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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루 Nov 29. 2021

직장 내 괴롭힘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2)

그렇게 나는 목소리를 잃어갔다.

시작은 진료 어시스트부터였다. 치과진료 중에는 물이 많이 사용되어서 석션을 계속해야 한다. 다른 병원과는 다르게도 원장님과 손이 잘 맞아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손이 안 맞는 경우 서로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 치과에 처음 일하게 되면서 원장님이 내게 가장 먼저 칭찬(?)했던 부분은 석션이었다. 석션을 참 잘해줘서 본인이 편하다는 얘기였다. 오랜만에 일하게 된 치과에서 들은 이 칭찬은 안도와 함께 다른 것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타깃이 되고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도 이 석션이었다. 원장님은 내 어시스트에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3개월 동안 일하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석션이 시야를 가린다며 툭툭 치거나 진료를 멈추고 나를 째려보거나 하는 일이 빈번했다. 석션과 함께 라이트(치과 의자와 연결되어있는 조명)는 수시로 원장님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3개월 넘도록 아무 문제없었던 것들을 날이면 날마다 트집을 잡더니 나중에는 손을 바꿔달라고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원장님의 지적과 멸시가 심해지며 조금씩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나날들로 이어졌다. 석션과 라이트 외에도 술식을 수시로 바꿔가며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며 나를 다그쳤다. 나는 자꾸만 나의 잘못을 찾아가야만 했다. 아무리 찾아도 나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지적이 계속되자,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어시스트를 서야 하는 상황이 오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가지고 내게 질책할지 두려웠다. 다른 직원들도 괜스레 나를 무시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일들로 주눅이 들자 점차 말수가 줄었고, 출근을 해서 웃는 일 또한 줄었다. 두려움이 지나치자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하지 않던 실수가 늘어갔고, 그 실수에는 과한 질책과 멸시 가득한 눈총이 이어졌다. 그럴수록 나는 더 작아지고 내 자존감은 점차 낮아졌다.


하루는 거래처에 보낼 물건을 잘못 보내는 실수를 했다. 양쪽에 나누어서 보냈어야 하는 물건을 한 곳으로 보내버렸다. 내 담당이 아니었지만, 그날따라 내가 데스크에 있었고 아무 생각이 없이 거래처 담당자분께 두 개의 물건을 모두 보냈다. 어마어마하게 큰 실수는 아니지만, 치과 입장에서 환자에게 약속한 날짜에 물건을 준비해야 하기에 제법 큰 실수에 속했다. 그 실수 이후로 나는 더더욱 치과에서 주눅이 들었다.


이제는 누가 봐도  치과에서 원장님에게 무시당하고 괄시당하는 직원은 나였다.

임플란트 수술이 있던 날 내가 어시스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술 준비를 마치고 원장님이 들어와 수술을 시작했다. 수술을 시작하고 나도 내 할 일을 시작하려는 찰나 날카로운 목소리로 원장이 외쳤다. “ 손대지 마세요!!”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수술 어시스트를 해야 하는데 손을 대지 말라니,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인가…. 다시 내 할 일을 하려는 순간 “ 가만히 있으라고요!!”라는 어이없는 소리가 이어졌다. 수술에는 두 명의 어시스트가 들어가는데, 그날 나는 바로 곁에서 석션을 하는 임무가 아닌 수술 보조를 돕는 역할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멸균된 글러브를 끼고 양손을 들고서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1년 차 후배들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수술 중반부까지 양손을 가만히 든 채 수술실을 지키고 있었다. 머리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내가 지금 여기서 글러브를 벗고 뛰쳐나가야 하는 건가, 아니면 등신같이 여기 이대로 서있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오갔다. 중반부가 지날 무렵 환자가 잠시 사진을 찍으러 수술실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 순간 나는 더 참지 못하고 글러브를 벗어던지고 다른 직원에게 어시스트를 맡기고 휴게실로 갔다. 수치스럽다 못해 치욕스러웠다. 도대체가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그러는지 이유조차 가늠되지 않았다. 화가 나도 억울하고 분했다. 순간 나를 찾는 원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하루 선생님 들어오라고 하세요!” 그는 나를 다시 수술실에 세웠다. 나는 다시 멸균 글러브를 끼고 어시스트를 해야 했다.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수술기구들을 내쪽으로 탁탁 내던졌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아야 했다. 내가 지금 얼마나 멸시를 받고 있는지 온몸으로, 그 수술실의 공기로도 느껴졌다. 어떻게 수술이 끝났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수술이 끝나고 그는 나를 불렀다. 수술 중간에 그렇게 나가 버리면 어쩌냐는 얘기였다. 약 두 달간 그에게 매일매일 괴롭힘을 당하던 나는 그가 어려웠다. 나에게 왜 그렇게 했냐고 따지기는커녕 죄송합니다라는 얘기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 자존감은 이미 바닥을 뚫고 저 깊은 곳에 가 있었고, 모든 것이 내 잘못처럼 여겨졌다. 퇴근 후에 집에 오면 아이들을 재우고 우는 나날들을 보냈다. 서럽고 힘들었지만 주변에 내색하지 못했다. 내가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서 그런 까닭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즈음 이상한 증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에 오면 내가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을 못 하는 시간에 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분명 저녁을 준비하려고 했었는데, 어느새 잠이 들어 퇴근한 남편이 나를 깨웠다. 나는 기억이 없었다. 잠든 기억이 없이 잠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치과에서는 어시스트를 설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점차 손까지 떨려왔다. 원장님이 무서웠고 다른 직원들조차 나를 일 못하는 직원으로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나를 일을 못하는 상태가 되고 있었다. 실수는 더 잦아졌고, 주변에서도 내 떨리는 손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그럴수록 원장님의 질책은 심해졌고 나는 점점 숨이 막혀왔다. 목소리를 크게 내면 떨리기 시작했고, 대기실에 있는 환자 이름을 크게 부르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그때는 몰랐다. 그 증상들이 모두 내 우울증의 증상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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