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아름답기만 하면 안 될까? 2
2019년 순례길을 걸으며 작성한 일기장을 열어보았어요. 액기스 기록만 가득한 일기장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덧붙여봅니다. 3년만에 만난 또 다른 나
언제까지 뜨거울지 가늠이 안 되는 태양과 이렇게 힘들게 걸어가는데 쌩쌩 지나가는 기차가 얄미웠다. 아까 샹그리아 먹은 이후로 오늘 먹은 액체가 없는데 물을 살 곳 하나 없다는 것도 힘들었다. 이렇게 뜨거운 해가 떠있을 때 빨래를 해야 내일 또 입는데 언제 도착해서 빨래를 말리나 힘든 생각들이 나를 계속 붙잡았다. 이래저래 그냥 말려죽여라 이놈들아. 예쁜 풍경이 나와도 그래서 언제 도착하냐고. 계속 따지듯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화살표가 끊겨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겠을 때도 아니 왜 여긴 또 표시를 안해놔. 뭐 어쩌라고. 대상도 없는데 자꾸만 따져들었다. 그러다 헛웃음이 났다. 누구한테 짜증을 내고 있는건지. 알 수 없는 길을 일단 걸어가다보니 끝없는 풍경의 자연이 펼쳐졌다. 잘 왔다고 환영해주는건가. 다른 선택은 없으니까 앞만 보고 걸었더니 마을이 보였다. 와 진짜 살았구나. 어제 미겔이 전화해준 호스텔을 찾아갔다. 다와간다 생각해서 긴장이 풀렸는지 잘 걸어지지 않았다. 정신줄 하나 붙잡고 진짜로 겨우 걸어갔다. 제발 다왔으니까 조금만 참자.
도착하자마자 숙소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그녀는 “풀방이야 우리” 라고 말했다. 스페인어로 말했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던 단어 “ 풀방” 너무 단호하게 말해서 당황했지만 예약을 했다고 대답했다.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고, 주인은 영어를 못했다. 각자의 구글 번역기를 꺼내서 대화가 시작됐다. 구글 번역기 어플을 찾아야하는데 너무 당황해서 사전을 켜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당황스러운건 앞으로의 일이였다. 예약한 이름을 얘기했는데 처음 듣는다고 했다. 어제 미겔이라는 친구가 여기 전화해서 예약해줬다고 말했더니 어제 그런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린 계속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어제 전화한 사람은 미겔이고 제 이름인 윤으로 예약했어요.”
“어제 전화 받은적 없다니까?”
“네? 어제 전화하는거 들었는데요. 몇시경에 여기 전화해서 알겠다 하고 금액도 말씀해주셨잖아요.”
“무슨 소리야? 무슨 통화?”
여기가 정확하게 맞았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나는 여기말고 다른데를 알아볼 힘이 없었다. 여기여야해서 계속 똑같은 말을 했고, 숙소 주인이 새로운 제안을 해줬다.
“지금 어떤 여자가 트윈룸 혼자 쓰고있는데, 그 친구한테 물어보고 괜찮다하면 같이 쓸래?”
“네! 당연하죠!!”
숙소주인이 그 방으로 가 노크를 했고, 나는 속으로 제발제발제발을 외쳤다. 근데 그 친구 저녁을 먹으러 갔는지 아무리 두드려도 답이 없었다. 주인이 일단 리셉션으로 가서 기다려보자고 했다. 초조했다. 1분이 10분같았고, 100분 같은 10분이 지나도 오지않았다. 오후 6시가 다되어가는 지금, 혹시나 트윈룸 친구가 거절을 한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걸까. 그 때 다른 호스텔도 방이 다 차버린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숙소 주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마음이 너무 불안해 지금이라도 다른 호스텔을 찾으러 가야겠다고 말했다. 배낭을 챙겨 문 밖으로 나오는 순간, 숙소 주인이 내게 또 다른 제안을 했다.
리셉션 뒤에 조그만한 공간이 있는데 새 매트리스랑 이불보를 깔아줄테니까 여기서 10유로만 내고 자라는 이야기였다. 화장실도 붙어있고, 나만 쓸 수 있었다.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무또 오브리가도를 외쳤고, 가방을 바로 풀었다. 잘 공간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처음에 숙소 주인이 너무 단호하고 강경하게 자꾸 방이 없다 그래서 싸워서라도 방을 얻어야하나. 죽자고 빌어야하나. 이거 뭐 어떻게야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또 다 어찌저찌 해결이 된다. 어떻게든 도움을 줄려고 하는 사람을 만나니 해결이 된다. 너무 감사했다. 짜증내고 원망스럽던 하루를 감사함으로 마무리하게 만들어줬다.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이쪽 길인지 저쪽 길인지, 뭐가 더 나은지 물어보고 싶은 것들은 많았는데 상대가 없어서 외로웠던게 아닐까 싶다. 어쩌다 그 외로움은 도를 지나쳐 화가나고 짜증이 가득차 원망스러웠지만. 그 원망을 받을 상대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가 바람 한 점에 다시 행복을 느꼈다가 금새 화가 났다가 그렇게 미친놈처럼 군게 아니였을까.
여행기를 영상으로 보고싶다면 : https://youtu.be/0mBUj3ebB0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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