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입으로 바라지 않는 사람들
집을 나서면 가는길에 5분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어디가니?”
“인도 좋니? 어때?”
“인도 처음 왔니?”
“너 너무 외국인처럼 보인다. 그럼 위험할 수 있어.”
“여기는 가봤니, 에에? 아직 안가봤다구?”
첫 마디는 모두 다르게 시작하지만 마지막은 다 똑같다. 저기가면 델리 관련 관광 지도가 있단다. 인포메이션 센터로 가서 기회를 잡아보지 않을련? 다양한 사람과 똑같은 얘기를 하며 걷다보면 나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 사람들 성실한게 나를 인포메이션 센터로 데려가기 위해서 적어도 3분은 투자한다. 그 와중에 내가 목적지 방향을 잘 몰라서 헤맬때 정확하게 알려준다. 인포메이션 센터 방향으로 거짓말하면 되는데 그런 쉬운 거짓말은 취급하지 않는 착한 사람들이다.
인도 사람들이 너무 성실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8시쯤 일어나 매일 똑같은 짜이집으로 간다.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짜이를 호로록 마시면서 길거리를 본다. 다들 비질하고 청소하느라 정신이 없다. 열심히 청소를 하는데 길거리가 매번 더러운건 이해가 안 되지만. 성실한 사람들은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일을 한다. 내가 오전에 먹던 짜이를, 커리를, 과일주스를, 달달한 간식들을 밤 10시에도 먹을 수 있다. 그들이 너무 오랜 시간 일한다 생각했다. 300원을 내고, 500원을 내고, 몇 천원을 내면서 얻는 행복을 쉼없이 즐길 수 있다. 근데 나는 그저 즐기고, 그들은 그 자리에 계속 일하는게 맞나?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닌가? 싶다가도 아니면 뭐 어쩔껀데 그런 생각으로 델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인도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고, 쉽게 말을 붙인다. 덕분에 여기는 너도나도 위아더월드 친구가 되기 쉬운 곳이다. 사기꾼인지 뭔지 모를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건 꽤나 재밌다. 내 정신줄만 잘 챙기면 엄청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사기의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대놓고 패키지를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군가는 지나가다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서 대화를 이어가다 결론적으로 인포메이션 센터가 저기있으니 너를 데려다주겠다로 결론 내리는 방식도 있다. 하지만 정석은 오늘 기분 어때, 인도 몇번째 왔니, 인도 마음에 드니, 너 짜이 먹어봤니 스몰 토크로 시작해서 결론은 인포메이션 센터로 가는 방법이다. 그들은 사기에 진심이다. 인포메이션센터 한번 데려가기 위해서 짜이 사주고, 여기 저기 같이 다니면서 족히 1시간은 투자하는 것 같다. 이런거 보면 진짜 맨입으로 뭘 하겠다는 사람들은 아니다. 작은 도움주고 큰 뒤통수 까는 뭐 그런 느낌이랄까.
한번은 긴가민가한 상대가 있었는데, 여느때처럼 혼자 걸었고 ATM에 돈 출금하러 가는 길이었다. 고프로를 들고 설치니 누가봐도 관광객이었던 나에게 어떤 남자가 불렀다.
“헤이, 여기부터는 좀 위험해서 고프로 조심해.”
그걸 첫마디로 시작해 나의 행방지를 공유하게 되었고 어쩌다 같이 가게되었다. 그가 나를 데려다준다했지만 나는 구글맵을 끄지않고 보면서 같이 걸었다. 이번에도 내가 찾는 곳을 정확하게 데려왔다. 출금할 때 이 친구가 내 돈 들고 튀면 어떡하지? 걱정스러워 소액만 인출해서 야무지게 챙겨나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 친구는 조금 달랐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상황들과 다양한 사건 사고들을 얘기해줬다. 본인은 남들처럼 어디가라 저기가라 이런 얘기 안하고 싶다고 했다. 델리는 관광객들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며 일방적인 소통을 하지 않았다. 질문을 하고 내 얘기를 많이 들으려고 했다. 짜이 한잔 사준대서 알겠다고는 했지만 거기에 뭘 넣는건 아닌지 매의 눈으로 지켜봤다. 짜이를 만드는 사람과 이 남자는 처음 보는 것 같았고, 내 눈 앞에서 새롭게 짜이를 만들어 똑같이 2잔을 나누어 줬다. 짜이에 뭔가를 넣지 않았다는 사실에 긴장도는 100에서 80으로 내려갔다.
짜이를 마시면서 ‘대화’라는걸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그 친구는 카슈미르가 진짜 예쁜 지역이라며 알려줬다. 카슈미르? 저번에 들어본 것 같은데? 오! 현지인이 알려주는 로컬 여행지인가? 호기심이 가득차 카슈미르 얘기를 하다 내가 더 관심있는 라다크나 북인도 이야기를 했다. 근데 또 카슈미르 얘기로 빠졌다. 아, 이 아저씨 여기 엄청 좋아하네. 나에게 남해나 구례같은 곳인가. 진짜 좋은데 사람들이 아직 많이 몰라주는 나만의 여행 스팟 뭐 그런건가 생각하는데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본인 여동생이 라자스탄 지역에 결혼식하는데 초대해도 되냐고 물었다. 현지인이 초대하는 인도 결혼식이라니! 너무 재밌을 것 같아서 얼굴은 흥분 가득한데 겨우 이성을 꺼내 나를 잡았다. 나는 저 친구가 누군지도 모르고, 무슨 일이 생겨도 방어할 수 없는 혼자니까 반틈만 승낙했다. 재밌어서 가고싶은데 내가 나중에 어디서 뭘할지 몰라서 그 시기 다되서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제발 진정해라 나 자신 워워. 이성과 감성을 오가며 억지로 진정시키는 나에게 그 친구는 거짓말만 하지 말아달라 했다. 안 올거면서 올 것 처럼 굴지만 말아달라고. 헛된 희망을 품기 싫다고 거절해도 된다고 그랬다.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 당당하게 노우라고 외쳐달라는 이 친구. 나도 희망고문을 싫어하는 편이라 그 마음은 잘 알지만 지금 당장 예스!라고 하기엔 아무런 대책이 없고, 노!라고 하기엔 놓칠까봐 아쉬워 별 수 없이 희망고문을 줬다.
머리를 자르러 가야했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는 내게 이 친구가 같이 미용실을 찾아주겠다고 했다. 오, 나 이렇게 호객 되는건가. 첫 사기 당하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하는데, 이 친구 진심이다. 미용실을 5군데나 돌아다녔다. 빠하르간지는 대부분 남성을 위한 곳이라 여성 머리, 그것도 일반 컷트는 취급을 안해줬다. 마지막 시도한 미용실에서 겨우 머리를 자를 수 있었는데 꽤나 오래걸렸다. 미용사가 트리트먼트와 영양제를 팔기위해 여러 멘트를 했다. 나는 암 오케이. 저스트컷으로 일관했다. 우리의 끝없는 도돌이표로 이미 10분이 지났다. 그 친구에게 그냥 가도 좋다고 말해줬는데 죽어라 안갔다. 중간 중간에 머리가 잘 잘려지나 구경도 했다. 머리를 다 자르고 나왔는데 이 친구가 사라졌길래 아, 지쳐서 갔나보다 싶었다. 안그래도 누가 머리 만져주니까 노곤노곤 잠이 왔는데 잘 됐다. 이제 좀 혼자이고 싶었거든.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기분좋게 릭샤를 타고 시크교 사원으로 이동했다. 다른 릭샤 운전사들처럼 인도 어떻냐, 어디 여행할거냐 물어보더니 북인도 여행할거라니까 익숙한 단어가 나왔다.
“오 카슈미르. 너 카슈미르 가야돼. 진짜 좋아. 내가 아는 사람 있는데 거기 연결..”
어라? 또? 카슈미르. 나는 아차차, 번뇌를 느낀 순간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잠시 물 사고 왔는데 없어졌다며 어디 간거냐고 메신저와 전화가 왔다. 잘 읽었고 답하지 않았다. 나중에 히마찰 지역에서 친구들을 사귀면서 알게된 이야긴데 카슈미르 패키지 사기는 델리에서 굉장히 유명하단다. 그 친구 다 잡은 고기를 놓쳐서 엉엉 울고있겠지. 사실 사기꾼이 아닐수도 있는데, 아직 내 경험으로는 이렇게까지 친절하다면 뭔가를 바란다는건데 동양인 여성과의 썸씽이거나 패키지사기로 인한 돈이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 싶어서 사기꾼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 친구, 나에게 1시간 이상 시간을 썼다. 더운데 땀 한바가지 흘려가며 미용실을 같이 찾아줬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굉장히 성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