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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루 Nov 26. 2021

우울감을 느끼지 못하는 우울증입니다.

발성장애를 동반한 우울증.

하나, 둘, 셋…넷……다섯, 그리고 취침 약 한 알

저녁에 내가 먹는 약의 개수다.


나는 하루 네 번 약을 먹고 있다.

3개월 전,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우울하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들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우울증이 아니다.

우울감을 느끼지 못하는 우울증. 내가 앓고 있는 질환이다.

생소하겠지만 나와 같은 우울증이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처음에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화가 났다.

목소리가 안 나와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정도일 거라고 방문했던 정신과였기 때문이다.

몇 가지 질문과 테스트가 이어졌고, 그걸로 멀쩡한(?) 나를 우울증 환자로 만들다니!!

방문한 병원이 돌팔이 같았고, 의사가 하는 말은 그냥 때려 맞춘 말 같았다.

진료실에서 씩씩대며 나와 남편에게 “여기 돌팔이 같아!!”라며 엉엉 울었다.

내가 울었던 것은, 어이없게도 진료실에서 정신과 원장님이 내 증상을 쪽집게 점쟁이가 맞추듯 모조리 맞춰버렸기 때문이었다.


‘난 우울하지 않은데, 우울증이라니…. 그럴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우울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니... 둘째 낳고 아주 힘들 때 잠깐 정도? 우울함을 느낄 새도 없이 살아가던 나날들이었다.

우울증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우울감을 느끼지 못하고 내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불안장애는 물론이고, 공황장애를 앓았던 경험을 지닌 채 강박증이 있고, 번아웃 상태라고 했다.

이건 뭐, TV에서 들어본 정신과 질환을 다 모아놓은 것 아닌가?

내가 정신과에 상담을 받으러 가기까지는 3개월이 걸렸고, 정신과 치료를 시작한 지는 3개월이 지났다.

나의 글은 나처럼 워킹맘으로, K-장녀로 살아가며 본인이 우울증 인지도 모른 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우고 더 망가지기 전에 병원으로 달려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한가득 담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기로 했다. 내가 나를 돌보는 과정, 정신과 상담 등을 통해 진짜 내 모습을 찾는 과정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나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한다.


시작은 목소리 떨림이었다.

그 당시에 다니던 직장에서 심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했고, 갑자기 잠들어버리는 기면증으로 가정의학과를 찾았다.

가정의학과 검사 중에 심전도에 이상이 발견되었고, 심장 전문병원에서 심장 자체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며 정신과에 리퍼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었다.

그때 당시는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치과를 그만두면 더 이상 증상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정신과 치료는 안 받겠다고 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몰랐다. 그때 바로 정신건강의학과로 가야 했다.

그때만 해도 목소리 떨림은 없었으니까.


초반에는 내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목소리가 그런가 라고 생각하며  많이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점차 시간이 지나 사람들 앞에서 책을 읽거나 큰소리로 말을 하려고 하면 목소리가 탁탁 막혀서 안 나오거나 염소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그런 일이 없어서 일할 때나 식당에서 점원분을 부를 때 외에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가끔 내가 목 상태가 왜 이러나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 자체로 크게 스트레스는 아니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를 쉬는 동안 아주 가끔 목이 불편하긴 했지만 일상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서 재취업을 했다.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직장이었는데, 그 직장에서 첫날부터 목소리가 안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치과에서 일을 하는데, 환자를 진료실로 들어오도록 호명할 때 목소리가 막히거나 떨렸다.

괴롭힘 당하던 치과에서 그만둘 때까지도 없던 증상이었다.

입사 첫날 목소리가 안 나오다니 당황스러웠고, 이번에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처음부터 망했구나라는 생각에 멘탈이 나갔다.

하지만 이 직장의 동료들은 오히려 웃으며 목소리가 왜 그러냐고 놀리고는 아무렇게 않게 대했다.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그냥 내 목소리가 그러려니 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내가 진료실에서 부를 수 없으니 다른 분들이 환자들을 진료실로 부르고 큰소리 내는 일은 안 해도 되게끔 배려해 주셨다.

그런 날이 늘어가고 2년 정도가 되어가니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각자 적응을 하고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올 4월, 상황이 심각해지더니 전화조차 받을 수가 없었다.

“여.. 여…. 보세요..”

( 3, 4월 두 달간 큰아이와의 문제로 괴롭힘을 당하던 치과에서의 퇴사 이후 가장 큰 스트레스를 경험했다.)

막히는 목소리가 내 마음대로 조절되지조차 않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직장에서 일할 때의 불편함은 물론이고, 이제 친한 지인들, 가족 앞에서까지 목소리가 막혀왔다.

말을 꺼내려고 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긴장할수록 목소리는 더더욱 막혀 들어갔다.

내 몸안에서 목소리가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무리 말을 이어가려고 해도 내 뜻과 별개로 목소리는 밖으로 유연하게 나오지 못했다.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병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은 가정의학과로 향했다.

늘 가던 집 근처의 가정의학과 선생님은 피곤해서일 거라며 신경 쓰지 말라는 식으로 얘기했다.

나는 하루에 한 번은 목소리 때문에 위축되는 순간들이 오는데 신경 쓰지 말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목소리 때문에 가는 병원은 마땅히 생각이 안 났다. ( 그 당시 왜 이비인후과를 생각 못했는지 모르겠다.)


그즈음 환절기면 찾아오는 축농증이 왔고 7년째 다니고 있는 이비인후과에 갔다.

그날따라 말하는 중 막힘 증상이 심했고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진지하게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는지 물었다.

2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한 달 정도 전부터 목소리 막힘이 심해서 조금 불편하다고 했다.

우선은 역류성 후두염이 있으니 후두염 치료부터 시작해보자고 했다.

후두염 치료로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규모가 큰 병원에서 성대에 보톡스를 맞아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무서워서 턱에도 안 맞아본 보톡스를 성대에 맞는다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참는 건 잘하지만 겁이 많은 나는 후두염 약을 부지런히 도 챙겨 먹었다.

한 달 정도 후두염 치료를 마친후에 동네 이비인후과 원장님은 조심스럽게 큰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직 후두염이 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후두염 치료만으로 좋아지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큰 병원에 가서 보톡스를 맞아보라는 권유를 했다.

목소리 막힘 증상에 호전이 전혀 없었고, 사람들하고 대화할 때는 물론이고 전화받는 게 두려울 정도로 목소리가 막혀가고 있었다.


목소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할 때라 당일 오후에 지역에 가장 큰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입원실도 많고 음성질환 전문 원장님이 있는 곳이었다.

첫 방문 때 이런저런 검사 후에 애매하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보톡스를 맞을 정도로 심한 상태는 아닌데 문제가 없는 것 또한 아니라고 했다.

게다가 성대가 역류성 후두염으로 인해 너덜너덜 해져있고 많이 부어있어서 일단 후두염 약도 계속 먹어야 했다.

거기에 “리보트릴”이라는 향 정신성 약물을 함께 복용해 보기로 했다.

하루 한번 자기 전에만 먹으면 되는데, 졸릴 수도 있다고 했다.

향 정신성 약물이지만 성대의 긴장을 풀어주어 목소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루 한번 복용할 때는 목소리가 조금은 좋아졌지만 많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약간 호전이 되었기 때문에 리보트릴 복용을 아침저녁 두 번으로 늘렸다.

목소리는 조금 더 호전되었지만, 오전에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몸이 축 처졌다.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너무 졸려서 일상이 불편할 정도라고 했더니 보톡스를 한번 맞아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보톡스 상담을 받았는데 입원을 해야 했고, 한번 입원하면 비용이 90만 원에 가깝게 들었다.

게다가 보톡스를 맞고 회복기간 동안 목소리가 더 안 나올 수도 있고 보톡스 효과가 짧게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여러 부작용과 단점을 듣고 생각해보니 보톡스를 맞고 싶지가 않았다.

큰 비용도 문제지만, 여전히 성대에 보톡스를 맞는 건 무섭고 한번 맞으면 계속 맞아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맞고 나서 한 달 동안 적응하고 두 달 정도 효과가 지속되다가 다시 맞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내가 맞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더니, 원장님도 보톡스를 꼭 맞으라고 하기에는 약간 애매하다고 했다.

보톡스는 연축성 발성장애에 효과가 있는데 리보트릴이 효과가 있고 상황에 따라 목소리 막힘의 증상이 다르다고 하니 긴장성 발성장애일 수도 있어서 나는 확실한 진단이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나는 음성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음성치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했는데, 제대로 발성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음성치료 선생님은 처음부터 나에게 왜 음성치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리보트릴을 먹으면서 목소리가 조금은 호전된 상태라 일대일로 얘기하는 데는 크게 불편함이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때 당시는 큰 목소리를 낼 때만 목이 막혔었다.

그러다가 여러 테스트를 하고는 음성 자체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목소리가 막히며 발성습관이 나빠져서 음성치료는 받는 게 좋다고 했다.

제대로 된 발성을 배우고 연습을 하고 호흡법을 바꾸니 목소리가 조금씩 호전됐다.

게다가 음성치료 횟수가 많아지고 선생님이 편해질수록 검사 시 목소리를 잘 나왔다.

하지만 일상에서 목소리는 좋아지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목소리가 막히는 증상은 시댁과 통화할 때, 직장에 출근해서 일할 때, 식당에서 점원을 부를 때처럼 큰 소리를 낼 때 여전히 심했다.

음성검사 시에는 이상이 없는데 불편함을 계속 호소하자 음성치료 선생님은 진지하게 심리상담을 권했다.

음성치료상으로는 더 할 게 없다고 했다.

음성치료 선생님과 별개로 이비인후과 원장님은 음성치료를 몇 회 더 해보자 했지만, 나는 심리상담을 받기로 마음을 굳혔다.


3개월 정도 이비인후과 진료를 보고 나는 정신건강의학과로 병원을 옮겼다.

주변에 병원을 추천받기도 어려워서 내 출퇴근 시간과 잘 맞고 인터넷에 평이 괜찮은 곳을 찾았다.

처음 방문하자마자 검사도 여러 가지 하고 상담도 하고 진단명이 나왔다.

이 목소리가 우울증 때문이 라니…. 우울함이라고는 느껴본 적이 없는듯한데 내가 우울증이라니..

우울증으로 인해서 나는 신체적 장애가 나타나고, 불안장애, 번아웃이 모두 와있는 상태였다.

리보트릴을 먹고 목 상태가 약간 호전되었는데 너무 졸렸었다고 하니, 정신과에 오면 부작용이 훨씬 적고 효과가 좋은 약이 많은데, 리보트릴을 먹었냐고 했다.

내가 알았나…. 내가 정신적인 문제로 목소리가 안 나오는지…

하루 세 번 먹는 약을 처방받았고, 약을 먹고는 목소리는 조금 좋아졌지만 처짐 증상과 무기력증이 이어졌다.

초반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상담을 하고 약조절이 이어졌다.

나의 우울증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고 했다.

감정적으로 우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누르기만 한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그랬다. 나는 언제나 우울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어느 부분에서 건 완벽하려고 애썼으며 그렇지 못하게 되면 불안하고 지쳐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우울증 환자가 맞았다.

그렇게…. 나는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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