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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루 Dec 19. 2021

너 그렇게 촌스럽게 하고 와서 뽑은 거야

괴로운 직장에서의 이직은 필수다!!!

퇴근시간 우리들의 수다시간의 마무리는 나 놀리기로 끝났다. “그날, 네가 너무 세련되고 쎄 보였으면 우리 무서워서 안 뽑았을 거야. 그날 너 엄청 촌스럽게 하고 와서 뽑은 거야~” 촌스럽게 하고 와서 뽑았다는 말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내가 3년째 다니고 있는 지금 치과는 거의 매일 이렇게 한바탕 웃으며 끝이 난다.


3년 전 다니던 치과에서 심한 괴롭힘을 당하고 6개월을 쉬었다. 그만둘 때 즈음엔 석션만 하려고 하면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다시는 치과일을 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며 몇 개월을 보냈다. 그렇게 쉬면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치과 직원들의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치과가 있었는데, 6시에 퇴근할 수 있었고 집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당일에 전화를 하고는 면접을 보러 가기로 했다. 내가 다시 치과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정도 쉬었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당시의 나는 자존감도 많이 떨어져 있었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나를 위해서도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만 있으면서 무기력증이 심해졌고, 집안일도 엉망이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나는 긴 머리에 수수한 차림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 보러 갈 당시 정보라고는 일하는 시간과 위치, 원장님 성함 정도였다. 진료 중인 시간에 보러 간 면접이라 여자 원장님이 시술하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치과 경력이 짧은 나는 주변에서 듣기로 여자 원장님과 일하는 건 쉽지 않다고 들었었다. 면접 대기 중에 보고서 아차 싶었는데 원장실에 들어가 면접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원장님께 반해버렸다. 짧은 머리에 가운을 입은 도시적으로 생긴 원장님은 전라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셨다.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었지만 원장님과의 대화는 나를 편하게 해 주었다. 원장님은 내게 그다지 많은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내가 결혼해서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아시고서는 우리 병원은 여기에서 에너지를 100% 쓰길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 여자들은 퇴근 후에 집에서도 일을 해야 하니 적당히 일하자며 그럴 수 있겠냐 정도의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그 조건이 내게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생각이었다. 면접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사실 다른 내용들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원장실을 나왔다. 나 외에는 실장님밖에 없는 직장이라 실장님 인상도 중요했는데, 사근사근하신 말투로 원장실에서 나온 내게 잠시 기다리라는 얘기를 하며 원장실로 들어갔다. 후에 실장님은 본인 인상이 강하지 않았냐 물으셨지만 내게는 마냥 상냥한 느낌이었다는 얘기에 의아해하셨다.


원장실에서 나온 실장님은 내게 언제쯤 출근이 가능하냐는 얘기를 하셨다. 면접 보자마자 출근이라니, 내가 면접을 잘 봤구나 라는 착각에 빠졌다. 출근 얘기를 나누려고 생각해보니 남편에게 직장에 출근할 거라고 면접으로 보러 간다는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다. 실장님께 집에 가서 남편과 상의를 해야 해서 시간을 좀 주시라고 했다. (이 얘기로 두 분은 지금도 놀린다. 직장을 남편 허락받고 정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혼자서 직장 결정도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구직을 생각도 안 했던 상황이라고 설명을 하자 오해는 풀렸지만, 그래도 놀리신다.) 남편과 상의 후 3주 정도 후부터 출근할 수 있다는 얘기를 전화로 전했다. 그렇게 두 번째 치과에 취직을 했다.


첫 출근을 하자 나를 위한 유니폼이 미리 마련되어 있었다. 출근을 결정하고 3주의 시간이 있었던 터라 두 분은 유니폼까지 주문했으니 꼭 나와주리라 믿었다고 하셨다. (내가 취업을 하기 전에 많은 면접을 보고 직원을 구하지 못해서 일 년간 실장님 지인분이 아르바이트를 해주고 있던 상황이었다.) 3일간 인수인계를 받으며 치과 시스템에 대해 대강 배웠다. 첫날, 나는 전 직장의 트라우마를 지우지 못하고 석션을 하려니 손이 떨리고 하지 않을 실수들을 자꾸만 했다. 그럴 때마다 원장님은 “괜찮아~ 천천히 해. 내가 할게~”라며 내가 해야 할 일마저 본인이 해주셨다. 실장님 또한 내게 계속 “천천히 해~천천히~괜찮아~”라는 말들을 하셨다. 그럴 때마다 두근대던 심장은 잠시 사그라들곤 했다. 그렇게 인수인계해주는 분이 떠나고 나서 이제 진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갈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진료실에서 과하게 긴장을 했고, 그 외의 것이라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 청소도 부지런히 하고 무엇이든 더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내 일하는 실력은 좀체 빨라지지 않았고, 나는 점점 주눅이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점심시간. 치과를 스쳐갔던 다른 직원들 얘기를 하면서 내가 배우는 속도도 느리고 손이 느리다는 얘기가 나왔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곳에서도 나는 적응을 하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낼 것만 같다는 불안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이후 얘기에 나는 눈물이 날 뻔했다. “소하루쌤은 배우는 게 느려도 한번 가르쳐주면 그대로 하려고 하는 사람이라서 같이 일하기가 편해~. 손이 느리면 어때 느리게 하면 되지~ 느린 걸 어쩌겠어? 원래 그런 걸~사람마다 다른 거지~” 나를 비하하거나 면박을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자꾸 주눅이 들려고 하니 두 분이 편해지라고 얘기했던 것이다. 두 분은 기억도 못할 얘기겠지만 나는 그날 이 치과에 오래 다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실장님이 같은 직종의 지인들을 만나러 갔는데,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해 들었다며 실장님 지인에게 내 얘기를 했다고 했다. 내가 그만둔 게 아니라 전 직장에서 내가 일을 못해서 잘린 거라고 얘기를 했단다. 손이 떨렸다. 내 얘기가 도대체 어떻게 퍼진 건지 어이도 없었다. 그다음 실장님 입에서 나온 얘기에 나는 집에 오는 길에 울어버렸다.”걔가 그렇게 말해서 내가 화가 나더라고. 그래서 우리 병원에서 얼마나 일을 잘해주고 있고 얼마나 부지런한데 그런 얘기를 하냐고 내가 막 뭐라고 했어. 다시는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들어온 지 한 달밖에 안된, 그것도 긴장하면 실수를 연발하고 주눅이 드는 직원을 이렇게까지 편들어주는 상사가 얼마나 있을까? 앞으로도 그런 사람을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이 내편이 되어주었다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쳤다. 이 실장님 밑에서 일하게 된 건 내가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라며 출근을 이어가던 어느 날 지나가는 말로 원장님이 “난 소하루쌤의 완벽주의 덕분에 일하기가 편해. 고마워”라고 하셨다. 나는 여전히 내가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날들이었는데 , 그 말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이런 두 분의 스쳐가던 말들이 내가 전에 받았던 상처들에 약이 되어주고 있었다. 덕분에 언제부턴가 석션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해지고 실수도 잦아들고 일이 손에 익었다.


출근하던 초반부터 내 발성장애는 시작되었다.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진료실에서 환자를 부르지 못하고 대기실로 나가 환자를 불러야 했다. 바쁠 때는 실장님이나 원장님이 나 대신 환자를 불러주는 날들이 많았다. 후에 내가 발성장애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두 분한테 그동안 폐를 끼쳐서 죄송했다고 얘기했더니 “우리는 너 원래 목소리가 작은 줄 알고 별로 신경 안 썼는데? 우리는 너 지금 목소리도 괜찮아~ 전혀 일하는데 지장이 없어. 우린 불편한 거 없어. 너만 괜찮으면 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글을 쓰면서도 정말 또렷이 기억날정도로 좋았다. 이 사람들과 일하게 된 건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만약 전 직장에서 마냥 참으며 계속 일을 했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이직이 잦은 사람에게 인내심이 없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버티기를 못해서 이직이 잦다고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직을 하니 이런 사람들을 만나 하루도 출근하기 싫은 날 없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분명 나와 맞는 다른 직장이 있고, 나를 힘들게 하는 상사가 아닌 이렇게 보듬어주고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할수 있다고. 이직은 절대 나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힘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나의 이직 경험이 조금 길잡이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에 좋은 사람은 많고, 그게 바로 나의 직장동료나 상사인 곳이 분명 있을 거라고. 무조건 버티는 게 정답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배울 점이 많고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들과 일하는 경험을 그대들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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