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광귀의 의뢰 (1)
“아… 야광귀님이셨군요.”
요한은 의뢰자 카드에 그녀의 이름을 적었다.
야광귀.
어릴 적, 어른들에게 수도 없이 들었던
정월 대보름의 신발도둑 요괴.
신발을 도둑맞으면
그해 내내 액운이 따른다고 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신발을 훔치지 못하도록
방 안 깊숙이 숨겨두곤 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존재는—
요한이 상상해 온 야광귀와는 전혀 달랐다.
요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사람 같았다.
화려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왠지 쓸쓸하게 보였다.
하지만 야광귀 특유의 패션 센스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노란 원피스에 빨간 카디건.
마치 겨자소스에 케첩을 얹은 듯 촌스러운 색 조합.
그런데도 그 당당함 덕분에
오히려 강렬한 개성처럼 느껴졌다.
“네, 야광님. 계속 말씀해 주세요.”
“실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계속 맨발로 다니고 있어요.”
요한은 무심코 그녀의 발을 보았다.
그 순간, 야광의 얼굴이 붉어지고
몸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 죄송합니다!”
요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괜찮아요. 다들 그런 반응을 보여요.”
야광은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반짝이는 몸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의뢰는… 뭐, 예상하시겠지만
신발을 찾고 싶어요.”
그녀가 작게 웃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문 앞에 체를 잘 안 걸어두더라고요.
덕분에 밤새 구멍 세는 일은 줄었죠.
정말 다행이지 뭐예요.”
“아… 맞네요. 야광님은 체에 구멍이 몇 개인지
세는 걸 좋아하시잖아요.”
“잘 아시네요! 예전 선배들은
문 앞에 걸린 체의 구멍을 세느라
밤새도록 신발도 못 챙겼다니까요.”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귀 기울이자,
야광은 점점 더 신이 났다.
“근데 요즘은 신발이 문제예요.
너무 뾰족하거나,
굽이 높거나…
크록스는 편하지만 뛰긴 힘들고.
어떤 신발은 안에 땀이 엄청 차고요.
실용적인 걸 신자니, 안 예쁘고…
정말, 제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요.”
“네, 정말 힘드시겠어요.”
“보시다시피,
저 아직 어리잖아요.
그래서… 꿈이 있어요.
아무 신발이나 신고 ‘끝’ 하고 싶진 않아요.
세상엔 가보고 싶은 곳도,
예쁜 신발도 많거든요.
아니… 신발을 하나만 가지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전 아직도…
맨발로 다니는 거예요.”
“그러게요. 야광님.
평생 신을 신발을 하나만 골라야 하다니,
쉽지 않으시겠어요.
그래도… 아무 신발 하나만 있으면,
떠나실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럼, 제 신발이라도 드릴까요?”
요한은 망설임 없이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야광에게 내밀었다.
그 순간—
바닥 아래에서 손이 번개처럼 튀어나와
순식간에 낚아챘다.
“요한아… 그거 주면… 크읍… 1년 내내 재수… 없다…
나 땐… 이런 귀신은… 집에 들이지도… 않았어... 크크크…”
“뭐, 뭐라고요?!
누구신데 말을 그렇게 하세요?”
요한은 허둥지둥 신발을 다시 받아 신었다.
야광귀는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냈다.
“죄송합니다.
고모가 저를 좀 과잉보호하셔서…”
“아! 정말!
게다가 그 신발
애초에 받을 생각도 없었어요!
저만의 특별한 신발을 원한다니까요!”
“야광님,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요한이 깊이 고개를 숙이자,
야광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됐어요, 요한 씨 잘못은 아니니까요.
앉으세요, 앉으세요.
고모님 말씀도 틀린 건 아니죠.
제가 신발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긴 하니까요.”
요한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의뢰 내용을 조금 더 들어볼게요.
원하시는 신발의 모양을 말씀해 주실래요?”
야광은 잠시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한참 숨을 고른 뒤 입을 떼었다.
“사실…
선물 받았던 신발이 하나 있어요.”
“네?”
“그 신발을…
되찾고 싶어요.”
요한은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크게 떴다.
… 선물 받은 신발?
야광귀에게 ‘자기 신발’이라는 게 있었나?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야광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의 천진한 모습은 사라지고,
진지해진 얼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기억을 꺼내듯 말을 잇기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였는진 기억이 안 나요.
고등학생이었나, 대학생이었나…
확실한 건—
그때 제가
누군가를 정말 많이 좋아했다는 거예요.”
처음엔 그저 웃는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큰 키에, 큰 입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가 웃으면,
세상이 다 환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 사람은 제게 태양이었어요.
너무 벅차서 마음이 터질 것 같았죠.
혼자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결국 가장 친한 친구에게 털어놨어요.
“나… 걔 좋아하는 것 같아.”
친구는 도와주겠다고 했고,
정말 그렇게 해줬어요.
그가 어디 가는지 알려주고,
우연인 척 마주치게 해 주고…
그러다 보니,
셋이 함께 노는 날이 많아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의 친구가 말했어요.
“지금 옥상으로 가봐.
걔, 너한테 고백할 거래.
운동화에 네가 좋아하는 꽃을 그려서
준비했다던데.”
심장이 미친 듯 뛰었어요.
옆에 있던 친구도 웃으며 말했죠.
“축하해! 나도 같이 갈게.
그 순간은 꼭 봐야지.”
우린 함께 옥상으로 달려갔어요.
그 사람이 거기 있었고
정말… 제가 좋아하는 백합이 그려진 운동화를 내밀었어요.
“이거… 너 줄게.”
세상이 멈춘 것 같았어요.
하늘을 나는 기분이란,
바로 이런 거였구나 싶었죠.
하지만, 그가 떠난 뒤.
곁에 있던 친구의 눈빛이—
뭔가 이상했어요.
싸늘하다 못해 서늘했죠.
그제야 알았어요.
그 애도,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그 친구는
제 손에서 운동화를 낚아채듯 빼앗고,
그대로—
저를 밀었어요.
옥상에서.
……거기까지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기억이에요.
전…
그 신발만 찾으면 돼요.
그거 하나만 다시 찾으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 같아요.
……만약, 찾을 수 있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