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완벽주의자라고?
“소하루씨는 완벽주의자입니다.”
‘완벽주의자’라는 단어는 내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말이었다. 무언가 강박적이고 까칠한 느낌이랄까.
어디서든 완벽주의자라는 단어를 접하면 나와는 먼 단어라고 생각했었다. 단 한 번도 내가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가 생각한 완벽주의는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이었다. 나처럼 소홀한 부분도 많고 내 생각에 엉망진창인 부분이 많은 사람이 완벽주의자 일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원장님은 내가 완벽주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고 했다. 완벽주의는 한 부분에 완벽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다른 부분들은 미루는 일이 많아진다고 했다.
한 가지 일에 꽂히면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그것만 신경 쓰는 나를 콕 집어 말하는 것만 같았다.
병원에서 완벽주의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주변에 내가 완벽주의자 같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
내 주변 지인 중 10명이면 10명 모두 “너, 완벽주의자인 거 몰랐어?” “너 완벽주의자 맞아.”라는 답변들이 돌아왔다.
내가…. 완벽주의자라니…
하루하루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으면서 느끼는 건 나는 완벽주의자가 맞는구나 라는 점이다.
(여전히 나는 나를 잘 모른다.)
완벽주의는 나를 지치게 만드는 원인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또한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으며 알게 되었다.)
무엇을 시작하려 할 때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으면 미루고 또 미뤘다. 대충은 하고 싶지 않았고, 제대로 마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작게 시작하면 청소부터 가장 크게 보이는 부분은 일할 때 모든 면에서 실수하고 싶지 않아 긴장하게 되는 것.
가족 안에서의 역할에서도 완벽하고 싶어 한다.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착한 딸, 야무진 며느리….
내가 맡은 바에는 완벽하려고 했고, 그것은 내 모든 에너지를 한 곳으로 쏟아 다른 일들에 있어서 소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되면 소홀해지는 다른 부분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았다. (가장 종종 소홀해지는 부분은 아무래도 집안일이다.)
육아를 시작할 때는 책으로 배웠다.
책에 있는 대로 재우고 먹이고 훈육하고 …
당연히 뜻대로 되지 않았다. 책은 책이고 내 아이는 책에 있는 아이와 같은 아이가 아니었으니…
그래도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이유식은 삼시 세 끼를 다르게 해서 먹이고, 시중 파는 간식은 별미로 주고 모든 간식을 만들어 먹였다.
첫아이의 육아를 하는 동안 남편과의 사이는 어땠는지 기억조차 안 날정도로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했다.
둘째를 낳고서는 더더욱 마음대로 안됐다.
큰아이와 둘째는 또 달랐고, 책은 모든 일에 있어서 길잡이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내가 되고 싶은 완벽한 엄마의 모습이 되지 않자 점점 스트레스는 늘었고, 주변에서는 이런 말들이 들려왔다.
“ 소하루야, 너 너무 애쓰는 거 같다…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런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아이들을 닦달하는 내 모습을 느끼는 순간이 왔다.
그 최고조에 달했던 때가 올 3월이었다.
약 12년간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던 나는, 더 이상 아이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이를 볶아대며 한 달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즈음부터 목소리는 더 이상 정상적인 발성이 어려웠다.
3개월째 약을 먹으며 치료를 받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어떠냐고?
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내 마음대로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배웠다.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없고, 아이들은 완벽하게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괜히 힘 뺄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이 마음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변치 않길 바란다.
또 다른 완벽하고 싶은 역할이 있었다.
좋은 딸, 좋은 며느리….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는데, 영상통화를 거의 매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부모님께 아이를 영상통화로나마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효도였고, 내가 배운 효도였다.
퇴근 후 아이들 숙제를 봐줘야 하고 밥도 해야 하지만 전화도 꼭 해야 하는 일에 해당했다.
매일 숙제처럼 전화를 걸었고 시간을 쏟았다.
이런 이야기를 정신과 원장님께 하자, 제발 본인이 아프다는 자각을 좀 하라고 했다.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힘든데 그 목소리로 매일 그렇게 전화를 왜 하냐고 했다. 그 전화 안 해도 큰일 안 난다고. 본인만 좀 생각해 보라고..
그렇게 전화를 드문드문하기 시작했다.
양가 부모님은 속으로는 어떠실지 모르지만, 내게는 싫은 내색은 없으셨다.
지금은 볼일이 있으시면 부모님들이 전화를 하시고 나는 일주일에 한 번 혹은 2주에 한번 정도 남편과 함께 있을 때 전화를 한다.
그렇게 전화는 내게 숙제가 아닌 게 되었고, 좋은 딸 좋은 며느리 역할에서 조금은 벗어났다.
진짜 이렇게 전화를 안 해도 되는 건지 몰랐다. 숙제가 아닌 전화는 전보다 더 반갑고 애틋했다.
그렇게 완벽주의를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
나의 완벽주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여행이다.
여행 가기 한 달 전부터 숙소를 잡는 것은 물론이고, 맛집에 이동거리측정에 일정 짜는 것까지 완벽하게 준비하곤 했다.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고 처음 떠난 여행은 내 완벽주의는 여행에 전혀 필요가 없었다는 걸 깨닫게 했다.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은 처음이었고, 어느 여행보다도 즐겁고 행복했다.
길거리를 거닐다가 맛있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서 먹고, 미리 잡아둔 숙소가 생각과 달랐지만 잘 잤다.
가고 싶은 곳은 그때그때 떠오르는 곳으로 향했고, 맛집이 가고 싶으면 남편이 5분 만에 검색해서 가기도 했다.
몇 날 며칠을 준비해서 다니던 여행보다 힘들었냐고?
잘 먹고, 잘 자고, 그 어느 여행보다 잘 지냈다. 취침 약을 먹지 않아도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잘 잤다.
여행하는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 머리도 맑아졌다.
물론 약을 꼬박꼬박 먹은 이유도 있겠지만, 그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머릿속이 개운했다. 내 마음도…
지금 나는 몸도 마음도 함께 치료 중인 환자다.
완벽주의 성향은 내 몸도 마음도 지치게 한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게 된 내가 하루아침에 완벽주의를 멀리한 채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해도 완벽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저 멀리 구석에 치워두고 지내고 싶다.
아니,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고, 완벽할 수도 없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무언가에 집중이 아닌 집착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조금은 내려놓고 한숨 쉬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완벽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