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심부름센터, 요괴만 받습니다

김요한의 기묘한 의뢰록

by 두부

1화


인사동 찻길 거리.

세 번째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불쑥 나타나는 벽돌 담벼락이 길을 막는다.


그 앞에는 허름한 장승 하나가 서 있다.

표정은 없지만,

누군가를 묵묵히 지켜보는 듯하다.


찻집을 찾으러 온 사람들은

그 시선을 모른 척 외면하며 발길을 돌린다.


하지만,

가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찾아오면

그 담벼락을 향해 주저 없이 걷는다.


그러면 장승은

아무런 말도 표정도 없이

그들을 안으로 끌어들이듯 길을 열어준다.


그 벽 너머엔,

어느 지도에도 없는 인사동의 뒷골목이 펼쳐진다.


오래된 상점들이 어깨를 맞대고

숨을 쉬듯 늘어서 있다.

그 한복판에 자리한 가게가

요한이네 가게이다.


요한의 집안은 5대째,

인간이 오지 않는 이곳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있다.


가게의 이름은 시대마다 바뀌었지만,

지금은 ‘심부름센터’라

적혀 있는 간판을 달고 있다.


요한의 가족을 빼면,

이 골목엔 인간이 없다.


그들은 대대로 요괴를 볼 수 있는 ‘신안(神眼)’을 타고났으며,

인간과 요괴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해왔다.


띠링—


도어벨 소리가 가게 안을 깨웠다.

삽살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왔다.


“어서 오세요.”

“요한이냐? 이젠 맨날 혼자 나오는구나.”

“네, 슬슬 저한테 물려주시려나 봐요.

그러니 열심히 해야죠.”


“허허, 공부는 안 하냐?”

“… 어차피 가업 이어받을 건데요.

이게 공부죠, 뭐.”


“그래, 요즘은 가업이 금수저지.”

“하하하… 그러게요.”

“근데, 간판 좀 바꿔야 하지 않겠니?

아직도 ‘심부름센터’라니.”


“그럼 ‘헬퍼’나 ‘라이더’로 할까요?

요즘은 앱으로도 많이들 하던데요.”

“처녀귀신, 몽달귀신이 퍽이나 앱을 쓰겠다.”


구석진 어둠 속에서

긴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귀신이

서린 낯으로 목만 스윽 내밀더니

장승 대감을 바라보며

고개를 시계방향으로 90도 돌렸다.

끼이익—


“아, 처자. 자네 말고.”


장승 대감이 손사래를 치자

귀신은 다시 스르르 사라졌다.

요한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요, 말조심 좀 하시라니까...”

“이놈이 아주…”


투닥투닥 주고받는 말속엔

묘한 다정함이 묻어났다.

삽살개는 냄새를 킁킁 맡으며, 활짝 웃었다.


“그래서, 장승 아저씨. 또 왜 오셨어요?”

“별건 아니고… 자꾸 인사동에 이상한 게 돌아다녀서.”

“이상한 거요? 의뢰하시게요?”

“의뢰는 내가 왜 하냐! 그놈이 해야지. 필요하면 여기로 보낼게.”

“그 얘기하시려고 일부러 오신 거예요?”

“그래, 이놈아.”


툴툴대면서도

장승 대감의 얼굴엔 어느새 흐뭇한 기색이 번졌다.

요한은 그런 표정을 흘깃 보고 속으로 웃었다.

‘맨날 투덜대도, 아저씨도 외로운 거지.’


삽살개를 쓰다듬으며, 장승이 말했다.


“혼자 가게 보느라 고생이 많다.”

“아저씨라도 알아주시니…

좀 울컥하네요.”


요한은 한 박자 멈추었다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부모님은… 이제 제가 다 컸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요즘은 문자 하나 없어요.”

“지금은 평화롭잖니.

부모님도 네가 혼자 설 준비가 됐다고 믿는 거야.”

“… 알아요. 머리로는요.”


요한은 고개를 숙였다.

말을 잇지 못한 채,

삽살개의 머리만 어루만졌다.


장승 대감은 그런 요한을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요한아, 아저씨는 항상 여기 있는 거 알지?”

그 말에 요한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알아요, 500년 동안 계셨잖아요.”

“앞으로도 500년은 더 거뜬해.”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가게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놈 오면 말해. 성가실 거다.”

“네, 도움 필요하면 부를게요.

자리 지키고 계세요.”

“오냐, 간다.”


그가 나가자, 요한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근데 끝까지 ‘그놈’ 정체는 안 알려주시네.

진짜 쉽게는 안 해주셔.”


요한은 가게 안쪽 책상에 앉았다.

삽살개는 익숙하게 그의 발밑으로 파고들었다.

“복실아, 그래도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복실이가 요한의 손등을 핥았다.

그러고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두어 바퀴 돌고,

이내 발치에 몸을 말고 누웠다.

그러고는 요한의 손길에 눈을 반쯤 감고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었다.


요한은 서랍 깊숙이 숨겨둔

서책들을 내려다봤다.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의뢰록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그중 가장 익숙한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부모님의 의뢰록이었다.


“… 이건 엄마 글씨, 이건 아빠.”


페이지를 넘길수록,

요한의 표정은 복잡해졌다.


열여덟 살.

아직 어린 나이지만,

그는 일찌감치 학교를 그만두고

이 일에 전념했다.


부모님은 자주 집을 비웠고,

이 가게를 이어받을 사람은 요한 뿐이었다.


이 일에는 설명서도, 정답도 없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요한은 더더욱 이 일이 자신의 천직이라 믿었다.


게다가 지금은 21세기.

악한 요괴나 사람을 해치는 악령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신계의 ‘현신 금지법’도 큰 몫을 했다.

인간 앞에서는 모습을 드러낼 수도,

직접 교류를 할 수도 없게 되었으니까.


그런 평화의 시대에서 요괴들도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사람들 틈에 섞여 조용히 살아가길 원한다.

그럴 때 요한의 존재가 빛난다.

들어오는 의뢰는 소소한 일들이었지만,

인간인 요한만이 해결할 수 있었다.


“컴퓨터 설치 좀 해주세요.”

“메일 계정 하나 만들어주세요.”

“숨겨둔 돈, 아들내미에게 전해주시오…”


귀신도, 요괴도,

이제는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어 한다.

요한은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요한은 오늘도

부모님의 의뢰록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서툰 자신을

조금씩 단련해 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곁에는 주변 상가의 정령들과

장승 대감이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요한의 머리 뒤로

거꾸로 매달린 여자의 긴 머리가

서늘하게 흔들렸다.


“고모, 아까 화 안 났지?”


핏기 없는 잿빛의 여자는

요한과 눈을 마주치자

기이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울음보다, 비명보다 더 소름 끼쳤다.


“응, 맞아.

장승 아저씨도… 나쁜 의미는 아니었어.”


요한은 방긋 웃으며

다시 의뢰록으로 시선을 돌렸다.


… 아마 이런 주변 존재들 덕분에

부모님도 그를 믿고 떠난 걸지도 모른다.


“복실아, 지금의 이 평화…

나쁘지 않지?”

삽살개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짧게 컹! 하고 짖었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가게에도,

올해 가장 골치 아픈 손님이 찾아오고 있었다.


띠링—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선 여인.


달빛처럼 창백한 얼굴.

허리까지 곧게 흐르는 검은 머리.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

붉고 도톰한 입술.


숨죽인 비밀이,

그 입가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녀의 옷은,

그 하얀 얼굴과는 정반대로 오색찬란했다.


요한은 요괴라는 걸 알면서도

왠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떻게 오셨죠?”

“여기가… 인간 세상 심부름해 주는 곳 맞나요?”

“네, 잘 찾아오셨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요한은 의자를 끌어주며 자리를 권했다.

그녀가 앉자, 살짝 밀어주었다.


“고맙습니다.”

“먼저, 성함과 의뢰 내용을 말씀해 주세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네.

제 이름은… 야광이에요.”



- 계속 -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제가 정말 아끼는 작품입니다.


기묘하지만 따뜻하고,
조용하지만 마음 깊이 울리는 이야기.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세계를 따라와 준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좋아해 주는 독자분이 생긴다면 영광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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