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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숲 May 01. 2020

친구야 네 잘못이 아니야

우리가 겪는 실업의 어려움에 말 걸기

친구와 약속을 잡고 도서관 옆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바람이 좀 불었지만 햇빛은 따뜻했다. 카페에 도착해 반갑게 인사를 하고 무얼 먹겠냐고 물으니 도리어 지갑을 꺼내서 사주겠다고 한다. 우리는 둘 다 실직 상태이다. 허리 띠를 졸라매야할 시점인 형편을 서로 알면서도 도리어 무얼 사주겠다는 마음이 고마웠다.


나는 커피를 친구는 케이크를 골라서 테이블로 돌아왔다. 우리는 지금 형편이나 상황이 비슷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 만으로도 서로 공감이 많이 간다. 친구는 얼마전까지만해도 비정규직으로 근무를 했었다. 지금은 계약이 끝나서 새로운 일을 찾아보고 있다. 친구의 업무 특성상 그런 일은 6개월~1년을 주기로 자주 찾아온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참 많다. 내 친구와 내 형제자매도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주위의 사람들을 보아서는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알 수 없으니 감이 안오지만, 우리나라 비정규직 인구는 748만 1천명에 달한다.(통계청, 2019.11) 임금 노동자의 36.4%를 차지하는 비율인데 10여 년 만에 최고라는 기사도 나왔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끊임없는 고용과 실업의 불안에 시달린다. 


친구도 심적으로 많이 지쳐있는 것 같았다. 다른 길을 찾고 있었는데, 면접이 잘 되지않아 '내가 부족한 걸까' 라는 생각에 시달린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불안함으로 괴로워하며 기분이 바닥을 치고 있었던 지라 무척 공감이 되었다. 


나도 '요새 나를 필요로 하는 일터가 없을까봐서 불안하다'고 털어놓으며 '면접 한 번으로 자신감을 잃을 필요는 없어, 너를 데려가는 곳이 행운이지, 다 잘 될 거야.'하고 힘을 복돋아주었다.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생각해보니 정작 나 자신한테는 엄격한 말들만 하지 위로나 응원의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은 친구와 나는 둘 다 집안에 실업자가 속출하고 있어서 더욱 걱정이 컸다. 봄이 되어 가는 데도 코로나19 때문인지 일자리가 올라오는 것도 주춤했었다. 친구는 실업의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들을 돕는 일이 하고 싶다며, 비영리 활동가로 일할 꿈을 키우고 있다. 오랜 시간 지켜봐온 이 친구는 심성이 아름답고 성실하여 데려가는 곳이 복받은 것이다, 생각하고 있지만 현실 속에 우리는 이력서와 경력, 면접의 단계에서 경쟁자들과 비교당하고 판단을 받는다. 정해진 일을 할 만한 적임자인지, 마땅한 경력이 있는지, 사람은 원만해 보이는지 등을.


나 자신을 고용 시장에 내어놓고 소개서와 면접 과정에서 회사의 비젼과 나의 가능성을 늘어놓고 있자면 스스로를 속이는 기분이 들때가 있다. 이 사람들은 누군데 여기 앉아서, 무척이나 깐깐한 꼼꼼한 얼굴로 날 뜯어보고 있는 걸까? 그리고 나는 왜 절실하게 이 회사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걸까. '나'와 '우리' 속에서 긴장되는 줄다리기를 하며 과연 이 곳이 소속될만한 곳인가 눈치를 본다.


일을 관두고 돌아보니 일터에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은 가장 아쉬웠다. 일이 우선인 분위기라 친구를 만들기 어려웠다고 변명해본다. 그런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바꿔보려고 애쓰다가 포기했다가, 다시 나름대로 애썼다. 그럼에도 충분히 얻어내지 못했던 소속감, 공동체, 관계의 욕구는 그마저도 상실했다. 친밀한 친구는 하나도 없었지만 모두 다 친구였던지 헤어지는 일은 마음이 아팠다. 


참으로 단순한 어린아이처럼 일을 할 때에도 사랑하며 일하고 싶어하나보다. 친구에게 해주었던 말처럼 나에게 긍정적인 말들을 건네기로 마음 먹었다.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멋진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사진 : pixabay,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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