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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탁소리 Mar 20. 2021

#16 검은 고양이

  K가 처음부터 고양이를 싫어했던 건 아니다. 고양이를 키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거리낌이나 불쾌함은 없었다. 날이 무척 흐렸던 어느 금요일 오후, 박스를 정리하러 편의점 문을 열고 나온 K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졌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묘한 느낌이었다. 박스를 차곡차곡 정리해 묶어놓고 문손잡이를 잡았을 때, 저도 모르게 고개가 사선으로 돌아갔다. 놀라운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술집 <달의 궁전> 지붕 위에 덩어리처럼 모여 있는 것은 분명 고양이들이었다. 열 마리도 넘어 보였다. 그중 제일 위쪽에 웅크리고 앉아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검은 고양이와 시선이 부딪혔다. 흠칫 놀라 몸이 뒤로 재껴졌다. 마침 안에서 나오던 손님이 놀라서 앗,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 때문인지 고양이들이 파~ 하고 흩어졌다.     

  그날 밤 비가 밤새 내렸다. 제법 세게 내리는 비 때문인지 편의점에는 손님이 없었다. 옆의 술집에서 나는 사람들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고, 한 마리 두 마리, 점점 많은 수의 고양이 소리로 커졌다. K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데도 고양이 울음소리는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달의 궁전>이 영업을 마치자 새벽의 거리는 오직 편의점 불빛 외에는 깜깜했다. 빗방울은 더 커졌다. 아스팔트를 때리는 매운 빗소리에 앙칼진 고양이 울음소리가 섞여 거리의 분위기는 음산했다.      

  음악 소리도 거슬려서 아예 꺼버리고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가끔 지나가는 차 말고는 거리에 살아있는 존재는 없어 보였다. 편의점 테라스 한 켠에 놔둔 화분은 물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고무나무 잎이 유난히 빛나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잎에 손을 댔는데, 그 때였다. 어딘가에서 검은 물체가 휙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뒤로 성큼 물러난 K는 날아온 물체의 정체를 본 순간 헉, 하고 놀랐다. 오후에 본 검은 고양이였다. 그러고 보니 고양이 울음소리가 멈춘 것 같았다. 고양이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K는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는 고양이를 차마 만지지 못하고 마치 피하듯이 편의점 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침 햇살이 문으로 쏟아져 들어올 때까지 K는 꼼짝 않고 계산대 안쪽에 앉아 있었다. 비가 그친 거리는 조용했다. 조금 후 따박 따박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편의점에는 출근길의 사람들이 들어와 커피나 우유, 간단한 스낵류를 사갔다. 손님들 몇이 다녀가자 편의점에는 커피향이 기분 좋게 퍼졌다. 지난밤의 불안감이 가시나 싶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K는 밖으로 나갔다. 소리는 편의점 옆 테라스 쪽에서 났다. 통화를 하다가 무심코 테라스 쪽으로 발길을 내디딘 손님 한 명이 낸 소리였다. 놀라서 커진 손님의 시선을 따라가던 K가 앗,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검은 고양이를 가운데 두고 고양이 수십 마리가 모여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는 걸로 봐서검은 고양이는 죽은 것 같았다. 고양이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죽은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사람들이 다가가도 자세 하나 바꾸지 않는 고양이들은 동상 같았다. K가 멈칫멈칫 하다 발길을 돌리려는데 그중 한 마리가 K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유리알처럼 반짝거리는 눈이 K를 쏘아보았다. 날카로운 얼음 조각 하나가 K를 향해 날아오는 것 같았다. K는 얼른 몸을 피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고양이 무리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편의점으로 들어오려던 손님들이 놀라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근무 시간이 끝나 편의점 주인이 올 때까지 한 시간 남짓 K는 끊이지 않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편의점 계산대 안쪽에 웅크리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멈추고 나서도 K는 문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편의점 주인은 평소보다 늦게 도착했다. 주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무니 녀석, 묻어주고 왔어. 숨이 금방 끊어지진 않았을 텐데 힘들었겠어”     

  “아... 저 고양이들이....”     

  “응. 한 식구라... 이제 다 흩어졌어.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원.”     

  “저는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들어가 봐. 수고했어.”     

  그 다음 날 K는 출근하지 못했다. 온 몸에 얼음이 박힌 것처럼 한기가 돌고 쑤시더니 자리에 눕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끙끙거리며 악몽과 싸우는 동안 베개와 침대 시트가 다 젖었다. 다시 일하러 나갈 기운이 생길 때 까지는 며칠이 걸렸고, 고양이들은 다시 K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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