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도대체 왜 미국인데?
한국이 싫은 건 전혀 아니었다.
한국만큼 살기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집 앞에만 나가도 이곳, 저곳 보이는 편의점들, 걷다 보면 보이는 여러 커피숍, 교통비 약 1400원만 내면 차 없이도 이곳저곳 갈 수 있는 곳이 한국이다. 그보다 내 가족, 친구들, 모든 것들이 익숙한 채로 남아있는 곳이 한국인데 굳이 이곳에서 살 이유가 있을까? 돈만 많으면 한국이 살기 최고라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빠르고 편리하고 익숙한 곳은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난 미국에 살게 된 걸까.
19살 수능이 끝나자마자 나는 12월 첫 주말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다. 주말마다 죽 집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며 한 달에 약 80만 원 정도의 돈을 벌기 시작하였고 그다음 해 4월까지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이제 막 20살에게 주말을 통으로 반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새로운 일을 찾아보던 중 집 근처 SPA 브랜드 매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학교는 일주일에 딱 2번만 나가고 주 5일 8시간씩 일했다. 그렇게 1년을 일했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정말 많이 배웠다. 물건을 파는 법, 고객을 대하는 법, 재고 조사 등 업무적으로도 많이 배웠고 특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시야도 넓어졌던 것 같다. 그러나 1년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6개월 정도 쉬면서 제대로 된 대학 생활, 새내기 생활을 못 한 것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학교에서 밤새 공부도 해 보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학우들과 재밌게 노는 이런 추억들이 나에게는 하나도 없었다.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 걸까'에 대해 고민을 하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코로나가 점 점 더 심해지면서 학교가 모두 비대면으로 바뀌며 모든 활동들이 잠정 연기가 되면서 학교에서 내가 얻어갈 수 있는 것들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스펙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동아리 활동, 학회 활동, 교환학생 등 모든 기회들이 확실하게 막히기 시작하자 나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차라리 이 참에 빨리 졸업하고 일이라도 빨리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21살부터 '취준'이란 것을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취준이기에 더 자신 있었다. 내가 가고 싶은 분야에서 어떤 것을 스펙으로 인정해 주는지, 누구보다 빠르게 알고 자격증과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업계 관련 자격증만 3개, 토익, 토익스피킹, 오픽 등 내가 가진 영어 점수만 벌써 3개가 되었고 컴퓨터 활용 자격증, 토론대회 수상, 이커머스 교육, 인턴까지 이력서에 내가 쓸 수 있는 칸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졸업반이 되고, 한 학기를 남기고 처음으로 자기소개서를 진지하게 써보았다. 나름 한 자 한 자 문장을 늘려가며 그렇게 30개의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다. 쓰면서 자신이 있었던 부분도 많았고 제출 후 그다음 스텝인 기업 역량 평가까지 모두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탈락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직무에 적합한 경험, 필요한 자격증 모두 있었고 각 자기소개서 문항을 모두 분석하여 무엇을 원하는지 확인하고 그에 맞춰서 정성 들여서 썼는데 전부다 탈락이라니. 나는 당장 학교 커리어 센터, 아는 선배, 일자리 센터, 자소서 스터디 등 다양한 곳에 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여주었고 돌아오는 대답은 전부 같았다.
" 근데, 해외경험이 없네? "
내가 희망하는 직무는 해외영업, 수출입 사무, 해외 이커머스 판매, 물류 등 해외에 무언가를 팔고 들여오는 일이었다. 취업 시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험', 나는 그래도 내가 지원하는 직무에 맞는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했다. 계약직이었던 2년 알바는 충분히 세일즈, 고객서비스에 녹여낼 수 있었고 공기업에서 한 인턴은 사무직 경험, 각종 영어 성적, 무역, 물류 자격증, 컴퓨터 자격증은 충분히 이 업계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었고 이 외에도 토론대회는 팀워크, 이커머스 교육은 해외 이커머스 세일즈에 연결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정말 해외경험 때문이라니.
"누가 한 번도 해외에 나가지 않은 사람에게 그곳에서 물건을 팔라고 할 수 있겠어? 요새 다들 6개월짜리 교환학생도 갔다 오더라."
대학에 오면 이것저것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수능을 치고 수시 결과를 기다리며 나는 어떤 유튜버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영상을 보았다. 진짜 대학에 가면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기회가 열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20살이 되고 나는 한 번도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본 적이 없다. 아직 고등학생, 중학생 동생이 둘이라 어쩌면 K - 장녀라서 손을 못 벌린 것도 같다. 아쉬운 소리 하지 않게 내가 내 돈 벌어서 감당했던 것 같다. 사실 그게 내 마음이 더 편했다. 그러나 교환학생, 해외 인턴, 최소 천만 원은 있어야 하는데, 내가 그 돈이 어디에 있겠나. 방학에 유럽여행을 간다고 해도 지금 당장 일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사치다.
아르바이트를 재미로 하는 친구가 있었다. 약사 어머니, 대기업에서 일하시는 아버지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난 그 친구. 어떻게 보면 재벌처럼 잘 사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본인이 하고 싶은걸 일주일 내로 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의 대화에 내가 낄 수 없었다. 어디 여행 간다더라, 그 운동화 예쁘더라 하는 그 얘기를 들어주면서 처음으로 조금 부러웠다. 지금 보면 그렇게 큰돈도 아니었는데 그 당시 20만 원짜리 운동화는 내겐 사치라고 생각했고 엔화가 떨어졌다고 가는 일본 여행도 나에게는 큰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현실이다. 기회가 적다. 나는 내가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고 내 삶에 대해 만족하려고 해도 나보다 더 열심히 사는 친구들이 많았고 넉넉한 형편에서 자란 친구들은 아무래도 나보다 빠르게 하고 싶은 것을 누릴 수 있었다. 중소기업에 먼저 들어가서 스펙 쌓아 이직하라는 말도 사실상 젊으니 열정 페이로 일하라는 말밖에 들리지 않는다. 작은 기업에서 적은 월급 받으며 일스트레스, 사람 스트레스받으며 일하는 것이 당연하고, 중고 신입으로 이직하는 것도 사실 모두가 준비하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다. 중고신입은 또 다른 신입의 길을 막는 것과 같다. 그런데 모두가 이 길이 더 낫다며 모두가 헛된 바람을 넣는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땅은 좁고 사람은 많아 기회가 많지 않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모두가 경쟁적으로 변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약 12년을 열심히 공부하고 나면 취업을 위해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그렇게 자리를 잡으면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를 길러야 하고. 모든 것에 답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이 답을 따라가지 않으면 사람들은 '걱정'이라는 단어로 '충고'를 하며 독을 뱉는다.
사실 '누구는 뭐 샀더라', '옆 집 걔는 어디 학원 다닌다더라.'와 같은 것이 무엇이 중요할까? 그러나 한국이라는 사회에서는 중요했다. 쟤 보다 나아야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고 조금이라도 이긴 것 같은 그 마음.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공부에 시달리는 것도, 모두가 대학을 나오는 것도, 그럼에도 한국의 고용률이 계속해서 줄고 있고 실업률이 늘어나는 이유를 누구는 청년들이 눈이 높아져서 작은 회사에 가지 않는다더라, 요새 취업 관련 수당들을 퍼줘서 취업을 안 한다와 같이 이야기한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것이 모두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을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섣부른 일반화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화살처럼 콕 박히기도 한다.
그렇게 미국으로 도망치듯 왔다. 반복되는 매일이 불행하게도 너무 똑같아서. 안정되지 못한 것들 사이에서 혼자 뚝심을 지키는 것은 나에게 너무 가혹했다. 단순히 이곳은 다르겠지 하며 왔다. 그냥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고 나면 스스로를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과가 성공이던, 실패던.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다. 한국은 여전히 보고 싶고 그리운 존재이다. 그렇지만 내가 살기에 그곳은 단순하게 너무 좁았고 끓는 용암 같았다. 그 온기가 너무 숨 막혀서 더 넓은 곳을 도망쳐왔다.
++쿠키++
근데 왜 하필 미국이냐면, 영어를 처음 배울 때 배우는 미국이라는 나라, 재밌는 영화를 보면 나오는 미국, 큰 대륙, 다양한 자연환경, 친절한 사람들. 해외=미국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그래서 그냥 튀었다. 미국으로.
**영화 '한국이 싫어서' 포스터의 일부를 사용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