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랐어요2

by sogongnyeon

2019년 순례길을 걸으며 작성한 일기장을 열어보았어요. 액기스 기록만 가득한 일기장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덧붙여봅니다. 3년만에 만난 또 다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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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서 무슨 화를 입어도 아무도 모를거라는 무서움에 사로 잡히자 모든 소리에 예민해졌다. 그래서 더 큰 소리를 내며 다녔다. 더 쩌렁쩌렁하게 노래를 불러보고 음악 소리를 최대한으로 키워보고 그렇게 걷다 반대편에 누가 뛰어오는걸 봤다. 반가우면서도 또 다시 무섭기도 했는데 운동복 차림으로 뛰는걸로 봐선 동네 사람이 러닝하는구나 싶었다. 살았다는 생각에 밝은 목소리로 올라!(안녕)를 외치고 다시 길거리 노래방을 즐겼다. 그러다 비가 많이 와서 왜 이렇게 깝치면서 왔을까. 무서워하면서 깝칠 시간에 좀 더 빨리 걸을걸. 이젠 진짜 걷는데 집중하자. 딴 길 새지말자? 그러다보니 진짜 알베르게가 코 앞이다. 내 생애 첫 알베르게! 내 생애 첫00 마케팅을 싫어하는 편인데 왜 잘 팔리는지 알겠다. 이렇게 갖다붙이니까 진짜 특별해 보인다. 아무도 없는 갈대 가득한 논 길에서 살인의 추억을 상상하다 아기자기한 집들이 있는 마을로 오니까 자연스레 마음이 푸근해진다. 금세 신나져서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템포로 걸어가는데 알베르게 앞에 있던 어떤 사람이 여기가 알베르게라며 방향을 알려준다. 오브리가도를 외치고 들어가보니 푸근한 인상의 여인이 웰컴!이라며두 팔을 벌려 환영해준다. 알베르게에서 숙박 안내를 돕고,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자원봉사자들을 호스피탈레라라고 부른다. 호스피탈레라가 정말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주고, 비 오는데 고생했다며 마치 초대받은 손님처럼 대접해준다. 크레덴셜(순례자 증서)을 꺼내 입실 처리를 하고 방 안내를 받았다.


따라 들어가는데 다른 사람이 보여서 반갑게 인사했다. 어머나 한국 사람이라니? 예상치도 못한 한국인을 만나게 되서 더 신났다. 나중에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하고서 짐을 풀고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빨래도 끝냈다. 항상 긴 여행을 갈때면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어서 사이버 디톡스 생활을 한다. 수많은 메신저, 연락, SNS의 자극들을 벗어나고 싶어서 유심을 사지않고 데이터도 충전 하지않고 지낸다. 늘 와이파이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내 맘대로 안되는 법. 알베르게에 와이파이가 없다고 했다. 잘 도착했다고 가족에게 안부도 전해야하고, 내일 루트도 한번 봐야하는데 와이파이가 안되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호스피탈레라에게 물어보니 여기 근처에 유일한 카페가 있는데 와이파이가 될 거라고 한다. 머리를 말리지 않은 채 가벼운 옷차림으로 순례길 루트가 있는 책, 볼펜, 다이어리, 폰을 들고서 카페로 갔다. 바나나 브레드와 맥주를 마시면서 멍 때렸다. 무거운 짐을 다 벗어던지고 그늘에서 바람쐬고 목마를 때 쯤 맥주의 거품을 즐겼다. 산뜻한 기분으로 일기를 쓰고 나니 잠이와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루트는 이따 생각하기로 하고 조금 더 멍때리다 심심할 때 쯤 알베르게로 돌아갔다.

아까 만난 한국인 커플과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둘은 호주에서 워홀을 끝내고 한국 돌아가던 중 특별하면서도 경비가 부담스럽지 않은 여행을 찾다 순례길을 생각했다고 한다. 애초에 자아를 찾으러 순례길을 많이 온다고 하던데 나처럼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게 내심 반가웠다. 둘은 다양한 곳에서 자볼거라면서 가끔은 에어비앤비도 이용하고 소방서에서도 재워준다고 알려줬다. 도네이션으로 운영하는 숙소를 많이 찾게 될 것 같다며 컨디션에 따라 얼마나 걸을지 모르니 예약은 따로 안한다고 했다. 그 날의 기분에 따라 걷고 싶으면 걷고, 영 걷기 싫으면 기차 타고 이동할거라 했다. 남들의 시선에 구애 받지않고, 어떻게든 걸어야한다는 틀에 갇히지않고 순례길 자체를 여행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오늘 겪은 많은 장면들을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아까보다 많은 순례자가 와 있었고 알베르게가 아담한 편이라 그런지 서로 편하게 대화하는 분위기였다. 다들 내일 어디까지 갈건지 물어봤고,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나는 그제서야 알베르게에 붙어있던 지도를 봤다. 대부분 20키로 떨어진 다음 장소를 간다고 했다. 그럼 난 혼자 있고 싶으니까 좀 더 가야지. 앗 36키로네. 극단적인 이 루트 뭐지. 근데 뭐 오늘 30키로 정도 걸었는데 생각보다 다리도 안 아픈데 거기서 좀만 더 가면 되지. 괜찮아.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결론을 내리고서 그 다다음 마을로 가겠다고 했더니 모든 순례자가 뜯어 말린다. 너 가방도 무거워 보이던데 어떻게 갈려고? 아무래도 키도 덩치도 큰 외국인들 눈에는 키도 작고 조그만한 소녀라는 캐릭터가 너무 강했나보다. 내 가방은 오래된 맥북과 충전기, 고프로, 많은 충전기들 덕분에 10키로 정도 예상되는 무게였는데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뜯어 말릴 즈음에 유일하게 반대하지 않았던 호스피탈레라가 본인의 선택이라며 하고 싶은대로 하라며 내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정답이 없는게 순례길이잖아. 이렇게 저렇게 다 걸어보고 본인에게 맞는걸 찾아가면 되는거지. 남들과 똑같이 걸을 필요 없어.”



그 때 알베르게 입구에서 방향을 알려줬던 미겔이라는 친구가 제안을 했다.

너 너무 딸같아서 그러는데 이건 어때? 다다음 마을 알베르게에 내일 5-6시 쯤 도착할거야. 알베르게는 순례자가 다 차면 안 받아주니까 호스텔에 예약 가능한지 연락해서 물어보고 금액이랑 말해줄게. 너가 마음에 들면 예약해두고 가. 지금 전화해볼까?”

그가 나를 대신해 전화를 해줬고, 가격도 알베르게 금액이랑 비슷해서 예약해달라고 했다. 내일 마음 편하게 걷다가 그곳에 도착해서 윤 이름으로 예약했다고 말하면 된다고 했다. 든든한 마음으로 도미토리 침대에 침낭을 깔고 몸을 쏙 넣어 잠을 청했다. 와 자면서 빨리 일어나길 바란건 처음이였다. 드르렁거리는 소리와 한명씩 뒤척이는 소리에 언제 아침이 오나 양 천마리는 셌다. 옛날 옛 시절 명절에 다같이 모여서 자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다 같이 숨을 공유하며 자는 시간이랄까. 하루정도 못자도 되니까 빨리 이 시간 지나게 해주세요. 아침아 어서와 두팔 벌려 환영해. 왜 아직 밤 12시인가요. 잠들지 못하는 시간들을 보내다 새벽 6시경 진동 소리에 깼다. 아직 자고있는 몸을 억지로 깨워 짐을 대충 싸서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어제 널어놓은 빨래를 걷다가 자연스럽게 위를 쳐다봤는데 아니 이게 무슨일이야.


춤추기.png 이렇게 춤이나 출 때가 아니였다
1 숙소마을.png 첫 마을 도착


2 숙소 도착직전.png 알베르게 앞 예쁜 나무와 든든한 노란 화살표
3 유일한 카페.png 마을의 유일한 카페
4 행복한 시간.png 간단히 요기를 채우고 맥주 거품으로 가글하는 맛
생각보다 과한 저녁 - 한국인 커플과 먹으면서 이러쿵 저러쿵
6 선물.png 바깥공기 쐬러왔다 만난 노을
7 괜히 연결된 기분.png 현지인들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맥주를 마시는데, 뭐랄까 연결된 기분. 우리 다 오늘 하루 고생했어요!
8 첫 날 알베르게.png 이 알베르게에서는 가방을 한 구석에 두게 했다 (벌레, 위생 등 관계로)

깨알정보
알베르게에서만 잘 수 있는건 아니다. 일부 소방서(봄베이로스)에서도 재워주고, 도나띠보 캠핑 사이트도 있다. 아래 사이트를 이용하면 숙박시설이나 음식점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원하는 루트 선택해서 보면 된다.

Gronze : https://www.gronze.com/

관련 영상 : https://youtu.be/1NSj9PGF2lA

일기장 글꼴 출처 : 나눔손글씨 가람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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