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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한나 Oct 21. 2023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독후감상문

그의 시 - 냇물에 비친 내 모습

그의 시 - 냇물에 비친 내 모습
: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독후감상문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작품 소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의 사후에 출판된 유고시집이다. 1941년에 19편이 완성되어 시집으로 펴내려던 것을 일제의 검열을 우려하여 이루지 못하고 1948년 정음사(正音社)에서 유작 30편을 모아 동일한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1948년 2월 윤동주의 3주기 추도식에 맞춰 갈색 벽지로 표지를 한 초간본 10권이 제작되었고, 정음사에서 발행한 것은 그 다음 달 1,000부를 찍어낸 초판본이다. 책은 다 됐지만 표지가 아직 덜 된 상태에서 추도식에 쓸 책을 따로 표지한 게 초간본이고, 한 달 뒤 이정의 파란색 판화 그림을 달고 초판본이 나와. 당시는 세로쓰기를 하던 때였으나 정음사를 만든 외솔 최현배의 뜻을 담아 한글 가로쓰기를 하다. 초간본 중 한 권은 울산광역시 남구 울산박물관에 있다.


H의 독후감상문


이익준 감독님의 『동주』를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그 격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부끄럽다고 울부짖던 윤동주 시인의 절규가 내 혈액 한 방울방울마다 짙게 스며들었다. 그날, 너무 많이 우느라 걸을 수 조차 없었고, 이틀 정도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무던히 살아가는 내 자신의 살아가는 모든 행동이 부끄러웠다.



어렸을 적, 키가 크다는 건 저주인 줄로만 알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내 키는 벌써 186cm였고, 몸무게도 세자리 수 가까이 되었다.


“아무도 너 괴롭히는 사람 없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나는 어릴적부터 따돌림을 당했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건 사랑받기 힘들다는 의미였다. 나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나는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다가가면, 그들과 하나 되어 섞일 수 없다는 것만 깨닫고 뒤돌아선 날들이 많았다. 사진을 찍으면 나 혼자 가장 못난 모습으로 튀어있었고, 돼지, 곰, 괴물이라는 별명들이 따라붙었으며, 어떤 옷을 입어도 자기혐오의 향이 났다.



그러던 내가 처음으로 의미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농구’였다. 내가 속한 팀이 대구 지역에서 무수한 우승을 하고, 여러 학교로부터 스카웃 제의도 받았었다. 하지만 운동 선수셨던 어머니는, 그 잔혹함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나를 끝까지 ‘공부’의 길로 키워내려 하셨다. 그러던 중학교 2학년, 운동의 길은 완전히 내려놓았던 내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자신을 ‘배구부 감독’이라 소개하며 명함을 내 전화번호를 저장해갔다.

심장이 뛰었다. 끝난 줄로만 알았던 내 또다른 세계가 다시금 열리는 느낌이었다. 부모님도 처음엔 열렬히 반대하시다가도, 겨울 방학, 2개월 동안만 그 학교 배구부에서 훈련을 받아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뛸 듯이 기뻤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2015년의 겨울 방학, 나는 매일 8시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그 학교로 가서 훈련을 받았다. 기본기도 없는 내게 코치님은 친절하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셨다. 농구로 다져진 운동신경과 근성, 그리고 타고난 키는 그들에게 큰 의미가 되었고, 환영과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어머니는 늘 술을 마시고 돌아와 울면서 내게 애원했었다.


“이제 그만하자. 그냥 가던 길로 가는 게 어떻겠니?”


그럴 때마다 나는 단단하게 대답했다.


“아냐, 난 배구가 좋아. 계속 해볼게.”


그럼 어머니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말없이 잠드셨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 방학이 끝나가는 시점, 너무 멀쩡한 정신으로 나를 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똑같은 말을 더 날카롭고 정제된 언어로 하셨다. 운동이 얼마나 힘든지, 그게 얼마나 불안한 일인지, 너는 결국 1등이 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며, 남들은 초등학생때부터 시작하는데 너는 이제 시작해서 무엇이 될 수 있겠냐는... 너의 야망은 그보다 더 크지 않냐는.......

그때 머릿속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매일 아침 후줄근한 추리닝차림으로 체육관을 향하는 모습이라든가, 조금씩 다가오는 벽과, 학원에서 꾸벅꾸벅 조는 내 모습, 벅찬 호흡, 네트를 넘어가지 않는 공... 그런 것들이 과연 내가 꿈꾸는 멋진 모습이던가? 어쩌면 지금의 내 모습이 초라해보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어떤 음성이 뱉는 호흡에 섞여 나왔다.


그래, 안 할게.


그리고 놀라서 내 입을 막았다. 어머니는 잠시 당황하더니 안도의 미소를 지으셨다.


그렇게 끝이 났다. 시작에 비해 끝은 너무 쉬웠다. 부모님이 나를 막아선 것이라고, 그때 어머니가 그러지만 않았다면 나는 끝까지 해냈을 것이라고 되뇌어보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결국 내가 결정한 일이다. 내가 포기한 길이다. 나는 울며 내 두 달의 배구일지에다가, 내 슬픔과 초라함에 대해 썼다.


글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야,
바로 나 자신.


중학교 3학년, 모든 것이 꿈을 꾼 듯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자리에서 듣는 국어 수업,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글을 쓰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고, 내 글을 남들에게 들려주며 많은 칭찬을 받았다. 그때 쓴 글들이 크고 작은 대회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다. 상장과 상금들, 기자들이 나를 찍어댔다. 문득 정신차려보니, 나는 또다른 세상의 문 앞에 서게되었다.


하지만 작가라는 꿈도 또 한 번 파멸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문/이과를 나누는 시점, 어머니는 문과가 취직이 안된다며 또 한 번 울었다. 그래서 이과의 길을 택했다. 두 번째는 그렇게까지 슬프진 않았다. 원망스러움은 커졌다. 그건 어머니에대한 것도, 세상에 대한 것도 있지만 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나와 내 미래에 대해 확신할 수 없는 내 나약함이 너무 밉고 부끄러웠다. 그러던 중 『동주』가 개봉한 것이다.




흘러가는 대사일지라도, 그 속의 작은 은유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끝까지 저항하지 못한 나를 동주에게 이입하며 참 많이도 격동했다. 더 이상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울어야 마음이 편해질 정도였다.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절망하는 청춘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것에서 묘한 위로까지 받았다. 그의 초판본 시집과 자필 원고들까지 모두 찾아서 구매했다.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 역시 그처럼 뜨거웠던 시절을 지나왔음을...


그의 시는 참 깨끗하다. 맑은 시 냇물에는 내 지난 모습들이 비친다. 나는 그곳에 잠시 잠기어보기도, 얼굴을 씻거나 한 모금 삼키기도 한다. 하늘 아래 살면서 바람을 괴로워하던 청춘, 별을 그리며 시를 부끄러워하기도 했던...... 하지만 바람도 시도 사랑할 수밖에 없던 당신의 순수는 나의 시절과도 아득히 닮아있다. 그 시냇물을 따라 지금껏 자라온 오늘의 내가 더는 밉지 않은 이유도, 그 치열한 방황을 지나왔기 때문일 테다.




언젠가 우리가 만나게 될 날이 온다면,

조금 더 자란 내가 당신의 어깨를 도닥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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