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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한나 Apr 06. 2022

비전공자의 책 표지 디자인 수난기

아 디자인,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그렇게... 완성된 결과물. 부족할 수 있지만 내 눈엔 완벽한 최선의 결과물이다.
오만이 부른 엄청난 고난의 시작

독립출판을 준비하다가 오기가 생겼다. 편집, 디자인, 마켓팅, 펀딩, 출판... 그 모든 과정을 내가 직접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 그렇게 험난한 고난 길이 시작되었다.


453쪽 분량의 그 수많은 원고를 혼자 직접 다 쓰고, 사진 편집하고, 삽입하고... 그러다 저장 안 돼서 렉 걸려서 와장창 멘탈 붕괴가 오고...

하지만 그건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었다. 더 큰 난관은 바로, 책 표지 디자인이었다.


포토샵을 1도 다룰 줄 몰랐던 나이지만, 책에 삽입할 사진을 약 50장 가까이 편집하다 보니 자연스레 기술이 익혀지게 되었다. 사실 이정도면 왠만한 전문가 못지 않게 센스가 충분하고, 꽤 잘하는 편-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섣불리 책 표지 디자인-이라는 영역에 발을 들인 걸 테다.


그랬다. 그건 정말 오만한 생각이었다.


초기 표지 컨셉

내가 준비하는 책은 에세이다. 정확히 말하면 '청춘'에 대한 '에세이'다. 수능을 끝내고, 대학에 들어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방학과 새학기를 반복하면서, 결국 군대에 가고, 제대를 한 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아주 작고 평범한, 그렇지만 나의 이야기라는 점만으로도 이미 찬란한 이야기다.


그래서, 표지는 '청춘'에 대한 것이어야만 했다.

젊음, 도전, 패기, 반항, 외로움, 야망... 등등을 꼭 표현하고 싶었다.

좌측부터 (1), (2), (3)번이라고 부르겠음.
(4)번 시안

초기 컨셉은 위들과 같다. (1)번 사진의 내 모습을 활용해서 다음 시안을 만들었다.

(2)와 같이 온 우주를 향해 Fuck you를 날리고 있는 모습! 그걸 표현하고 싶었다.

근데 색감이 너무 안 맞아서 (3)번으로 수정했다.

근데 (3)번도 너무 난잡한 느낌이라 절레절레 저으며... 다른 걸 생각해보았다. 아무래도 우주 컨셉은 맞지 않는 듯 하다...


그래서 다른 컨셉으로 깔끔하게 가기로 했다. (4)번은 너무 깔끔해서 텅 비어보이는 느낌이 들긴 한데, 이후에는 저 벽면들에 욕들을 채워넣었다. (근데 그 파일은 어찌된 일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욕들을 향해 당당한 Fuck you-를 날리는 모습!


근데, 그것도ㅋㅋㅋ 그거 나름대로 난잡해지는 느낌이 들어, 젠장-이러면서 포기해야만 했다.



왜 하늘을 넣었는가?

왜 하늘을 넣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하다.

하늘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늘색이 주는 그 느낌이 너무도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푸르른 하늘... 그 역시 '청춘'에 매우 걸맞는 색이 아닌가. 하루에 3번 하늘을 올려다 보면 행복한 거라는 말도 있다. 하늘 빛의 하늘은 내게 마치 행운과 청춘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좌측에서, (5)번, (6)번 표지

그렇게 (5)번 표지가 완성되었다. 처음에는 우주를 향해 당돌하게 욕을 하는 그 반항적인 이미지가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완성하고 나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막 이 친구 저친구들에게 어떠냐고 계속해서 물어봤다.


처음엔 오- 좋다, 색감이 예쁘고, 청춘의 이미지에 잘 어울린다며- 다들 괜찮다고 그러더니,  그래도 좀 고칠게 없을까, 따져 물으니 색이 좀 밝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들어왔다. 음... 확실히 어둡긴 했다!

그래서 다시 전면적인 수정에 들어갔다. 그게 (6)번이다.


바꾸고 나니... 와우... 너무 맘에 드는 것이다!

괜찮다 싶어서 다시 쪼르르 친구들에게 가서 물었다. 확실히 훨씬 낫다고 한다! 대.성.공.

그래서 이번에는 아는 디자이너님들께 무작정 가서 물었다. 어떻냐고.

음... 전공자가 아닌 입장에선 충분히 잘했어요.
근데, 아쉬운 점이 꽤 많네요.

그렇게 시작된 '사람' 수난 시대

글자 크기 및 가독성, 건물의 디테일 부족, 난간의 디테일 부족... 등 수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 쯤이야 뭐, 쉽게 바꿀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심각한 건... 바로 사람이었다.


굳이 거부감을 택한 이유?

'반항을 표현한 건 좋은데, 굳이 그렇게 사람들에게 '욕'을 써서 불쾌감을 줄 필요가 있을까요?'

디자이너분께서 하신 말씀이다. 처음엔 아차- 싶었다. 컨셉이 Fuck you를 날리는 것이다 보니,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선뜻 바꾸기엔 떠오르는 아이디어도 없었고, 크게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Fuck you-라고 당돌하게 책 표지에 담아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Sensational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게 나와 내 책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했다. 이거야말로 강렬하고 확실한 정체성이었다.

또한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에게 물어봤을 때는 다들, 너무 좋다고, 신박하다는 반응이 절대적이었다.

'이거 새롭다', '이거 못 보던 건데?' '오?' 이런 반응들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디테일을 살리자!

'그럼 사람의 디테일을 좀 살려봐요. 지금은 너무 그림자 덩어리 같잖아요. 아무리 뒷모습이라도 저렇게 표현되진 않아요.'

일리 있는 말이고, 매우 합리적인 솔루션이었다. 벽에 막혔을 때 확실히, 다른 누군가의 조언은새로운 경로를 보게 해준다.

그 말에 나는 바로 아이패드를 켜서 사람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에 자신이 없는 편은 아니라, 곧잘 디테일을 살릴 수 있었다. 또, 기존 그림에 색만 살짝 입히는 것이기에 그렇게 어려운 작업도 아니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바로 아래 (7)번 표지이다.

(7)번 표지 세부 수정 사항들을 반영하고 뒷면, 책등까지 모두 구현하였다.

'사람 디테일을 더 살려주세요. 피부색도 그렇고... 옷 색도 더 넣어주세요. 레퍼런스를 많이 참고하시구요.'

수정본을 보여드리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또다른 과제가 주어졌다. 오히려 좋았다. 뭘 더 어떻게 해야할 지 벽에 막힌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완성한 (9)번 표지

그렇게 완성한 최종, (9)번 표지. 확실히 이전 작업물들 보다 더욱 좋아진 것이 보인다.

이제 끝내요.
원래 디자인이란 게 끝도 없어요. 끝낼 줄도 알아야 하죠.
최선으로 잘했어요.

휴... 그 말씀을 듣고 안도를 느꼈다.

이 표지를 들고 이전 작업물들을 보여줬던 친구들에게 찾아가니, 다들 한결 같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정말 뿌듯한 순간이었다.


책 표지 디자인 후기

아, 진짜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여기 매달려야 하는가, 너무 비효율적이진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할 때는 너무 재밌었다. 막혀서 답답할 때도 있었는데,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과정 역시 즐거웠다.

디자이너들 공감짤 ㅋㅋㅋ (퍼옴)

위 짤처럼... 내 파일도 지금 엄청 많은 완성되지 않은 완성본들이 위치해있다. 지워버리기 아까운 흔적들이라 이렇게 글로 끄적여 본다. 


최선을 다한 뒤 남은 여백만이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다.
그렇기에 이후에 남은 나의 여백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다.

추가 디자인 수정?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책 표지 디자인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말씀해주시고 싶으신 분들은 언제든지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수정 후, 다시 업로드하겠습니다! ㅎㅎ



그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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