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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숲 Aug 01. 2022

종이부채와 손선풍기에 대한 생각

열대야를 지내며

지하철에서 접는 종이부채를 쓰는 사람을 보았다. 어릴 때나 가지고 놀던, 촤라락 펴지는 그 부채 말이다. 엄마와 아빠가 산에 다녀오시면 어딘가 산자락 기념품 가게에서 팔 법한 종이부채를 사 오셨었다. 걔 중에는 아주 크고 멋진 수묵화가 그려진 고급스러운 한지 부채도 있었다. 나무를 깎아 광을 낸 손잡이에 짙은 녹색, 푸른색, 검은색 등 멋스러운 한지가 붙어있었다. 요리조리 살펴보며 이런 멋진 물건을 만든 사람이 누굴까 궁금했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손선풍기의 전자파가 기준치보다 수백 배로 높아 발암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도 부채를 꺼내 써야지 하고 생각만 했는데, 실제로 종이부채를 쓰는 사람은 몇 년 만에 처음 보았다. 집에서 부채를 찾아보니 하나도 없었다. 그 많던 기념 부채는 부모님 댁에 다 두고 나왔나 보다. 어릴 때는 부채가 많았는데 이제는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

  어젯밤,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더위에 잠에 들기가 어려웠다. 계속해서 뒤척이던 잠자리가 등 닿는 부분마다 뜨겁고 불편했다. 새벽녘 간신히 선잠에 들었으나 수십 번 깨어나길 반복했다. 피곤한 일이지만 익숙한 일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일요일 밤에는 잠을 잘 자질 못한다.

 일주일의 일거리를 떠올리며 예민하게 잠을 뒤척이는 밤이면, 열대야를 실감하게 되고 거실의 작은 에어컨을 틀었음에도 열기에 잠을 뒤척이게 된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실로 에어컨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기후 위기에 건강도 삶도 위협받는 사람들이다. 기후 취약 가구는 곧 에너지 취약 가구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나에게는 손선풍기도 여러 개 있고, 집에는 에어컨도 있다. 방 안에는 선풍기도 있다. 집에 흔한 선풍기 하나 없는 사람들에 비하면 송구스러운 풍족함이다. 물건도 먹는 것도 풍족하지만 여유 있는 시간, 여유 있는 마음은 늘 부족하다. 종이부채를 더 사기보다는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던 부채를 찾아봐야겠다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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