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치고서야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순간에 잠이 드는 날이 잦아져 일상에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안꼴은 엉망이 되어갔으며, 엄마손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제대로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아무래도 병원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집 근처 가정의학과를 찾아가 갑작스럽게 잠이 든다는 상담을 했다. 일단 기본적인 검사부터 해보자는 의견이었다. 피검사와 소변검사, 심전도를 받았다. 심전도 결과를 보던 가정의학과 원장님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뭔가 이상하니 한 번만 더 검사를 해보자 했다. 심전도를 한번 더 했지만, 원장님은 다음날 한 번만 더 검사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날 검사를 받았을 때 원장님은 큰 병원에 갈 것을 권유했다. 젊은 사람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 결과가 보인다며 제대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며칠 후 심장 전문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도 심전도는 이상한지 다른 검사들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몸에 장치를 하고 러닝머신을 한참을 뛰었다. 심장초음파도 받았다. 내가 심장에 이상이 있는 건지…그래서 그렇게 된 건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결과를 들으러 간 진료실에선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다양한 검사를 해 본 결과 심장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스트레스가 심한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심장전문의는 내게 정신과로 연결을 해 줄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정신과에 가봐야 한다고?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집 앞에 가정의학과에 가서 큰 병원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하니, 가정의학과 원장님은 어렵게 얘기를 꺼냈다. “ 소하루씨가 지금 꼭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직장을 쉬는 게 어떨까요?”라는 얘기였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엉망인 내 모습이 떠올랐다.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가정의학과 원장님의 그 말은 ‘내가 왜 이 치과를 계속 다니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치과 취직 전 남편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내가 안쓰럽다며 자신이 좀 더 쉬지 못해도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직장에 다녔었다. 남편은 하루하루 지쳐가는 게 보였고, 내가 그 치과에서 정규직이 되고 월급이 오르자 내 권유로 월급은 줄지만 조금 더 편한 직장으로 옮겼었다. 내가 지금 그만 두면 남편 월급으로만 지내기는 너무 빠듯했다. 남편에게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 그만두고 싶지만 내가 갑자기 그만두면 우리 집 형편이 좀 힘들어질 것 같아서 망설여진다고 했다. 남편은 무슨 소리냐며 지금 니 몸이 더 중요하지 그게 문제냐고 했다. 남편의 말에도 선뜻 그만 둘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즈음 치과에는 7년 차 경력직 직원이 들어왔다. 그 직원이 들어오고도 원장님의 나에 대한 멸시는 계속되었다. 며칠간 상황을 지켜보던 그 직원은 내게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선생님, 왜 여기서 이런 취급받으면서 일해요? 다른데 가면 이런 취급 안 받고도 잘할 거 같은데 왜 이렇게 힘들게 일해요?” 머리가 띵했다. 그때 당시의 나는 내가 어딜 가도 이런 취급을 받을 정도의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를 완전히 잃어갔던 것이다. 그 말이 도화선이 되어 그만두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나는 토요일은 근무를 하지 않기로 계약했기 때문에 아이 친구의 생일파티에 있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모여 놀고 엄마들과 이야기가 이어졌다. 다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치과 생각밖에 없었다. 왠지 오늘 이어야 했다. 더는 하루도 그곳에서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토요일 치과 업무가 끝나갈 시간 치과로 향했다. 그리고는 원장님 면담을 신청했다. 상담실에 원장님과 단둘이 마주하고 있던 그 순간 심장은 말할 수 없이 뛰었고, 손은 덜덜 떨렸다. 그래도 해야 했다. 치과를 그만두겠다고 얘기하고는 그간 원장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 순간 어이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네, 다 제 잘못입니다.” 귀를 의심했다. 다 자기 잘못이라니, 그 말 한마디라니……. 더는 입 밖으로 아무 말도 나오지 못했다. 그는 당장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휴게실로가 내 모든 짐을 싸서 치과를 나왔다. 그렇게 나는 그 지옥 같은 치과에서 도망쳤다.
지금도 그만두던 날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날 상담실의 공기까지 기억이 날 정도다. 내가 써 내려간 일말의 사건들은 모두 내 시점에서 보았기 때문에 그의 입장은 어떨지 모르겠다. 지금도 그가 내게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쫓아가서 물어보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다시는 발길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집 근처 그 치과의 간판을 보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치과를 그만두고 갑자기 잠드는 증상은 사라졌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막히는 증상은 종종 나타났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큰 소리를 낼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나는 괜찮아지고 있다고 여겼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는 그때 심장전문의 권유대로 일찍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나는 발성장애를 얻었고, 그 일이 있고 2년이 넘은 후에야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목소리의 상태가 이 정도가 되기 전에 그때 바로 병원에 갔더라면 이렇게까지 사람들과 대화가 힘들어질 정도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라는 후회를 한다.
다른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상태에서 내 글을 본다면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쓴다.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을 밟는 것에 망설이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의 몸도 마음도 더 돌아보고 챙겨주기를… 나는 하지 못했던걸 그대는 일찍 시작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