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날들을 보냈다.
무기력증이 엄습하는 나날들로 한해의 첫 달을 보냈다.
목소리는 더더욱 나오지 않았고, 무엇에도 의욕이 없던 시간들이었다.
그나마 좋아하던 책 읽기나 글쓰기조차 멀리한 채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약 때문인지 한동안은 저녁 여덟 시도 되기 전에 잠이든 채 다음 날 아홉 시가 다 되어 일어나 정신없이 출근했다.
하루에 12시간씩 자는 날들이 이어지자 나의 삶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집안일은커녕 하루하루를 출퇴근을 제외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보내게 되었다.
그럴수록 무기력증은 심해졌고 점차 우울해졌다.
목소리가 심하게 나오지 않던 날 정신과 예약일이 아니지만 병원으로 달려갔다.
정신과 원장님에게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남겼다. 일상이 무너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이라고..
약때문에 잠이 크게 문제가 되어 힘드니 당분간 약을 조절해보자고 했다.
아침 점심 저녁에 먹던 우울증 약 몇알을 끊고 저녁에만 세알의 약을 먹기 시작했다.
약을 끊고 이삼일은 오히려 불안해서 목소리가 더 안 나왔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목소리는 그럭저럭 나왔다.
머릿속으로 목소리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목소리에 대해 집착할수록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 생각을 하지 않는 순간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내가 목소리가 잘 나온다는 느낌을 받아서 다시 목소리 생각을 하는 순간 목소리가 막힌다.
악순환이었다. 약을 줄인 2주간 목소리에 대한 집착은 커졌다.
약을 먹지 않는다는 생각에 종종 불안한 순간들이 많았지만, 약을 안 먹으며 더 버텨보고 싶었다.
다른 것을 해야겠다는 의욕은 없었지만, 2주 후 찾은 병원에서 자율신경 수치가 잘 나왔다.
하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불안하다는 얘기에 아침에 먹는 우울증 약이 추가되었다.
힘이 빠졌다. 우울증이 나아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조바심을 낼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조바심이 난다.
이대로 나는 목소리가 좋아지지 않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메웠다.
정신과 원장님은 그냥 내 목소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를 잃는 사람도 있는데, 목소리가 떨리고 막히는 것은 받아들여 보라고 했다.
그렇게 목소리에 대해 집착을 버리고 잊어버려야 목소리가 잘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정신과 원장님은 나와 대화중에 문제점을 찾아내 주었다.
대화하다가 목소리에 관련된 얘기나 조금이라도 불편한 얘기를 하려 하면 막히는 증상이 보인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명절에 친정에 가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는 한순간도 목소리 막힘 증상이 없었다.
발성 교정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닐지 정신과 원장님과 상의했더니, 심인성 질환으로 생각되니까 약으로 마음이 편해지도록 하자고 했다.
발성 자체의 문제라면 대화하는 도중에 멀쩡히 목소리가 나올 수가 없다는 의견이었다.
듣다 보니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내 목소리는 심리적인 문제다.
나 스스로 해낼 수 없으니 약물치료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긴 시간 치료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
더 이상 의심하지 말아야겠다.
더 이상 내가 우울증으로 불안하다는 것을, 심리적으로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피하지 말아야겠다.
바로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내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인정하고, 더는 목소리에 집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이렇게 글로 써 내려가며 내 현실을 받아들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