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산티아고순례길5일차.
오늘도 어김없이 7시30분 출발.
어제의 험난했던 코스와는 달리 약간의 오르막길을 빼고는 쉬운 코스이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지만 아침공기도 좋고 어제의 힘듦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분이 좋다.
늘 아침에 마주하는 마을의 모습은 한적하고 오롯이 홀로 집중해서 마을 곳곳을 감상하게 한다. 스페인의 아침풍경이 이토록 따뜻하고 정겹다니.
떠나기 싫을 정도로 아침에 느끼는 이 정취를 더 만끽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한 채 폰페라다 안녕.
끝없는 포도밭과 중간중간 만나는 아기자기한 시골마을들을 구경하느라 눈이 즐겁다.
1시간 째 걸었을까?
다리에 쥐가 나고 통증이 다시 몰려온다.
이제는 힘든 것도 괜찮고, 아픈 것도 참을 만 한데 컨디션이 온전치 못하니 이 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해 이따금씩 속상하다.
매일 일정이 끝나면 제일 먼저 발을 본다. 물집이 얼마나잡혔는지, 첫 날부터 매일 2~3개의 물집을 터뜨렸다.
오롯이 몸과 마음을 다해 느끼면서 더 잘 걷고 싶은데 이것도 욕심일까.
좀 지루해질 무렵 이탈리아에서 온 순례자를 만났다.
출발하는 시간, 장소가 대부분 비슷해서 대부분 낯익은 순례자들이고, 다시 만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안부를 나누는 사이가 되어버린다. 오늘 나의 말동무, 그녀는 몸집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나무 지팡이에 무게를 분산시키며 굉장히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밝고 씩씩한 그녀는 나에게 보폭을 맞춰준다.
“Are you ok? Slow slow.”
나에게 연신 이 말을 건네는 그녀의 안부가 어찌나 힘이 되던지.
별거 아닌 듯 하지만 사소한 말 한마디에 힘이 되고 위로를 받는구나. 나는 소위 말하는 K장녀이다. 어릴 때부터 독립심이 강했고 주어진 일에 혼자서도 꿋꿋이 곧잘 하지만 때로는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내가 스스로 다 해내야 할 것 만 같은,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더 챙겨줘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오래전부터 습관처럼 고착화되어 있는 듯 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욕망은 크지만 정작 의지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듯 하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고 모든 게 괜찮아 보이지만 나도 괜찮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을.
"괜찮아?”
짧은 이 한마디,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위로.
아직 서툴고 소극적인 나를 리드해주는 그녀 덕분에 힘을 얻어간다.
산에 둘러싸여 쉽사리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비야프랑카에 도착. 손빨래를 하고, 샤워를 한 후 늦은 점심식사를 하러 나간다. 건물들은 스페인스럽지만 산세에 둘러싸여 공기와 분위기가 스위스를 연상시킨다. 골목사이를 거닐어 보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서 멍을 때리며.
온전한 휴식시간을 만끽 해야지.
순례자의 하루는 참 길다.
<5일차. 폰페라다~비야프랑카.24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