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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숲 Sep 10. 2022

밤에 책 읽기 만큼 그리운 글쓰기

살면서 있고있던, 사랑하던 일들

민족 대이동이라고 불리는 추석 명절의 밤이 또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재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사람들은 졸기도 하고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기도 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컴컴한 내부는 잠을 취하기에 제격이다. 버스에서 작은 조명등을 켜고 있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다. 빛이 딱 책 위에만 머물러 다행이랄까. 안톤과 나는 나란히 앉아 각자 손바닥만 한 책을 꺼내놓고 읽었다.

  오랜만에 마음이 잔잔해지는 소설집을 읽으니 평온함이 느껴졌다.('목요일에는 코코아를' 이란 책이다.) 평론집을 읽던 안톤이 재밌어하며 15분만 책을 읽어도 스트레스 수치가 감소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검색을 해보니 실제로 우울증에도 효과가 있단다.

 작은 책이 주는 위안.

 그런 위안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나 보다. 바쁜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유일하게 읽는 건 휴대폰 액정의 뉴스 기사와 간간히 읽은 웹소설이었다. 재미는 있지만 종이책과는 달랐다. 그저 무료함을 삼키기 위해, 소비하는 글들이었으니까. 읽고 나면 무슨 내용인지 마음속에 남지도 않았다. 그냥 또 다른 글을 찾아 헤맬 뿐.

 이따금씩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불안이 불쑥 엄습할 때, 반등처럼 떠오르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아이디어와 희망이 반짝거린다.  아침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 책을 읽거나 다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해보면? 이런 생각을 습관처럼 하는데 일상의 나는 매일 출근과 퇴근만을 반복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다음날을 준비하기 위해 잠자리에 든다.

 다정한 안톤은 저녁에 책을 읽자며 들뜬 아이처럼 내 팔을 붙잡는다. 나는 좋다고 대꾸한다. 실은 책 읽기도 좋고, 무엇보다 글이 쓰고 싶다. 시간을 늘리고 잡아당겨 여유 한 방울의 시간을 짜낸다면 정말이지 글을 쓰고 싶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글. 내가 즐거운 글.

 하지만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할 때에도, 시간이 많을 때에도 나는 글을 쓰지 않았다. 수년 전 고통스럽게 장편 소설을 하나 쓴 뒤에는 이야기를 전혀 쓰지 못했다. 실서증이라도 걸린 듯했다. 이야기를 쓸만한 재능이 없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옥죄였다. 간간히 쓸 수 있는 일기와 브런치의 글이 내게는 샘물과 같았다.

 수년이 지나며 몸이 아프고 마음이 깎이며 깨달았다. 완벽주의와 같은 내 성향이, 높은 기대와 낮은 신뢰가 숨 막히는 침묵을 가져왔음을 말이다.

 글쓰기도 책 읽기와 같이 즐거움의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그 즐거움의 감각은 괴로운 일상에 치여 잊어버리기 쉽다. 잊어버리면 한없이 잊어버릴 수 있는 내가 사랑하던 일들. 누구에게나 사랑하던 일이 있을 것이다. 한 밤에 달리기, 책 읽기, 강아지와 놀아주기,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나누기, 근사한 사진을 찍기 등등. 우리가 그 감각을 잊지 않고 사랑하는 일을 하는 시간을 보내며 자유를 허락할 때 우리는 보다 행복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인생은 그런 시간으로 가득차 청연하게 빛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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