린 약국이 보였고, 10년도 더 지난 기억이 겹쳐지면서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유럽 여행에서 내 몸의 3배가 되는 덩치 큰 흑인이 같이 커피를 마시자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는데도 자꾸 따라오는 남자가 무서워 쏘리. 땡큐. 바이를 외치고 눈 앞에 보이는 슈퍼로 무작정 뛰어들어갔다. 음료수를 고르는 척 냉장고 앞을 서성거렸다. 그는 슈퍼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밖에서 계속 서있었다. 냉장고 유리에 비친 그의 모습은 조급해보였다. 검은 형체가 사라질때까지 나는 궁금하지도 않은 음료수를 들었다놨다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그때의 공포감이 겹쳐졌다.


약국에 들어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직원들에게 물었다. “여기 근처에 관광객을 위한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나요?” 그들은 모른다고 했다. 나는 겁먹은 눈빛으로 말했다. 코넛플레이스 가는길인데 자꾸 어떤 남자가 인포메이션 센터를 데려다준다해서 여기 들어와버렸고, 그 사람이 갈 때까지 여기 있다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들은 “코이띠까네이”라고 답해줬고, 나는 그때처럼 관심도 없는 의약품들을 하나씩 유심히 봤다. 

몇 분 지나자 밖에 서성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떙큐를 외치며 약국을 나왔다. 다시 지도를 보고 코넛플레이스 안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해 걸어갔다. 거기에 있는 모든 상점들이 문 닫혀 있었다. 아 맞다, 여기 인도잖아. 9시는 너무 이른 시간이지. 문 앞에 적힌 오픈 타임을 보아하니 11시 즈음 되어야할 것 같았다. 시간을 때우러 공원으로 갔다. 출입문을 찾을 수 없어서 공원 근처를 뺑뺑 돌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나를 향해 고함을 지르고 소리쳤다.


이전 02화 퍼킹인디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