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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행젼 Sep 26. 2020

인문대생 이야기

지금은 보통 아줌마인 내 이야기

지금은 그냥 아줌마인, 그래도 호기심 가득한..소녀인 내가 쓰는 글이다. 

그래도 이전과는 다른 현실이지만..(?)..

그래도 항상 소소한 희망을 안고 살고 싶어하는 마음에 쓰는 글이다.

이 글은 나와 같은 인문대 전공이나, 취향을 같은 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그리고 나를 응원하는 글이기도 하다.





내 이야기를 해보면,

나는 지리교육과를 가고 싶었다. 사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하고 싶은건지..지리가 좋아서인지..그냥 대학을 가야하니까..그 중 관심있었던 것을 껴맞췄는지 모르겠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난 몇 분의 좋은 선생님을 만났었고..나도 어떤 누구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내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지리 시간이 재밌었다.

그때는 너무 단순한 생각이었는지 모르는데 지금 지나보면 성향이나 관심 등이 다 얽혀 있는 이야기 였던 것 같다.


나는 수능을 망쳤고..

우리 고3 담임 선생님은,

'망쳤으니 재수하지 뭐, 원서 안 쓸래' 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끝까지..4년제,2년제 ..해볼때까지 써보고 그 다음에 생각하라고 하셨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그건 진짜 좋은 가르침이었다..

나는 선생님 말대로 망친 내 점수로..써 볼때까지 써봤고,

후회없이 재수를 택했다..


재수를 했다고.. 원하는 대학과 전공을 선택 한 건 아니였으나,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내 전공은 '불어불문학'이다. (프랑스어 그리고 문학, 문화 )

솔직히 들어가서 영어영문으로 전과해서 교직이수 따서..임용고시를 보고..그렇게 하자. 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 학기는 나 스스로 방황했던 것 같다..


삼수를 할까..


그러던 중, 아 일단 여기서 최선을 다해 적응하고, 공부도 잘해서 삼수든 편입하더라도..도피성은 되지 말자.


그 이후, 적응했고..

영어도 잘 못하는데 프랑스어를..? 부담과 ..그리고 그 발음들도 못하겠고.. 처음부터 관심가지지는 않았다.

난 친구와 동아리도 들고, 프랑스 어학원도 다니고..

주말 알바와 과외 등으로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학교에서 방학때 프랑스를 한 달 가는 체험,

단기어학연수를 가는 프로그램에 지원해 보게 되었고,

친구들과 프랑스를 가게 되었다.

이게. 2006년도 12월말에 가서 2007년도 2월에 왔으니..13-14년 전의..일이다.

그때만 해도 핸드폰이 인터넷 되던 시절이 아니다.

나는 노키아 캔유폰(폴더), 터치폰 쓰던 시절이었다. 전화도 국제전화카드 사서 충전해서 쓰던 시절이었던 듯 하다.


프랑스 여행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그 시절 다녀온 후..나는 많이 달라지지 않은 듯 또한 달라졌다.

다녀오고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아비뇽 마을 작은 극장, 평일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연극관람을 했고,

마을 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고,

내 눈에 사람들이 문화 예술이 삶과 긴밀하게 가까이 있어보였고 좋아 보였다.


다녀와서는 여름방학 때 이런저런 축제 봉사활동을 했다.

나에게 너무 좋은 경험이었고,

이것 또한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 인 것 같다.

뭔가 멋졌다. 그리고 문화를 통해 힐링, 공감 등을 하는 사람들의 눈빛도 좋았다.


그래서 나는 문화행정 분야쪽으로 일을 하고 싶었고, 행정학과를 복수전공 했다. 그 당시 인문대 친구들은 경영학 복수전공을 많이했다.

프랑스어 교직이수도 따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누굴 가르친 정도로 잘하진 않았고, 모르는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꾸준히 하여 DELF B1까지는 자격증을 땄다.)


계속 더 열심히 했으면 실력이 나았겠지?


그리고 대학교 4학년이 되기 전,

우리때에는 휴학을 많이 했다. 워킹홀리데이?를 많이 갔었고.. 나는 휴학없이 4학년을 맞이했다.

그전에 교수님 권유로 지역문화매개자 양성 수업을 방학때 했었고..(방학때였겠지? 기억이 가물..) 인턴까지 했었다.

그게 3학년 겨울 방학이었나..4학년이었나 기억이 왜 안나지?

우리과 교수님이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셔서 내가 교재를 만드는 것을 도와드렸고 (그래봤자.. 강사분들 교재 합치고 인쇄).. 출석현황(왜냐면 교육 비용이 나가기 때문).. 그리고 발표할때 학생대표로 소감정도를 이야기했었는데,

수고했다고 usb를 선물해주셨는데 아직까지 갖고 쓰고 있다..

와우..십수년 된거네..


그리고 나는 문화쪽 관련, 행정관련 그들의 교집합이 되어있는 분야쪽으로 지원을 많이 했었다.

그때 다들 대기업이나 공기업, 은행권 등을 많이 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너무 순수했던거 같기도,, 허세가 있었던 거 같기도.. 열정이 있었던 거 같기도..모르겠다.


예전에 교수님이 나에게 이런말씀을 하셨다.

"이 쪽 길은.. 돌아가는 길일 수 도 있지만 그래도 쭈욱 해보라는.." 말이셨던 거 같은데 너무 오래되서 기억이 안난다..


그런데 일단 경력이 없고,

그렇다고 굉장한 박봉에 맨땅에 헤딩을 할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관심과 열정을 닫을 마음은 없고..


(어쩌라는 거지?!!)


내 마음은 그러했다.

그게 솔직한 것일 터..


그리고 동아리 다른 전공(특히 공대계열)은 취업이 잘 되더라. . 자신감은 사라져갔다.



지금 돌이켜 보면.. 좋아하는 것과 직업을 꼭 동일시 했어야했나? 라는생각도 든다..

좋아하는 것과 직업(돈을 버는 수단)을 분리해서 생각했어도 현명했을텐데.. 그런 것 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사회문화만 해도.. 뭔가 '열정을 다해라', '네 꿈을 펼쳐라' 라는 시대였다.(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순간 순간 대학원을 다니고 싶기도 했고, 알아도 보기도 하고 상상도 해보았다.

그런데 매번 뭔가 '용기' 와 '도피성'에 대해서 갈팡질팡..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도피성이라도 용기 내어봤어도 2-3년이었을텐데.. 왜 그렇게 기간이 커보였을까?

멀리서 봤음 그..2년 짧았을텐데..


뭐.. 나는 문화쪽은 인턴할 때는 약간이라도 발을 담궜으나.. 그 이후에는 일반 회사의 사무직 일을 했다.

사무직일도 보면 직무가 엄청 다양할텐데..

사무직이라고 명명하는건.. 너무 단순해 보이는..


그래도 틈틈이 회사 외에 관심있는 부분이 생기면 도전하기도 했었다.

도서관련, 문화 관련, 드라마 관련..

뭐 앞으로 내 인생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비인기 전공학과를 전공하는..

나와 같은 그들이 있다면..

(내가 뭐라고 ..할말은 없다만..)


졸업 후,

나도 내 전공이나..내가 대학에서 배운건 뭘까?

라는 질문을 많이했다.


잘 모르는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화자에게 집중 해야하며,

내용의 흐름을 놓치지 말고 표정이나 어투도 신경써야 한다.

그 대화 속에서 나는, '센스'를 배워갔다고 생각한다.


다른나라 문화를 배우면서,

우리나라 문화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문학, 문화 등을 배우면서 시작된 여러 활동들이

지금의 내 취미 등을 갖게 되는데 일조 한 것 같다.


이러한 가치들이 가시적, 수치화 되지 않고,

그것이 취업이나 연봉 등,

그러한 잣대로 내가 높이 평가되지 않을 지라도..

인문..대 졸업한 것은...

내가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 활력을 얻고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조금은 배운 것 같다.



지금도 육아대전 속에서..

나름 숨쉴 구멍을 찾지 않는가?



그러니..

자신을 얻고 용기를 갖길.

(나에게도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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