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아름답기만 하면 안 될까? 2

by sogongnyeon

이렇게 아름답기만 하면 안 될까? 2

2019년 순례길을 걸으며 작성한 일기장을 열어보았어요. 액기스 기록만 가득한 일기장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덧붙여봅니다. 3년만에 만난 또 다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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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기운인지 밥을 든든하게 먹은 탓인지 기분이 좋았다. 밥 먹기 전에는 좋았지만 육체가 힘들어져서 아무 생각도 감정도 없어져가는 길이였는데, 밥 먹고나니까 단순하게 기분이 좋았다. 너무 더워서 비가 조금이라도 왔음 좋겠다 생각했다. 오늘 또 하나를 배운다. 가장 해가 뜨거운 1-2시경에 점심을 먹으면서 쉬었다 가자. 조금 걷다가 너무 뜨거운 태양에 아스팔트가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라 얼마 걷지 못하고 벤치에 앉았다. 10kg 조금 넘는 배낭을 내려놓고, 양말을 벗어던지고 발 마사지를 하면서 휴대폰으로 남은 루트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언제 여길 다 가지.


뭐 어쩌겠어 가야지. 땀이 식었을 때 즈음 다시 양말을 신고, 신발끈을 동여매고 걸어갔다. 이제 휴대폰은 보지 않는다. 노란 화살표만 믿고 따라간다. 근데 아스팔트 길이다. 뜨거운 태양과 길이 만났다. 배낭과 등, 양말과 신발 사이에 뜨거운 공기가 계속 갇힌다. 괴로웠다. 또 얼마가지 못해 한줌의 그늘이라도 있으면 멈춰섰다. 다시 내 몸에 붙어있는 최소한의 옷을 제외한 배낭, 신발 그리고 양말을 모두 벗어던졌다. 다리에 근육통이 심하게 와서 억지로 햄스트링을 늘려본다. 상체를 거꾸로해서 다리를 늘려본다. 종아리에 알을 손날로 두드려본다. 힘들어하며 다시 폰을 꺼내 남은 거리를 확인하고 아까 휴식지점에서 얼마 못 갔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러다 지나가는 자전거 여행객이 “본 까미노”라고 외쳐줘서 웃으며 오브리가도를 외쳤다. 3초였다. 3초 웃고서 다시 절망가득한 마음으로 짐을 챙겨 걸어갔다.


고독은 참 좋다가도 쓸쓸했다.


어제는 걸으면서 순례자를 두명 정도는 봤는데, 오늘은 걸으면서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가다가 너무 뜨거워서 아무데나 배낭을 깔고 누워버렸다. 저 뜨거운 태양이 나를 죽여버릴 것 같아 에라 모르겠다 하고 흙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걸어온 방향을 생각하면 오른쪽이 맞는데 노란 화살표가 왼쪽을 가리킨다. 고민이 됐다. 또 다시 빨리 가서 끝내고 싶은 마음과 아까 맵스미를 따랐다가 위험하고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충돌했다. 하지만 순례길에서 난 단순했으니까. 그 순간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맵스미를 또 선택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맵스미가 좋은 선택이였다. 크게 돌아가지 않고, 그리 위험하지도 않게 순례길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제는 고독이 그렇게도 즐겁더니 오늘은 미치게 싫다. 일부러 고독을 찾아 나섰는데 외로운게 너무 힘들다. 자꾸만 3km만에 주저앉게됐다. 어제 자라기 시작한 물집은 오늘 더 커졌다. 아무도 양육할 생각이 없는데 제 맘대로 커져버린 물집과 여전히 무거운 배낭 줄지 않는 거리 수를 보면서 절망만 가득했다. 그래도 아까는 땡볕에 죽어라 걷다가도 바람 한 점에 진심으로 행복했는데 이제는 모든게 원망스럽다.


스크린샷 2023-03-05 오전 10.53.25.png 다 벗어던지기
스크린샷 2023-03-05 오전 10.53.12.png 자꾸만 이렇게
스크린샷 2023-03-05 오전 10.53.52.png 조금의 그늘만 보이면 기어들어갔다
스크린샷 2023-03-05 오전 10.54.09.png 스트레칭도 해보고
스크린샷 2023-03-05 오전 10.54.34.png 발 마사지도 해봤지만
스크린샷 2023-03-05 오전 10.56.15.png 지치고 힘들 때 혼자라는 사실
스크린샷 2023-03-05 오전 10.56.50.png 나는 못 가 - 길바닥에 눕기도 하고
스크린샷 2023-03-05 오전 10.57.16.png 바람 한 점에 행복해졌다가
스크린샷 2023-03-05 오전 11.11.47.JPG 화살표 따라가면
스크린샷 2023-03-05 오전 11.11.34.JPG 만나는 예쁜 하늘에 행복해서
스크린샷 2023-03-05 오전 11.14.48.JPG 살만하네- 싶을 때
스크린샷 2023-03-05 오전 11.14.19.JPG 지나가는 사람의 응원도 받게된다
스크린샷 2023-03-05 오전 11.13.58.JPG 그치만 눈 앞에는 똑같은 태양과 아스팔트
스크린샷 2023-03-05 오전 11.16.00.JPG 더이상 가고싶지 않던 그 때

여행기를 영상으로 보고싶다면 : https://youtu.be/0mBUj3ebB0o

일기장 글꼴 출처 : 나눔손글씨 가람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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