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산티아고순례길1일차.
첫 날부터 34km를 계획한 나는 아침 일찍 서둘러서 길을 떠난다. 역시나 감도 없고, 구글맵을 보면서 걸어야하는지, 까미노앱을 보면서 걸어야하는지.
고요한 아침의 적막을 뚫고 나의 분주함에 정신이 산만하다. 그 전날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레온 대성당의 모습과는 달리 차분함과 경건함이 느껴진다.
이런 분위기를 좀 더 오랫동안 느끼고 싶었지만, 오늘은 모든게 처음이라서 그냥 마음이 바쁘다. 더구나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와서 초반에는 긴장감이 들었다.
도심을 조금 벗어날 무렵쯤 이런 긴장감이 무색해질만큼곳곳에 보이는 노란 화살표들.
핸드폰이 필요없을 정도로 화살표에 의지해서 이 길을 가도 충분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본격적인 순례길의 여정.
혼자 가는 길이 외롭기도 하고, 혼자라서 더 힘든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묵묵하게 걷는게 이렇게 힘들줄이야.
왜 걸으려고 했던거지? 이게 뭐가 좋다는거지?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한참을 지배하다가 어느순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리고 굉장히 단순한 사고의 흐름을 겪는다.
몸이 너무 힘드니 심적으로 나를 괴롭히고 싶지 않다.
첫 날부터 너무 욕심을 부렸구나… 가도가도 끝이없네.
보통 가이드라인으로 24km 지점의 마을에서 끝내는데 책을 보다가 10km 더 가서 오르비도라는 마을에서 꼭 머물고 싶었다.
내가 욕심부린만큼 마지막 10km는 괴로움만 함께 했다.다리는 점점 감각이 없어지는듯 하고, 레온에서 한참 벗어나 작은 마을을 향하는 길은 대부분 그늘이 없는 찻길.태양은 점점 뜨거워진다.
첫 날부터 신고식을 제대로 치르는 중이다. 사실 어제 나는 하루동안 들어본 나의 배낭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결론을 내고, 작은 배낭을 사서 들고 가는 타협을 했다. 배낭의 무게도 나의 욕심을 여실히 보여주는듯 하다.
보통 자기 몸무게의 10프로정도의 무게가 적당하다는데, 나는 11kg로 들고 오다니..
한국에서 레온까지 오는 동안 배낭무게가 감당이 안되서레온 도착하자마자 작은 배낭을 구입했다. 최소한의 무게로 줄이고 나머지 짐은 배낭운송서비스를 이용하기로.4~5유로를 내면 다음 목적지까지 배낭을 옮겨준다.
첫 순례길을 요행을 부리지않고 모든 힘듦을 감내하며 고행하듯 걸어보고 싶었는데, 첫 날부터 현실과의 타협.간혹 보이는 순례자들과 인사할 때 마다 확연히 비교되는 나의 배낭. 외국인들은 배낭이 훨씬 크다. 무게를 신경쓰지않고 짐을 꾸린 느낌.
그들에 비하면 어려보이는 나는 깃털처럼 가벼운 배낭을매고 폴짝폴짝 걸어가도 모자랄 판에, 세상 지쳐보이는 발걸음. 다들 나에게 혼자왔냐고 대단하단다.
“You are brave”
나를 칭찬해주기 바쁜데 정작 아무도 신경안쓰는 나의 배낭이 괜히 부끄럽다. 때로는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다가, 힘들어서 괜히 화도 났다가.
결국 무념무상으로 도착한 오르비고.
오래된 역사를 가진 다리를 마주하는 순간 욕심을 부리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욕심들로 인해서 내 자신을 괴롭히기도 하고, 때로는 버겁기도 하다. 가끔은 욕심낼만한 가치가 있는 일도 있다는 것이 이런 때인가.
가슴이 한없이 벅차오른다.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박하면서도 예쁜 시골마을을 마주하는 순간 걷는 내내 힘들었던 기억들이 사라지고. 부끄러운 점들이 많았던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첫 날이지만 희노애락을 모두 겪었던 34km.
<1일차.레온~오르비고.34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