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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의 Dec 26. 2023

영화 <괴물> 심층 해석/리뷰

고레에다식 스릴러, 미지의 인간 심연을 다루는 새로운 시도


영화 <괴물> 리뷰/해석 
: 고레에다식 스릴러, 미지의 인간 심연을 다루는 새로운 시도

진짜 열심히 적은 글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시고, 공감과 댓글도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당 ㅠㅠ
구독까지 해주시면 영광스럽겠습니다!

엄--청 긴 글이니까 아래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 감독의 괴물 OST와 함께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https://youtu.be/CkmBQaFPU18



CH1. 개요


영화 기본정보

장르 : 드라마, 스릴러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각본 : 사카모토 유지 (+ 2023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

음악 : 류이치 사카모토

 

배우 :

안도 사쿠라(사오리)

나가야마 에이타 (호리)

쿠로카와 소야 (미나토)

히이라기 히나타 (요리)

다나카 유코(교장)


영화 간단 줄거리
“우리 동네에는 괴물이 산다”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행동에서 이상 기운을 감지한다. 용기를 내 찾아간 학교에서 상담을 진행한 날 이후 선생님과 학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흐르기 시작한다.

“괴물은 누구인가?”
한편 사오리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미나토의 친구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자신이 아는 아들의 모습과 사람들이 아는 아들의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데… 태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아무도 몰랐던 진실이 드러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영화 간단 후기



화를 세 번이나 보느라 업로드가 늦었다. 처음 보자마자 무조건 해석 글을 써야지- 생각했는데, 제대로 써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서 여러 번 봐야만했다. 처음 아무 것도 모를 때 본 것과, 두 번째 전체를 알고 본 것, 세 번째 디테일들을 짚어가며 본 것- 모두 감동이 확연히 달랐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괴물>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변형-


영화 감상 포인트

1.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장르 변신

2. 사건과 진실과 진심을 서로 끼워 맞추는 재미

3. 조각들을 하나씩 끼워내는 정교한 플롯

4. 의미를 더해주는 아름다운 메타포

5. 주/조연 배우들의 너무도 자연스러운 연기

6. 고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 감독님의 고품격 음향


잠깐! 스포일러 주의!


여기서부터의 글은 꼭 영화를 본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속 메타포들을 차근차근 파헤치는 해석 글의 성격이 강하므로

줄거리를 알고 보시면 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영화를 보신 것을 전제하고 쓴 글이므로 당연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특히 스포일러를 듣지 않았을 때 온전히 감동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구독"이나 "링크 복사"를 통해 저장해두시고

영화를 보신 후 다시 찾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CH2. 줄거리(플롯) 분석
그리고 메시지

이 영화의 줄거리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알고 보니
알던 것과 달랐다.

이는 1950년에 제작되어 명작의 반열에 오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과도 많이 비슷하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여러 인물의 사연(시점 혹은 진술)이 차례로 전해진다는 점에서 말이다. <괴물> 역시 <라쇼몽>처럼 플래시백을 통해 사건을 또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전개한다. 그 차례는 다음과 같으며, 편의상 '막'이라는 명칭으로 구분하였다.


1막 : 어머니 사오리 ->

2막 : 호리 선생님 ->

3막 : 아들 미나토


호리 선생님의 2막과 미나토의 3막 사이에는 교장 선생님의 시점(2.5막)도 잠깐 나온다. 이러한 막의 전환을 통해서 수수께끼와 오해와 분노가 차오르는 앞 부분의 서사들을 뒤집어 낸다. 그리고 끝내 어떠한 진실에 닿을 수 있게 된다. 그러한 반전 자체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그럼 세부적인 줄거리와 함께 더 깊이 파헤쳐 보자.


그러한 반전 자체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오해의 시작 : 1막 - 어머니, 사오리의  시점

잘린 머리카락, 물통에 담긴 흙, "돼지의 뇌를 이식한 사람은 사람이 아닌 거야?" 라는 물음...등등 아들 미나토에게 이상 증세를 느낀 사오리는 왜 그러는 건지, 무엇 때문에 그런 건지 묻는다. 미나토는 그것이 호리 선생님 때문이라고 했고, 이에 화가 난 사오리는 학교로 찾아가 따져 묻는다.

하지만 학교는 뭔가 이상하다. 사건을 빨리 덮으려는 것 같고, 명확한 대처를 하지 않는다. 또한 당사자인 호리 선생님 역시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며, 미나토는 지속적인 이상증세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머니인 사오리는 격분하여 변호사까지 고용하고, 결국 호리 선생님은 모든 내용을 시인한 채, 선생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렇게 스토리는 마무리 된 듯 했다. 권선징악-

인물의 입체성을 기가막히게 표현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치고는 너무 평면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나름 완결성은 있어서 이렇게 마무리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들 찰나, 다음 장면부터 모든 것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혼란의 시작 : 2막 - 호리 선생님의  시점

다음 막은 호리 선생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피해자, 그 다음을 바로 가해자의 시점으로 진행하는 것, 그 자체가 매우 신선했다. 처음, 사오리에 이입했던 관객을 완전히 배반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이야기야. 섣불리 판단하지마-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았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이야기야. 섣불리 판단하지마-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았다.


1막에서 어딘가 정신이 이상한 것처럼 보이던 호리 선생님은 2막에서는 굉장히 평범한 사람으로 등장했다. 아니, 평범한 것을 넘어 학생들을 사랑하는 따뜻하고 좋은 선생님이라 느껴졌다. 1막에서 사오리의 오해를 더욱 크게 야기했던, "걸스바에 다니는 선생님", "웃는게 음침한 사람", "변태" 등의 소문은 대부분 오해였다.


그는 자신의 반 학생 미나토를 학대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그 아이를 이해하려고 했고, 감싸 주었다. 그런데 오히려 미나토가 같은 학급의 친구 요리를 괴롭히는 것 같은 정황이 보이는 것 아닌가... 그 역시도 따뜻하고 성숙한 어른의 방식으로 해결해보고자 노력하였다. 그 과정에서도 학대라고 볼 수 있는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아동 학대 선생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 알고 있습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요. 필요한 것이 거짓이라면 거짓을 말해야죠.

   호리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의 대화 (이런 뉘앙스였음)

끝까지 학대에 대해 반박하며 버둥하던 호리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의 서늘하고 무서운 목소리에 고개 숙이고 만다. 이후 교사직에서 물러나야만 했고, 신문에는 학대 교사라고 공공연히 소문도 났으며, 여자친구와도 이별하게 된다. 그렇게 사회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고립되고 만다.

1막과 2막은 모두 태풍이 심하게 휘몰아치는 날로 마무리된다.

미나토는 집에서 사라졌고, 사오리는 미나토가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호리 선생님은 미나토의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소리친다.


미나토, 미안해!
선생님이 몰랐어, 미안해 미나토!"

그리고 3막이 시작된다.

이해의 시작 : 3막 - 미나토의  시점

1막에서는 사건을 보여주었고,

2막에서는 보여진 것만은 사건의 진실이 아니었음을 밝혔으니

3막에서는 진짜 진실을 보여줄 차례다.


왜 미나토는 죄없는 호리 선생님께 '누명'을 씌워야만 했는가-

이 겹겹이 쌓인 오해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던가-


3막이 시작하였을 때, 관객은 속으로 그 답변에 대해 갖가지 추측을 시작한다.

'미나토가 괴물이었네', '요리가 괴물이었나?', '아이들이라고 착하고 순수하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하지만 모든 진실이 밝혀졌을 때 관객들은 충격 받는다.

영화는 내내 인간의 모든 섣부른 판단과 오해들 때문에 고통받은 인물들을 보여주었다. 관객들은 그것을 여실히 지켜 보았고, 그것에 이입하여 혐오까지 하게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영화 속 인물에대해 자연스럽게 섣부른 판단들을 하기 시작한다. 감히- 말이다.

누군가 타인에 의해 고통을 받았고,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2차, 3차, N차 피해가 나왔으리라... 우리는 그 인과관계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누군가는 괴물로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 타인에 의해 고통을 받았고,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2차, 3차, N차 피해가 나왔으리라...
우리는 그 인과관계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누군가는 괴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호리를, 이후에는 미나토를, 요리를 '나쁜 X'로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그건 모두 부질 없는 짓이었다. 아래는 이 영화가 노린 바를 정확히 표현한 한 줄 평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양파처럼 겹겹이 까내려간 사건의 중심에는 혐오나 폭력 따위가 아닌, '사랑'이 있었다.


양파처럼 겹겹이 까내려간 사건의 중심에는 혐오나 폭력 따위가 아닌
'사랑'이 있었다. 

미나토와 요리의 사랑, 정확히 짚자면 남자와 남자, 바로 동성애- 말이다.


요리는 다른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고, 집에서는 아버지께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받았다. 미나토는 그런 요리를 보며 처음에는 동정하기도, 밀어내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감정이 깊어지고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동성애는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요리의 아버지에게는 '돼지의 뇌가 이식된 병'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비정상적이고 무서운 것이란 인식이 들었을 테다. 그걸 자신이 하게 되었다니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또한 어머니 사오리는 미나토에게 '멋진 어른'으로 자라나 '좋은 가정'을 꾸려가길 바란다. 그런 어머니의 바람은 압박이 되었을 것이며, 남자를 좋아하게 된 일은 자연스럽게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이자 죄책감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호리 선생님께 누명을 씌웠던 것도,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우발적으로 한 거짓말이 겉잡을 수 없이 커졌기 때문일 테다.


작품 내내 나타나던 미나토의 괴로움은 다음으로 정리할 수 있다.

- 요리를 향한 마음의 부정

- 요리를 괴롭힌 것에 대한 죄책감

- 요리를 향한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봐 불안한 마음

- 호리 선생님께 누명을 씌운 것에 대한 죄책감

- 요리를 가정과 학교에서의 폭력으로부터 지켜낼 수 없음에 대한 무력감 등등

요리와 친해지게 된 후 미나토는 요리의 아지트로 초대 받는다. 바로 숲 속에 버려진 열차 칸이다.

이곳에서 둘은 모든 게 새로 태어나게 되는 '빅 크런치'를 기다리며, 아지트를 빅 크런치를 위한 우주선으로 꾸며낸다. 그러면서 서로 재밌게 놀기도하는 등 좋은 추억들을 쌓아간다.


1, 2막 마지막 장면 폭풍이 내려치던 날, 사라진 미나토는 요리와 함께 이곳으로 간 것이다. 위험한 폭풍우를 뚫어서라도 이곳에 와서 빅 크런치를 맞이하려던 것이다.


그리고 비 그친 벌판을 둘은 자유롭게 뛰어 논다. 사랑처럼 자유롭게 뛰어 논다.


메시지 - 그래서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가?

인물들의 사연을 3막 구조를 통해 보여주면서, 영화는 관계 사이의 필연적 단절을 보여준다. 그것은 시스템이나 타인에 의한 외적인(타의적인) 단절도 있지만, 자신의 생각이 너무도 확고해서 생기는 내적인(자의적인) 단절도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단절은 분명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표현된다. 인간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온전한 진실을 마주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맞다고 믿는 것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편향될 뿐이다.


인간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온전한 진실을 마주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맞다고 믿는 것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편향될 뿐이다


그럼 단순히 그러한 단절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끝일까? 아니다. 어떠한 희망까지도 제시하는데, 그것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결정이다. 이후 메타포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해석하다보면 숨겨진 의도들이 더 선명히 드러나 보일 것이지만, 결론은 다음과 같다.

진실을 추구하며 하나씩 오해를 걷어내는 3막의 플롯, 그것을 통해서 인물들을 끝내 연결되게 하고, 끝내 사랑을 발견하게 만든다. 양파처럼 겹겹이 쌓인 오해의 벽들 한 가운데, 혐오나 폭력이 아닌 '사랑'이 있다는 것- 그 역시 참으로 아름답고 따뜻한 메시지다.



CH3. 메타포 심층 분석


다음은 이러한 의미들을 품격있게 강화해주는 영화 속 메타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분량 넘 길어서 자르려고 했지만...
그래도 두 개로 나누는 것보다
길더라도 하나로 합치는 것이 더 좋을 듯 해서 계속 씁니닷...

끝까지 읽어주시고, 공감과 댓글도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당 ㅠㅠ
구독까지 해주신다면 대박 감사드립니다~


1. 불과 물

뭐니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소재는 '' ''이다. 이들은 계속해서 변주되며 인물들의 상황과 감정, 메시지들을 대변해준다. '불로 시작해서 물로 끝나는 이야기'라고도 감독이 직접 밝힌 바 있다.

극은 화재 사건으로 시작되는데, 거대한 재앙처럼 비춰진다. 거센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만큼 말이다.

극이 끝날 땐 폭풍우가 몰아친다. 산까지도 무너뜨릴 만큼 거대하고 위험한 폭풍우 말이다. 

그럼 불과 물, 각각이 의미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하나의 원관념만 담겨있는 것은 아니지만)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앞서 말했던 '불로 시작해서 물로 끝나는 이야기'를 다시한번 풀어서 말해보자면, '뜨거운 불속에 담긴 진심을 향해,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뚫고, 범람하는 강물을 건너는 이야기'다.


[ 뜨거운 불 속에 담긴 진심 ]을 향해
[ 휘몰아치는 폭풍우 ]를 뚫고
[ 범람하는 강물 ]을 건너는 이야기

근거 및 심층 해석


1.1. 다시 태어나는 방법 (feat. 빅 크런치)

미나토와 요리는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고 싶어한다. '빅 크런치'를 기다리는 것 역시 다시 태어나길 소망하기 때문이다. 그건 다시 태어나서라도 동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마음 가는 대로 마땅히 사랑할 수 있는 세상으로 가고 싶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못하므로, 다음 생, 다음 세상에서 그러고자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정의한 다시 태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시체를 태우는 것이다. 죽은 고양이를 나뭇잎으로 덮어 태우는 장면에서 알 수 있다.

즉, 불꽃은 그들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하지만 미나토는 물통에 강물을 담아, 낙옆에 옮겨 붙은 불을 서둘러 끈다. 반대로 요리는 '타오르는 것'에 대해 덤덤하다. 미나토는 요리 보다도 겁이 많고, 그래서 마음껏 타오르도록 내버려 두지 못한 것이다. '타오르도록 내버려 두다'를 '사랑하다'로 치환해도 의미가 통한다. 


미나토는 요리보다도 겁이 많고, 그래서 마음껏 사랑하지 못한다.

1.2. 화재

극 초반부에 등장한 거대한 화재 사건, 그건 요리가 낸 것이었다.


미나토 : "아버지가 그곳에 다녀서 불을 지른 거야?"
요리 : "술을 마시는 건 건강에 좋지 않아."

(기억나는 대로 씀)

고양이 시체를 태울 때도 미나토와 달리 요리는 덤덤했다. 그 거대한 화재도 겁도 없이 저지를 만큼 요리는 불 내는 데 아주 거침이 없다.


위의 원관념을 대입하면, 이미 요리는 처음부터 겁내지 않았던 것, 자신의 진심을 꾸며내거나 억누르지 않고, 덤덤히 타오르도록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다.


1.3. 강과 배

요런 느낌...

막이 전환될 때 마다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바로 '강 풍경'이다.  처음 한 번은 그냥 이 마을을 보여주는 것이려니 생각하였으나,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분명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아무도 모른다>에서도 그랬듯,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배경의 상징성을 매우 잘 사용하는 감독이기도 하다. 그럼 이 강에 담긴 풍경의 의도는 무엇일까?


위의 공식에 대입해보면 강=물의 성질을 지님으로서, '단절'을 의미한다. 강 너머 닿을 수 없는 풍경처럼, 서로 닿을 수 없는 진심 같은 것 말이다. 이것이 막의 전환마다 등장하는 것은 '단절'을 일깨워 주고, 이어질 막을 통해 그것을 한 걸음 더 극복해보겠다는 의미처럼 다가온다.





강=물의 성질을 지님으로서, '단절'을 의미한다.

...

이것이 막의 전환마다 등장하는 것은 '단절'을 일깨워 주고,
이어질 막을 통해 그것을 한 걸음 더 극복해보겠다는 의미...


그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배'다. 이 영화 속에서 배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2막에서 3막으로 전환되는 중간 삽입된, 교장 선생님과 그 남편의 대화 장면에서다. 

손녀를 교통 사고로 죽인 혐의로 수감된 남편에게 교장 선생님은 종이 배를 접어서 건넨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그 종이 배를 천천히 펼쳐낸다. 비록 작은 종이 배이긴하지만, 이는 분명 '배'의 속성을 지닌다. 이는 앞으로 이어질 마지막 3막의 이야기가 그 강을 건널 수 있는 배가 되어주길 바라는 소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1.4. 휘몰아 치는 폭풍우 (feat. 요리의 글과 결말)

인물 간의 오해와 혼란이 가장 극적으로 축적된 순간. 폭풍우가 쏟아진다. 폭풍우 역시 물로서, '단절'이 극대화된 상황을 의미한다. 그러던 때 미나토는 사라지고, 호리 선생님은 미나토 집의 문을 두드린다. 극에서 생략되었지만, 호리 선생님은 어머니 사오리에게 미나토와 요리 사이의 이야기를 전했을 것이다.


호리 선생님이 그 두 학생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바로, 요리가 글쓰기 과제에 미나토와의 암호를 적어두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미나토는 나를 좋아한다, 나도 미나토를 좋아한다.'와 같은 꽤나 직설적인 내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사오리와 호리는 진실을 알게되고서 그 폭풍우를 뚫고서 달려간다. 미나토와 요리를 찾아, 서로의 진심과 진실을 찾아 필사적으로 달려간다.

'단절'을 뚫고, '진실'과 '진심'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뜨거운 울림을 느끼게 한다. 그들이 달려갔음에도, 결국 미나토와 요리에게 닿았는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그저 폭풍우가 그치고, 미나토와 요리가 자유롭게 뛰어노는 장면이 나온다.

완벽히 닿지는 못해도 좋아.
단지, 진실과 진심을 향해 끝까지 달려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 거야.

-라는 메시지 처럼 다가왔다.
- 우린 다시 태어난 걸까?
- 어쩌면 그런 건 없는 건지도 몰라.
- 그래.

이 말은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좋다는 말로서, 그럼에도 널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처럼 느껴진다. 아이들, 특히 미나토의 성장이 돋보이는 대사다. 숨기려고만 했던, 마음껏 타오를 수 없었던 미나토에게 용기가 생긴 듯 보였다. 그리고 둘은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행복해보이는 모습으로 뛰어논다.



Q. 혹시... 미나토와 요리가 죽은 건 아닌가요...?


A.                                     

나는 그 생각까진 못했지만, 몇몇 관객분들께서 결말이 두 아이의 죽음으로 끝난 게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다. 굉장히 환상적이고도 몽환적인 분위기, 둘의 너무나 행복해보이는 표정이 사후 세계처럼 느껴진다는 말이다.


헉...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하겠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말씀에 따르면, '해피엔딩'을 의도하셨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해피엔딩이 메시지의 일관성에 있어서도 적합할 듯 하다.


우리가 서로의 진심을 향해 달려갈 때,

비로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같은 뉘앙스의 메시지가, 죽음이라는 새드 엔딩을 입게 된다면...


우리가 서로의 진심을 더 빨리 알아챘다면, 닿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군요... 다음 세상에서라도 행복하길 바랍니다...


-가 될 것이다. 종이 배라도 건네어 끝내 연결 짓고자 했던 영화의 태도와는 상반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굳이 필요없을 충격과 비극이라 생각한다.





2. 금관악기 소리

분량이 너무 길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끝까지 읽어주시고, 공감과 댓글도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당 ㅠㅠ
구독까지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동일한 사건을 다양한 인물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구조이다 보니, 반복해서 나오는 물건, 인물, 풍경, 음악 등이 많다. 그것들이 막을 거듭할 수록 어떻게 의미가 변화하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초반의 작위적이라 생각했던 것도 후반에 마땅한 타당성을 갖추어가는 것도 흥미롭다.


예를들면 1막에서 폭풍우 치던 날, 바람에 휘날리던 소름끼치는 그림의 '괴물'카드,

그것이 단순히 요리와 하는 놀이를 위함이었던 것- 등이 있다.

"누가 괴물이게?" 맞추는 놀이

그 중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 바로 '금관악기 소리'이다.  어떻게 보면 뱃고동 소리나, 경적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소리는 총 세 번 정도 반복되는데, 금관 악기 소리는 아니라도 비슷한 소리가 한 두 번 정도 더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1막에서는 위기를 고조하는 배경음

1막, 호리 선생님이 사퇴한 후에도 다시 미나토를 찾아 학교에 왔다는 말에, 미나토의 어머니, 사오리가 다급하게 학교로 찾아오는 장면에서 이 금관 악기 소리가 나온다.


빵빵- 불협화음으로 울려대는 이 음은 약간 이질적인 느낌과 동시에 불쾌감까지 주며, 위기의 상황을 고조하는 역할을 한다.


2막에서는 호리 선생님을 살리는 소리

2막, 호리 선생님은 미나토에게 진실을 묻기 위해 학교로 다시 찾아온다.

내가 너에게 잘못한 게 있냐는 물음에, 미나토는 아니라고 말하고는 뛰쳐간다.


즉, 호리 선생님의 인생은 아이의 거짓말에 의해 허무하게 짓밟혀버린 것이다. 이에, 호리 선생님은 학교 건물 지붕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그때 내리 보이는 풍경... 강물과 마을의 건물들...

그리고 들려오는 금관악기 소리...


호리 선생님은 금관악기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자살을 관둔다. 그리고 이어서 요리의 글을 보며, 미나토와 요리 사이의 진짜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3막에서는 미나토의 말할 수 없는 진심

호리 선생님이 금관 악기 소리가 나는 쪽을 본 뒤, 자살을 관두는 것-은 지극히 의도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 금관악기 소리는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그 뜬금없는 금관 악기 소리는 바로 미나토와 교장 선생님이 분 것이었다.


"고민이 많은 얼굴이구나."
"호리 선생님은 사실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그렇구나."

...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여기다가 힘껏 불어넣는 거야."

기억나는 대로 풀어본 대사, 교장선생님과 미나토

호리 선생님을 피해 교무실로 들어가 있던 중, 교장선생님을 만난다. 그리고 자신이 호리 선생님께 누명을 씌운 것과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는 것 등을 털어 놓는다. 단지 교장 선생님은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일 뿐이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은 미나토를 음악실로 데려가,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이 금관 악기 속에다 다 털어 놓으라며 권유한다. 그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요리를 향한 사랑이었을 테다. 미나토는 어떻게든 그 마음을 모아 금관 악기를 불어낸다.


즉, 금관악기 소리는 '미나토의 말할 수 없는 진심' 그 자체였다.


즉, 금관악기 소리는
'미나토의 말할 수 없는 진심' 그 자체였다.


지붕 끝에 선 호리 선생님이 금관 악기 소리를 통해 자살을 그만둔 것처럼 표현한 것도 그 의도였을 테다. 미나토의 진심이 닿은 것-을 나타내고자 한 의도말이다.



이후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비슷한 경적 소리 같은 것이 들렸던 것 같다. 그것을 듣고 미나토가 빅크런치를 향한 '출발음'이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이것까지 합해서 '금관 악기 소리'는 아래의 의미 변화를 가지게 된다.


1막 : 혼란을 가중하는 장치
2막 :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 복선
3막 : 결국 드러난 진심
마지막 : 진심이 이뤄진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


'불'이 단순히 위험한 것에서 '타오르는 진심'으로 변모하듯, '물'이 '단절'의 의미를 강화해가듯, '금관 악기 소리' 또한 의미가 변주되며 깊이를 더해간다.




3. 교장 선생님

: 다나카 유코, 제 2의 키키 키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오랜 합을 맞췄던 키키 키린, 그녀의 별세 소식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세상 다정한 줄 알았지만, 칼날처럼 서늘한 면모도 보여주는 연기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었는데, 더는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컸던 것 같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여성에는 고정관념처럼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를 너무도 잘 이용하면서도, 비틀어내기도 일품으로 한다. 따뜻한 면모 속에 차가운 칼날 몇 자루씩을 숨겨두는 것이다. 그런 키키키린 배우님이 별세하신 후, 그녀를 대체할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던 찰나, 다나카 유코 배우님이 나타나셨다.


그녀는 처음부터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었어요.

-다나카 유코 배우님을 향한 고레에다 감독의 평




가장 입체적인 인물, 교장 선생님의 의도는 무엇인가?

사고로 손녀가 죽었다. 그 사고는 그녀의 남편이 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소문엔 그녀가 죽여놓고 남편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손녀와 찍은 사진을 일부러 잘 보이게 배치하여, 항의하러 온 학부모의 감성을 자극하고, 일부러 정신 나간 척을 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발을 일부러 걸어 넘어뜨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진지하게 미나토의 말을 들어주었고, 강력한 응원이 되어주었으며, 자신의 손녀를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사랑했단 것도 느껴진다. 그녀는 과연 어떤 인물인 것일까?


너무도 깊은 심연을 지닌 인물이라 명확한 답을 정할 수는 없다. 그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인물을 그려내는 특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가지, 주관적 해석을 내려 볼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둘 중 하나만 해당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둘이 함께 섞인 인물일 수도 있겠다.

1. 나약한 사람 (나쁜 듯 완전 나쁘기만 한 건 아닌 사람...?)
2. 모든 것을 관망하며,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사람          


솔직히... 1의 '나약한 사람', 혹은 '나쁜 듯 완전 나쁘기만 한 건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요리가 떨어뜨린

[ 라이터(불꽃을 발화할 수 있는 능력) ] 를 주워주고,


미나토에게

[ 금관악기 부는 법(진심을 표출해내는 법) ]을 일깨워주는 사람


-임을 볼 때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의 속성을 이해하고 위할 줄 아는 사람이라 느껴진다.


그런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녀가 호리 선생님에게 거짓을 강요했던 것도, 어머니 사오리에게 섣불리 어떠한 대처를 내놓지 않았던 것도 '아이를 위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감춰진 진실과 진심에 닿았을 때, 잘못된 것들이 바로잡힐 것이란 신념 또한 갖고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물론 주관적인 의견이며, 교장 선생님의 방법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만, 교장 선생님의 속뜻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의견이다.-


아마 이 극 이후엔, 호리 선생님은 다시 교직에 복귀할 것이며,

사오리는 미나토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양육해갈 것이라고 본다.

그건 아이의 의사에 상관없이 사건을 파헤치는 방식이 아니라,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그 본연의 것을 향해 달려가길 의도한 것일 수도 있겠다.


즉, 부모와 교사, 아이들의 입장을 모두 인지하고서 관망하듯 기다린 것이다.





면회장면 : 과자와 과자 도둑 이야기

2막에서 3막으로 넘어가는 사이, 교장 선생님과 남편의 면회 장면에서 나눈 대화는 무슨 의미일까?

과자 도둑이 무서워서
과자를 사지 않겠다니
너무 귀여운 생각 아닌가요?

과거, 갖고 싶은 것을 사주겠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에, 손녀는 '과자는 싫다'라고 했다. 그 이유는 바로 '과자 도둑'이 과자를 훔쳐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이 내용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냥 흘러가듯 지나가서 제대로 해석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이고 재관람하다 보니 그 의미를 조금은 닿을 수 있을 듯 했다.


과자는 손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다. 즉, 극 중에서 미나토의 진실과 진심을 은유한다.

하지만 과자 도둑은 손녀가 원하는 과자를 훔쳐 먹는 사람이다. 즉, 진실과 진심을 가로막는 것이다.


과자는 손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다.
즉, 극 중에서 미나토의 진실과 진심을 은유한다.

하지만 과자 도둑은 손녀가 원하는 과자를 훔쳐 먹는 사람이다.
즉, 진실과 진심을 가로막는 것이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속담처럼, 사소한 외부적 요소따위로 인해, 추구하는 바를 꺾어내는 아이들의 생각을 은유한다.

이미 교장 선생님의 아이들의 특성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나토를 특정해서 그의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 과자 도둑은 누구일까? 아마, 손녀의 가족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과자가 먹고 싶었든, 아니면 손녀의 건강을 생각해서 과자 수량을 조절했든 간에, 어떠한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미나토의 경우, 어머니 사오리와 호리 선생님으로 대치할 수 있다. 사오리가 달리는 차 안에서, 미나토에게 건강하게 가족을 이룰 때까지 너를 보살피겠다고 한 말처럼, 어떠한 악의도 없다. 다만, 그것은 미나토로 하여금 '과자'를 '부정'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요리를 향한 동성애를 부정하며 괴로워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즉, 극 전체를 [ 과자와 과자 도둑의 이야기 ]로 함축해낼 수 있을만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인 것이다.

극 전체를 [ 과자와 과자 도둑의 이야기 ]로 함축해낼 수 있을만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인 것이다.


그러면서 건네는 종이배-

손녀와 과자 도둑 사이, 깊고 넓은 단절의 강을 가로지르는 이야기의 신호탄을 상징한다.


CH4. 무엇이 아쉬웠나?


물론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그 아쉬움 대부분은 '작위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1막의 후반이 그랬다. 작위적인 서스펜스는 불쾌감을 일으켰으며, 이것이 후반부에 해결이 된다고 해도, 완전히 수긍할 정도는 아니긴 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편안하게 흘러가다가 돌부리에 찍히는 듯, 그 자연스러움이 굉장히 매력적인 감독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그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사람이 극본을 써서 그런지 인위적이었다. 의도적이고 인공적인 유리 조각을 심어 놓은 듯한 불쾌감이었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인물들을 억지로 단절시킨 느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드문드문 비현실적일 정도로 과장, 과잉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호리 선생님이 미나토의 어머니, 사오리에게 사과하는 자리에서 사탕을 먹는 장면'은 특히 그랬다.

이후, 2막에서 긴장될 때 사탕을 먹으면 좋다던가 그런 말로 당위성을 넣으려 했다 해도, 그 진지한 상황에서 사탕을 입에 넣는 것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요소 때문일까, '안도 사쿠라' 배우의 연기가 조금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부 그런 건 아니고, 교무실을 찾아간 장면에서 말이다. 뭔가 거짓같고, 섞이지 못하며, 조금 오글거린달까... 물론, <어느 가족>을 통해 칸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정말 훌륭한 배우임을 안다. 그것과 별개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다. <백엔의 사랑>에서 보여줬던 그 연기는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 영화의 그 장면만큼은 뭔가 섞이지 못하는,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 외에도 아쉬운 점은 꽤 있다. 2막까지는 1막의 상황을 역으로 뒤집어 버리는 것이므로, 굉장히 신선하다 생각했지만, 3막으로 시점 전환이 한 번 더 반복되자 신선함은 조금 떨어졌다. 더구나 다른 시점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보니 반복되는 장면들도 있어서 조금 루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짜맞춰야만 하는 퍼즐조각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았다.

메타포가 과잉되었다는 생각도 조금은 든다. 물론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단절'과 '진심'을 상징하는 메타포들이 질릴 정도로 곳곳에서 출현한다. 아, 이건 내가 여러번 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과 남편의 면회장면에서 '과자 도둑'의 이야기는 사족이란 생각이든다. 물론, 극 전체를 아우르는 은유를 포함한 대사인 건 맞지만... 그 대사가 굳이 없어도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대신, 교장 선생님의 캐릭터를 조금 더 직접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더 좋았을 텐데...싶긴 하다. 누가 괴물이게- 묻는 노래도 너무 노골적이게 반복되어 살짝 유치한 느낌이 든다.


아무튼 간에 좋은 영화다.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는 데는 손색없다. 영화관에서 보길 참 잘했다고 느낄 정도다. 사카모토 유지의 우수한 각본이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을 만나 더 깊은 풍미가 생겼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기대했던 그만의 자연스러움이 옅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내야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균열이 생긴듯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영화를 완성해냈음, 아쉬운 것 이상으로 시너지가 극강으로 발휘되었음은 확실하다.


하지만 다음 번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전 작들처럼, 그의 생각이 오롯이 담긴, 그만의 작품을 만나보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사카모토 유지 감독의 이전 작들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활동 들


또한 올해 3월 작고하신,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 감독님의 음악도 인상깊었다. 과하지 않은, 그렇다고 심심하지도 않은 딱 적절한 담백함, 그 중용에선 참 좋은 향이 난다.

끝으로, 그의 마지막 온기가 담긴 <괴물>의 OST를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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