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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루 Dec 03. 2021

나는 나의 우울증이 좀 억울하다.

우울증이 뭐 이래?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연상되는 것들이 있다. 우울감, 슬픔, 무기력….

내가 처음 우울증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대중매체에서 워낙에 많이 다루는 소재중 하나라서 우울증에 대해 제법 들어본 것 같은데, 내가 우울증 환자라는 게 말이 된다고?


일단, 나는 우울하지가 않다. 내 하루하루가 불행하지도 않고, 죽고 싶은 마음도 없다. 집이 빚에 허덕이지 않으며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다. 부모님이 내 숨통을 조여 오지도 않고 아이들이 반항을 하지도 않는다. 무엇하나 지금 나를 벽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없다. 그런 내가 우울증이라니, 배부른 소리 같았다. 뭔가 잘못 진단된 건 아닐까라는 의심으로 한 번 두 번 병원에 가고 하루 이틀 약을 먹는 동안 달라지는 내 생각들과 행동들에 지금은 내가 우울증 환자려니.... 하고 있다.


내가 우울증 환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유들이 있다.


먼저, 나는 그냥 게으르다.

아니, 나는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내 정신과 원장님에 따르면 나의 게으름은 우울증에서 오는 것이라 했다. 무기력증이 높아서 무언가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룬 채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아직은 약 조절을 하는 중이지만, 약이 무기력증을 잘 막아주는 때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해치워버리는 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약이 잘 듣는다고 다른 곳에서 에너지를 다 써버리면 집안일을 해야 하는 에너지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린다. 나의 게으름이 판을 칠 때 생각한다. 이런 게 우울증이라니.... 참나....


두 번째, 나는 잘 웃는다.

우울증 환자 중에 내가 제일 잘 웃을지도 모른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까르르까르르 잘 웃고,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곧잘 웃는다. 오히려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부터 웃음도 많이 줄고 오히려 무기력할 때도 많았다. 각성제를 챙겨 먹고 예전 내 모습처럼 잘 웃는 때를 보면 내가 어디가 우울증 환자라는 건지 당최 가늠이 안된다.


세 번째, 나는 행복하다.

말 그대로 나는 제법 행복하다. 내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만 빼고는 내 삶에 별 불만이 없이 행복하다. 남편은 내편을 잘 들어주고, 13살인 큰아이는 반항적인 사춘기가 아니라 잘 넘어가 주고 있고, 10살짜리 막내는 아직도 아기처럼 귀여운 짓을 매일 하며 곁에 머문다. 시부모님도 시집살이와는 거리가 먼 분들이고 친정식구들은 뭘 해도 내편이다. 이렇게 들으니 내가 더더욱 우울증 환자인 이유를 모르겠다.


간단하게 위의 세 가지 이유만으로도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게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의지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고 그 긴장감으로 목소리가 막히고 떨리고 제 멋대로다. 남편 앞에서 조곤조곤 얘기할 때는 내가 발성장애라는 걸 잊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다 조금이라도 내가 목소리에 대해 생각하면 어느새 목소리는 탁탁 막혀서 대화를 방해한다.

알고 있다. 사람들 앞에서 과도하게 긴장하는 것. 내 목소리를 뜻대로 하지 못하는 것. 긴장상태가 지속되어서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것... 싫다는 이야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어느 곳에도 털어놓지 못하는 것... 이러한 것들이 가끔... 아주 가끔... 내가 우울증이구나 라고 깨닫게 한다. 이러한 증상들을 모든 사람이 갖고 있지는 않고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정도가 나만큼 심하지 않다는 것. 그러한 이유로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지금조차 약간 억울하다. 우울증을 고치고 싶긴 하지만 아직도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에 적응이 안 된다.


과거를 돌아보면 우울증이라 불릴 수준으로 힘든 나날들이 분명히 있었다. 집안이 온통 쓰레기에 빨랫감이 바닥을 온통 메운 적이 있었다. 보다 못한 신랑이 나 몰래 집안일해주시는 분을 불렀더니 손사래를 치며 이런 집은 못 치운다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셨단다. 그 얘기를 남편은 내가 온 집안을 다시 깨끗하게 만들 수 있을 때나 해 주었다. 또 하나 에피소드는 여성문화센터에서 하는 수업을 하나 들은 적이 있다. 여자들이 가득하고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그곳에서 갑작스레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며 수군수군 거리는 것만 같았고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만 같은 순간이 왔다. 눈물이 가득 차 올랐고 그 자리에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짐을 싸들고 나와 기다리고 있던 남편의 차 안에서 한 시간가량 세상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울어댔다. 이런 것이 무기력증이고, 공황장애임을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런 순간들이 왔을 때조차 나는 주변에 힘들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 그 당시에 무엇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고 지치게 했는지는 또렷하게 생각나지는 않지만, 그런 순간순간들이 내 삶의 하루하루로 메워졌고,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목소리가 안 나오는 지경까지 되고야 만 것이다.


자신이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를 가뿐히 무시해버리는 것.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런 것이다.

이제는 내 신호에 민감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보다 내 신호를 잘 살피고 살아야겠다는 그런……. 여전히 잘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잘 살피며 나를 잘 보듬어가며 살아가는 내가 되길 바라며 오늘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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