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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루 Feb 13. 2022

그렇게 약물치료가 끝이 났다.

생각의 전환

반년 간의 약물치료가 오늘자로 끝이 났다.

마지막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내 약물치료가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오늘 방문한 정신과에서 약물치료가 더는 필요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자율신경계 검사에서 수치가 더는 조절할 필요도 없이 한 달이 넘도록 우수한 수치를 보였다.

목소리는 어떠한가 하면 크게 차도가 없다.

그럼에도 나의 약물치료가 끝나게 된 것은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바뀐 영향이 크다고 했다.

마지막 상담 때 정신과 원장님은 내 목소리를 이대로 받아들여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떨리고 끊기는 이 목소리를 내 목소리로 인정해 보라고 했다.

세상에는 어느 순간 아예 목소리를 잃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에 비하면 조금 불편한 정도이니 받아들여 보라고 했다.

무기력증도 많이 좋아지고 생활에 다른 불편함은 없이 오로지 목소리 때문에만 약을 먹은 지가 한 달이 되었다.

목소리를 받아들여보라는 얘기에 ‘그게 되겠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생각이 바뀌는 것은 정말 순간이었다.

상담을 받고서 이삼일 후에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음성치료를 해도, 이비인후과 약을 먹어도, 정신과 약을 먹어도 변화가 없다면 내 목소리가 이제 이렇게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목소리 치료가 더는 안된다는 생각에 내 목소리가 이렇게 변해 버린 거라는 생각을 가지니 불안함이 사라졌다.

내 목소리가 낫는 것이 아니라 이게 내 목소리라는 생각에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자 남들 앞에서 떨리거나 끊기는 목소리를 내는 것에 있어서 망설임이 덜어지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그런 생각으로 지내기 시작하자 생활에 활기가 돋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면 이제 내가 말할 때 목이 아프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막히는 목소리가 불편할 때는 있지만 그럴 때는 다시 한번 말하면 조금 더 나은 발성으로 나오곤 하니 괜찮았다. 떨리는 목소리도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더 이상 내 목소리가 버겁지 않아 졌다.

내가 아픈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모든 일에 자신감도 붙었다.

거짓말처럼 목소리가 내게 큰 스트레스가 아니게 된 것이다.

그랬다. 나의 심리치료는 목소리를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로 인한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나는 정신과 상담으로 내 목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정신과 원장님은 내 생각이 이렇게 바뀌고 활기차진 것으로 더 이상의 치료는 필요가 없다고 했다.

병원에 가기 전 이번 주 내내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조깅도 다시 시작했고, 아이들을 챙기는 일에도 관심을 쓰기 시작했다.

집안일을 미루지 않게 되었고, 무기력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쉬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해야 할 일들을 두고 무기력하게 누워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지운채 내 몸과 정신을 오롯이 쉬는데 쓰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이 며칠 새에 일어났다는 것이 나조차도 신기했다.

내 생활에 내가 주체가 되어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 내 삶에 이렇게 활기를 불어넣어 줄 줄 몰랐다.

참 거짓말 같은 시간들이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찾은 정신과에서 더는 치료가 필요 없다는 얘기까지 들으니, 정말 내 생각을 바꾼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간의 약물치료를 통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치유됐기에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반년 간의 정신과 치료를 포함해서 목소리 때문에 병원 치료를 이어간 것이 벌써 9개월이었다. 그 기간 동안 지치기도 많이 지치고, 울었던 시간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불안했고 두려웠다.

여전히 나의 목소리는 떨리고 막히고 조이지만, 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고 두렵지 않아 졌다.

내 목소리로 인한 불편함은 있겠지만, 불안함이 사라진 지금의 나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게 되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시간이 지나 어느 순간 목소리가 다시 스트레스가 되고 불안함이 엄습하는 시기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런 순간이 온다는 것이 마냥 두렵지 않다. 나는 지금처럼 그때도  이겨낼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목소리 하나에 내 삶이 휘둘리게 두지 않고 더 중요한 것들에 진심을 다해 볼 생각이다.

나는 목소리 외에도 수많은 장점을 가진 사람이고, 지금의 내 모습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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