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지극히도 주관적이고 지독하게도 개인적인 그것. 그 누구도,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스펙트럼들.
나는 부정적인 감정에 쉽게 잠식되는 사람인데,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다 다른 이름의 감정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이 찬찬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쉽게 ‘분노’로 단정 지어 표현한다.
어느새 모든 순간들에 화를 내는 내가 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범주의 말과 행동들, 나의 의도를 곡해하는 의견들, 철저히 나를 오해하고 이내 확신해버리는 수많은 상황들.
왜 ‘저렇게’ 하는 거지, 왜 날 ‘오해’하는 거지, 내가 말해도 ‘안’ 받아들일 거 같은데. ‘왜’ 저러지, ‘왜’ 저렇게 말하지. 왜, 왜, 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들만의 판단은 그들의 것인데 또 건방지고 오만하게 내가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나는 또 ‘화’를 내고 있었다.
분노와 같이 그것에 쉬이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끝없이 먹이를 탐하는 아귀(餓鬼)와 같아서 먹이를 던져주면 더 큰 먹이를 원하고 나를 놔주지 않는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나’를 먹이로 던져주고 먹힌다.
나의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불러오고 점점 분노에 집중되어 시야가 철저하게 차단된다. 오직 게걸스러운 아귀만이 나에게 남는다.
내가 찾아낸 아귀에서 도망치는 방법은 시선을 얼른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힘들지만. 숨 한번 크게 내쉬고 생각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분노에게서 도망친다. 나는 순간의 행복함, 설렘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아귀에 시선을 집중한 채 뜯어 먹히면서 사는 건 나에게 너무 손해니까. 도망친다.
감정은 감정으로 끝내야한다. ‘화’가 난다고 큰 소리를 내거나 험한 말로 누군가의 눈초리를 찌푸리게 하면 안 된다. 감정은 그저 감정이고 어떤 행동에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감정은 어떤 핑계가 되지 않아야 한다. 내 감정이 더더욱 깊어져서 어떠한 행위에 핑계로 쓰이지 않게 도망쳐야한다.
산책을 하거나 달리거나 글을 쓰거나 타자를 두드리거나 울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온갖 방법을 다 써서 도망친다, 환기시킨다.
감정은 ‘내’가 아니다. 그저 내가 느끼는 것에 불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