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성장애의 시작은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
내 발성장애는 2년 전, 아니 정확히는 2년 반 정도 전에 시작되었다.
내게 그 시기는 내 평생을 통틀어 나의 자존감을 가장 바닥으로 내려 찧게 만들었고, 매일을 좌절과 함께 살았다.
나는 치과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아이를 낳고 10년간 집에서 쉬었다가 치과에 처음 돌아갔던 때였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다른 아르바이트들을 전전하다가 집 앞 치과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공고에 덜컥 이력서를 들고 갔다. 면접을 보러 간 치과에서는 당장 다음 주부터 출근을 원했고, 오랫동안 집에서 쉬었던 나를 써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오전 아르바이트로 오후 세시까지만 일해도 괜찮다는 얘기에 아직 아이들이 어렸던 나는 이보다 좋은 자리가 없다는 생각까지 했다.
오픈한 지 열흘 정도밖에 안된 치과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길래, 오픈인데도 많이 바빠서 사람을 구하는 줄로만 알았다. 입사하고 보니, 진료실장급 직원과 경력직 직원이 오픈 열흘만에 그만두고 당장 안 나오는 상황이어서 아르바이트든 경력단절 직원이든 급하게 사람이 필요했던 터였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왜 오랜 경력을 가진 그 직원들이 오픈 열흘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는지…….
약 2년간의 경력만 가지고 10년을 쉬어버린 나는 그런 생각까지 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했고, 첫 출근은 설레기만 했다.
아이들 학원 스케줄을 새로짜고 다음 주 월요일 첫 출근을 했다.
원장님이 나보다 서너 살 위인 치과였다. 데스크 실장님을 제외하고 직원은 한 명뿐이었다.(두 명이 나갔기 때문에 직원은 더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처음 3개월은 수습기간으로 서류작성을 마쳤다. 내 경력이 짧다는 것도 알고, 10년을 쉬었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에 원장님은 내게 진료에 대해 다양하게 설명을 했다. 데스크 실장님은 내게 수시로 강조했다.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 치과에서 정직원으로만 일했던 나는 아르바이트라는 이유로 종종 회의나 세미나에서 제외되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약간 서운하기도 했는데, 다른 치과에서도 아르바이트 선생님에게는 대부분 그렇단 얘기를 나중에야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아이가 독감에 걸렸다. 부모님께서 가까이에 살지 않는 나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도우미 선생님을 처방전 한 장으로 당일에 배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평소 출근시간보다 한 시간 가량 늦은 시간에 출근해야 했다. 출근한 지 얼마 안 되어 일어난 일이라 민망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해서 출근해서도 쩔쩔매던 중이었다. 그때 데스크 실장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냐는 얘기였다. 자기 조카가 사후피임약이 필요한데 타러 갈 상황이 못돼서 그러는데, 나한테 점심시간 전에 일찍 나가서 타다 줄 수 있냐는 얘기였다. 대신 약만 타고 집에 일찍 가서 둘째를 보고 점심시간 끝나고 들어와도 좋다는 얘기를 했다. 어이가 없었다. 애를 둘이나 낳은 내가 동네 병원에서, 그것도 내 얼굴 다 아는 동네 병원에 가서 사후 피임약을 타야 한다니… 그런 생각도 잠시, 집에 있는 아이에게 빨리 가봐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오늘 출근이 늦어서 이 부탁을 들어줘야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떻게 내 아이가 독감에 걸린 그날 나에게 그런 부탁을 할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왜 조카의 피임약을 내가 타다 줘야 했을까……. 후에 생각하면 그랬지만, 그때의 나는 그 부탁을 결국 들어주고야 말았다. 점심시간이 마치고 돌아오니, 데스크 실장님은 원장님에게 내가 아이가 아파서 일찍 나갔다고 얘기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다른 직원에게 듣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 오히려 병원에 들러서 시간이 더 들어 늦게야 집에 갈 수 있어서 아픈 아이 얼굴은 조금밖에 보지 못하고 치과로 돌아와야 했었던 것이다. 나는 데스크 실장에게 앞으로 이런 부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데스크 실장님은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는 이런 취급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내 상황이 서러웠다. 치과에서 일하기 위해 이런 일까지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수습기간을 지내면서 새로운 직원들이 두 명 더 구해졌다. 둘 모두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생들이었다. 한 명은 타지방에서 온 터라 기숙사를 이용했고, (주변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기숙사로 사용했다.) 다른 한 명은 야간에 공부를 하고 있어서 주 3회 출근하는 직원이었다. 이렇게 직원이 꾸려진 상태로 수습기간을 지냈다. 초반과는 다르게 원장님은 직원들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졌다. 수시로 트레이(치과에 기본 기구를 올려놓는 곳) 위에 기구를 던지기 일쑤였고, 1년 차 직원들이 진료 어시스트를 하는 때에 수시로 손을 바꿔(다른 사람으로 어시스트를 바꿔달라는 뜻이다.) 달라고 했다. 원장님은 진료 술식을 수시로 바꿨고, 우리들은 그에 따라 그날그날 바꾼 술식대로 준비를 해야 했는데, 바뀌는 기준은 아무도 몰랐다. 그래도 그 화살이 나에게 오지 않았기에 3개월 수습 후에 나는 아르바이트지만 정규직 계약서를 쓸 수 있었다.
정규식 계약서를 쓰며 내 퇴근시간은 오후 3시에서 5시로 바뀌었다. 3시에 퇴근해버리면 남은 직원들이 힘들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일도 어느 정도 손에 익었고, 계약서를 쓰며 원장님이 잘해주고 있다는 얘기에 조금 자신감도 붙었었다. 까다로운 환자나 다른 직원들이 힘들어하는 환자는 주로 내가 케어를 담당하기도 했다. 조금 더 월급을 받을 수 있고, 3개월 동안 아이들도 엄마가 일을 한다는 것에 적응했기에 동의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즈음, 원장님의 돌변하는 스타일과 데스크 실장님에 지친 기숙사에 있던 직원은 3개월 수습 후에 계약을 하지 않고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 중 누구보다 원장님의 타깃이 되어 싫은 소리를 많이 듣던 직원이었다. ( 그 직원은 나간 후에 대학병원급에 들어가서 잘 다닌다고까지 소식을 들었었다. 야무지고 꼼꼼했던 직원이라 어딜 가도 여기보다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 할 줄 알았다.) 그렇게 직원이 한 명 나가고 구인공고를 냈지만, 오픈한 지 얼마 안되는데 자주 구인공고를 내는 치과에 경력직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원장님의 다음 타깃이 정해졌다.
그 타깃은 바로 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