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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루 Dec 01. 2021

제대로 쉬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휴식.



무기력증 수치는 여전히 높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무기력증 수치가 높다는 것은, 내 몸은 아직 더 휴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놈의 휴식 휴식 휴식. 요즘 내게 가장 어려운 단어다.

내가 제일 못하고 있어서 상담 때마다 혼나고 있는 그것!

휴식이다.


나는 번아웃이 심하게 와있다.

번아웃이 어떤 건지 잘 몰랐는데, 내 안에 있는 에너지를 다 짜내 버려서 일을 함에 있어서 집중력도 떨어지고 만사가 지치는 상황이라고 했다.

물론 내가 그걸 잘 느끼지는 못한다. 피곤함을 느끼긴 하지만 그 피곤함을 가지고도 다른 일들을 당연히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몸은 느끼고 있다.(정확히는 내 성대가 느끼고 있다.)

번아웃으로 나는 많은 것을 금지당했다.


재진 검사지에 조깅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했더니, 우울증 환자들이 조깅을 좋아한다고 했다.

조깅으로 뇌를 깨우는 각성제 같은 효과를 일으킨다나….

사실, 처음 정신과 상담을 가기 전날,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나름대로 우울증에는 운동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조깅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조깅은 머리를 맑게 해 줬다. 그래서 계속하고 싶었는데 내가 뇌를 깨우기 위해 각성제처럼 조깅을 이용하고 있었다니…….

‘조깅을 왜 못하게 한담?’이라고 생각했다가 각성제라는 얘기에 뜨끔했다.

결국 다음 진료를 가는 2주 동안은 운동을 금지당했다.

무기력증이 너무 심해서 내 에너지를 운동에까지 쓰지 말라는 진단이었다.

사실 요즘 운동을 쉬면서 몸 컨디션이 더 좋은 건 사실이라서 뭐라 반박할 자신이 없었다.

오전 시간에 조는 일도 없어졌고, 아침에도 조금 더 잘 일어난다.

상담을 받다 보면 뭐라 반박할 수 없는 순간이 생각보다 많다. (그 순간 억울하다가도 할 말이 없어진다.)

상담을 받을 땐 이건 아니다 싶은 얘기라고 생각하다가도 약을 먹고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정신과 원장님 말이 맞는 게 대부분이다.



조급하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자꾸만 조급해진다.

좀 더 빨리 나아서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모두 하고 싶은데, 내게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 자신을 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건데, 머릿속으로는 자꾸만 뭔가를 하려고 한다. 이 또한 쉬지 못하는 내 우울증이라고 한다.

번아웃인 나를 내가 잘 돌보지 못하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무언가를 해야 할까.

무엇이 불안해서 이렇게 무언가를 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원장님은 해야 할 것 같은 거 말고 하고 싶은걸 해보라고 했다.

나는 운동도 하고 싶고 새벽 기상을 해서 하루를 알차게도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게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인지 질문이 이어졌다. 그게 왜 하고 싶은지도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을 해 본다.

조깅을 하고 싶은 건 내 우울증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고, 일찍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는 건 다른 성공한 사람들처럼 나도 무언가를 막연하게 해내고 싶어서다.

TV나 드라마를 봐도, 자기 계발서들을 봐도 모두들 계획대로 살고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며 산다는데, 왜 나는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건가…

왜 그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도 우울증이 없는데 나는 그럴 수 없는지 갑자기 짜증이 몰려왔다.

(그런데 진심으로 궁금하다. 왜 그 사람들은 되고, 나는 안 되는 걸까?’..


내가 다른 목적이 없이 하면서 재밌는 건 뭐가 있을까 싶었다.

책 읽는 것과 글 쓰는 것,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다른 목적으로서의 하고 싶은 것이 아닌 그 자체로 내게 기쁨을 주는 것들.

아무것도 안 하는 휴식이 아니라 내 자체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하는 것.

그런 것들을 해나가는 것이 나를 돌보는 일인 것 같다.

그 자체로서의 즐거움을 주는 일들을 하나하나 찾아나가는 것.

(물론 가만히 누워서 멍 때리는 것도 좋지만, 그다지 즐겁지는 않다.)


상담 초반에 나는 잘 쉬고 있다고 정신과 선생님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집에서 가만히 누워서 잘 쉬고 있냐고 했다.

집안일도 다 미루고 할 일들을 미루며 널브러져 있는 시간들이 많다고 했다.

그 시간을 정말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냐고 했다.

정신과 선생님은 미루는 것과 쉬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은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할 에너지가 없기에 미루는 거고, 쉬는 것은 뒤에 해야 할 것에 대한 불안 없이 마음이 편안하게 쉬는 것이라고 했다.

그 후로는 할 일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아니, 미룬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정하는 할 일 들이라는 건 완벽하고 싶어서 자꾸만 미루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대신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들을 만든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솔직히 나를 위해서다.

이 글을 써서 나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것?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가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서다.


내 삶에 대해 커다란 목표가 아니라 이 순간을 오늘 하루를 행복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을 해야겠다.

나는 번아웃을 이겨내고 있는 우울증 환자니까 말이다.


그렇게 글 쓰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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