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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루 Dec 02. 2021

남편은 남의 편? 아니, 누구보다 내편입니다.

세상 가장 내편인 남편에게 고맙습니다.


“남편이 왜 남편인 줄 알아? 남의 편이라 그래!”



한참을 웃고 떠들며 얘기하던 지인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이 얘기를 들을 때 나는 한참 목소리 때문에 이비인후과를 다니던 때였다.

발성장애의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 약을 먹고 음성치료를 다니는 나를, 남편은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병원에 데려다주었다. 초반에는 진료실에도 함께 들어갈 정도였으니, 나보다 더 내 걱정을 하는 사람이다. 남편은 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늘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때만 해도 정신과 약을 먹기 전이라 나는 매사에 조금 불안해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남편은 나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내편만을 들어주는 사랑꾼 같지만, 나 역시도 신혼초에는 불같이 싸우고, 연애할 때는 몇 번이고 헤어짐을 반복했었다.

남편이 한순간에 사랑꾼으로 변한 것은 아니고, 결혼한 지 10년이 되어가던 어느 순간부터 이 사람이 내 편이구나 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남편이 어느 누구보다도 내편이구나 라고 깨닫게 된 건,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나서였다.

이비인후과는 진료실까지 따라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스템이었지만, 정신과 진료실은 보호자가 같이 들어가기에는 어려운 분위기여서 나 혼자 들어갔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나서 차에서 기다리던 남편에게 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 여기 돌팔이같애!! 나보고 우울증이래~ 그게 말이돼? 내가 우울증이래~”

이말 한마디를 남기고 나는 대성통곡을 했다. 그간에 힘들었던 시간들이 스쳐가면서 이게 다 우울증 때문이었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괜스레 한심했다.

그런 내게 남편은 “ 치료하면 되지… 치료받으면 좋아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치료 잘 받자. 그냥 아픈 건데 뭘…” 이라며 태연하게 말했다. 남편의 태연한 반응에  북받치던 설움도 잠잠해지고 집으로 출발하는데, 태연한 줄 알았던 남편은 말로만 태연했던 모양이다. 평소에 늘 부드럽게 운전해서 거의 덜컹거림을 느끼지 못했는데, 차는 덜컹거리고 신호도 못 볼 뻔하고 우왕좌왕했다. ‘이 사람, 나 못지않게 놀랐구나….’ 싶었다. 내가 불안해할까 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놀란 남편은 집까지 그런 불안한 운전을 계속했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쉬어야 한다는 얘기였고, 모든 방면에서 조금 내려놓아야 한다는 거였다. 나는 번아웃이 와있는 상태였고, 이미 몸과 마음 모두 과부하 상태였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하던 것들을 그만두는 게 좋다고 했다. 말이 쉽지,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을까? 초반에는 내가 하던 것들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절대 불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상황을 쉴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어 준 것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가장 먼저 아이들의 식사를 종종 맡아 주었다. 주야간으로 일하고 있는 남편은 안 그래도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는 편이었는데, 내가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나서는 야간에는 본인이 아이들의 아침과 저녁을 준비해 주었다. 그게 얼마나 큰 걸 맡아준 것인지 주부라면 알 것이다. 남편이 야간일 때는 내가 식사 준비를 하는 날들이 없어졌다는 얘기가 된다. 남편은 그 시간에 조금 더 쉬라고 했다. 남편이 저녁에 출근하기 전 내가 퇴근을 앞둔 시간이면 한 통의 카톡이 날아온다. “오늘도 고생했어~ 내가 애들 저녁 먹여뒀으니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좀 쉬어~” 이 문자 한 통이면 하루의 피로가 저 멀리 뒷걸음질 치며 사라졌다.

남편은 하루에 12시간을 근무한다. 그것도 생산직이라 12시간 동안 몸을 쓰며 일하는 사람인데, 자신의 휴식을 반납하고 나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준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늘 고맙다는 말을 하지만 그 말로는 부족할 정도이다.


그리고 남편은 시댁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누가 그러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삼일에 한번 시댁과 친정에 영상통화를 했다. 그게 내가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하며 늘 숙제처럼 전화를 하곤 했다. 양가에 전화를 하고 나면 30분 정도. 목소리가 점점 안 나오면서 큰소리로 대화를 해야 하는 영상통화는 내게 숙제가 되었다. 정신과에서 그 전화통화를 안 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남편에게도 그 얘기를 했었다. 그러자 남편은 이제 자기가 전화할 테니, 목소리가 좋아질 때까지만이라도 전화 조금 덜 하라고 했다. 사실 남편은 부모님께는 마냥 다정한 편이 아니라 전에는 한 달에 한번? 일 년에 열 번도 채 전화를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일주일에 한두 번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안부인사를 드렸고, 나는 점점 전화 횟수를 줄여서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이주에 한번 정도 전화를 드린다. 부모님들도 내 목소리가 안 좋다는 것은 알고 계셔서 궁금하시거나 볼일이 있으시면 직접 전화를 주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나는 또 한 가지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실,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도 브런치 작가가 된걸 누구보다 기뻐하는 남편이 카페에서 글을 쓰자며 데이트를 데리고 나와서 쓰는 중이다. 글을 써가는 한 시간가량 옆에서 내 사진을 연신 찍어대며 작가님 같다를 연발하고 있다. 내가 우울증이라고 하지만 깊은 우울감에 빠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 사람이 내 곁에 있어서가 크게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정신과 원장님도 남편에 대해 얘기하고 나서 남편이 아니었으면 병원에 훨씬 일찍 왔을 거라고 했다. 남편이지만 누구보다 내편인 남편이 있어서 든든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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