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나에게도 아기가 생길까?

스페인,산티아고순례길6일차.

by 순례여행자

숙소를 나오자마자 울려 퍼지는 새소리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새삼 황홀함 까지 느껴지는 오늘의 시작.




1300미터 고지의 오세브레이로까지, 29km를 가야하는 부담감에 준비하는 내내 근심걱정이 가득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그냥 지금 이 순간이 좋다.


1시간쯤 걸었을 무렵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는 생각에 작은 마을에서 잠시 커피수혈과 아침식사를 한다. 사장님께서 어찌나 친절하신지. 오늘 길은 험난하다면서 오렌지주스를 서비스로 건네주신다.


스페인 시골마을에서 자주 만나는 훈훈한 인심 덕분에 걷는 내내 편안함을 느낀다. 며칠 전부터 이탈리아 여자를 포함하여 지속적으로 만났던 사람들은 삼삼오오 친구가 되어서 함께 걷기도 하고. 코로나로 인해 동양인이 거의 없는지라 내가 반가운건지, 늘 힘들어 보여서인지?

다들 나를 챙겨주는 분위기이다.



삼삼오오 모이게 된 사람들, 연령대가 다양하다.

나의 걸음이 느려서 그들은 어느 순간 내 시야에서 보이지 않다가도 어디선가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탈리아 여자만 영어를 할 줄 알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거의 못한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 정신까지 멍해졌다.

어느순간 자연스레 소극적으로 대하고 거리를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나를 챙겨줬던 사람들.

그들의 호의 덕분에 내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을 수 있지 않았을까.


솔직히 중간에 bar가 나오면 수없이 고민했다. 택시를 부를까. 오늘은 여기까지 걸었으니 좀 쉬어 갈까. 끊임없는 유혹을 뿌리치고 끝까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었던 건 스페인 친구들 덕분이었다.

곳곳에서 유유자적 하게 풀을 뜯고 있는 소, 양들도 자주 만나고. 어제와는 또 다른 순레길의 모습.

눈이 호강하고 즐겁지만 점점 땡볕에 오르는 길이 쉽지만은 않다.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왜 길은 한참을 굽이굽이 돌아가는가?



능선을 따라 저 멀리 가야할 길이 눈으로 보여서 더 까마득하다. 때로는 그냥 모르고 가는게 상책이다.


알고 가면 더 쉬울 것 같지만 힘든 길을 갈 때는 아는 만큼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극한의 상황에서는


“이제 또 힘든 구간이야. 힘을 내야해.”


긍정적인 생각이 들기보다는


“또 힘들어지네? 어떡하지?”


부정적인 생각들이 내 머릿 속을 지배한다.

모르고 간다는 막막한 두려움도 따르지만 그냥 묵묵히 가다 보면 내가 다왔는지도 모른 채 도착한다.


나의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걱정과 불안함이 늘 앞서지만 그냥 미리 생각하고 걱정할 필요없이 그 순간만, 묵묵하게 지내다보면 나도 도착해 있겠지.


지난 2년 동안 원인불명의 난임으로 인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1년 동안 쉬지 않고 매달 주사를 맞아가며 난자채취를 하고 호르몬제 부작용으로 10kg 넘게 살이 쪘다. 살이 잘 찌지도, 빠지지도 않는 체질인데 급격하게 변한 내 모습과 마주하기 싫었고 언제부터인지 사진도 찍기 조차 싫었다.


처음에는 임신이라는 목표를 마치 시험처럼 생각하고 오롯이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부었다.

난자를 열심히 키우려고 운동하고, 난자질을 더 좋게하려고 음식을 먹고, 시간날때마다 난임까페에서 살다시피하고. 분명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데 나의 삶이 점점 피폐해짐을 느꼈다.

단순히 임신이 하고 싶은건지, 아기가 갖고 싶은건지.

뭐가 중요한지도 잊어버린 채. 내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렇게 나는 2년간 노력해서 목표했던 임신을 했고, 심장소리만 들은 채 유산을 했다. 잠시나마 아기 심장소리를 듣고 경이로움을 느껴서 일까.

극도의 상실감까지 찾아와서 한동안 더 폐인이 되었다.

반복되는 실패에 지쳐버렸다. 더 이상 병원도 다니기 싫었고 의욕없이 일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뭐를 하면 내가 힘이 날 수 있을까?

어디선가 주워들은건 있어서, 사람들이 이 길을 걸으면서 많이들 행복해졌다던데. 나도 가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기대를 한껏 하고 왔는데..


여기서도 아직 나는 방황 중 이다. 생각할 시간이 많다.임신이 왜 안될까? 왜 나는 힘들까? 언제쯤 될까?

아기가 생기기는 할까?

수없는 질문의 꼬리를 물다가 화가 났다가 눈물이 났다가…사람들은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 하는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걸까?

험난한 오르막길을 바라보며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냥 가다 보면 되겠지.

머리로는 알겠는데 나에게도 진정한 마음의 여유가 찾아오기를.


경사가 이렇게 가파른데 저 멀리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빠가 아기를 업고 엄마와 함께 순례길을 온 것이다. 내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은 저런건데.


새삼 부럽기도 하면서 존경스럽기도 한 부부와 아이.

언젠간 저런 날이 오겠지. 산꼭대기의 작은 마을, 오세브레이로에서 하루 묵어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석양 그리고 일출을 바라보며 쉬는 내내 황홀하다. 유독 몸도 힘들었는데 마음까지 힘들었던 하루.

이제는 나에게도 쉼을 줘야지.

<6일차.비야프랑카~오세브레이로.2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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