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는 사람을 보여주는 것

[책리뷰] 사람을 기획하는 일 | 편은지 PD가 말하는 사람 기획

by 이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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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2위를 한 살림남 PD인 편은지 PD가 사람 기획에 대해서 책을 펴냈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


"사람을 새롭게 읽는다"는 문구가 이 책을 펼쳐보게 했다. 성공한 예능 PD가 과연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의 관점은 어떨까.



기획이 우리 삶의 모든 곳에 분명히 필요한 이유

우리가 겪는 거의 모든 일은 사람 때문이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사랑받기 위해 하는 거라고. 고통도 행복도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 미움, 분노, 질투 모두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비롯된다.


SNS가 유행하는 것도, 혼자 여행을 떠나겠다며 떠나는 것을 '혼자여행'이라는 해시태그로 SNS에 올리는 것도 당연한 인간의 본능이다. 사람과 연결되고 싶고,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다.


사람 기획이라는 말은 누군가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결을 읽고 삶의 방향성과 리듬을 함께 찾아가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사람 기획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 혹은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가 하는 일 대부분은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다. AE, PD, 기자, 마케팅 콘텐츠 제작자들까지. 필연적으로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기계적으로 분석하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의 삶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기획자는 설계자가 아니라, 가능성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조율하는 동반자다. 사람을 향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야말로 사람 기획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살아내는 사람을 보여주는 것

작가의 직업은 사람들을 보여주는 일이다. SNS처럼 세상에 사람을 전시하고 보여주는 일. 이게 어떻게 직업이 되고 콘텐츠가 될까?


그의 일이 SNS와 다른 점은 살아내는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살아내는 사람은 보여주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나약한 존재들, 그러나 그 안에서 이야기가 탄생한다.


살림남이나 나혼산을 봐보자. 살림남 출연자들에게도 절대로 집의 구조를 바꾸거나 입주청소 등 하지 말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달라고 몇 번이나 설득한다. 집을 이쁘게 꾸미고, 깔끔하게 보이는 것은 마케팅 영역이다. 제품을 보여주는 일이지만 브랜딩은 사람을 남기는 일이다.


<나 혼자 산다>가 혼자 사는 1인 가구를 조명해서 가장 사랑받는 관찰 예능 프로가 된 것에 힌트가 있다. 실제 관찰 예능에서 사랑받는 출연자들은 그렇게 정갈하지 않다. 땅바닥에서 밥을 먹거나, 냉방 시설도 없는 옥탑방에서 생활하고, 어설픈 간이 풀장이 있다. 인간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대중에겐 공감을 자아낸다. 또한 매 순간을 웃겨야 하는 예능에서 과감하게 BGM을 빼고 자취방의 실체인 정적을 채웠다.


살림남에서도 편은지 PD는 조금은 어설플지라도 사람 냄새 나는 진짜 삶을 담으려 했다고 한다. 보정 카메라가 만연한 요즘, 기본 카메라가 귀한 시대다. 꾸미지 않고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을 때, 어쩌면 더 큰 공감과 사랑을 불러낼 수 있다. 진짜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는 진솔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꾸미고 이쁘지 않아도 빛나는 것. 그것이 곧 진짜로 소명될 기획의 참 소재다.



덕후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사람을 바라보면, 풀리지 않는 일들도 풀린다. 표면적 이유보다 그 사람의 진짜 요구, 이야기를 볼 줄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의 감정적 맥락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덕질하는 사람은 일반인이 못 보는 것도 볼 수 있다. 그 보는 것에서부터 특별한 기획이 시작된다. <1박 2일>에서 이승기가 국민 남동생이 됐던 것은 한 기획자가 4시간 이상의 길고 지루한 취침 시간 속에서 빛나는 눈으로 애정을 담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 영상 속 이승기는 팀 막내로 취침 시간 동안 형들의 잠자리를 챙기기도 하고, 새벽에 형들의 신발이 서리에 젖을까 봐 텐트 안으로 넣어놓는 배려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특별한 시선들과 장면들이 모여 이승기는 전국적인 사랑을 받게 되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들여다보는 데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체력을 쏟을 준비가 된 덕후가 해낸 일이었다.


기획자는 단순히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무언가 필요해지는 순간을 가장 먼저 읽는 사람이다. <미스터트롯>도 아무도 관심 주지 않았던 중년의 덕질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성공한 프로다.



열등감이라는 보석

우리가 가진 열등감이 곧 보석이 된다. 이게 콘텐츠가 되고, 이게 설득하는 무기가 된다.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자. 우리의 열등감. 이게 곧 나의 이야기이자 나의 개성이 된다.

모든 위대한 발명은 불편함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슬픔을 갖고 있고,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열등감이나 고통, 곤궁함들을 갖고 있다. 이것들을 제거하려 하기보다 뚫어지게 바라보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자체로 인정하게 되고, 나도 모르는 새 애정이 생기기도 한다. 이것이 나의 이야기이자 무기가 되기도 한다. 오히려 못나서 더 진짜 가치를 가졌고, 더 쓸모 있는 것들이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진솔한 이야기에, 그런 용기에 자연스레 마음을 연다. 우리 모두가 그런 한계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5년 전에는 예능 프로에는 자막이 없었다고 한다. 김영희 PD가 처음으로 자막을 도입했었는데, 그 당시에는 큰 거부감이 있었고 시말서까지 써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상황 자막, 애드립 자막 등으로 세분화해 시청자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을 주었다. 오래 걸렸지만 이제는 자막이 가장 기본적인 예능의 형태가 되었다. 이처럼 버거워도 하루하루 얼기설기 어설픈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중인 우리들은 절대 실패작이 아님을 작가는 말한다. 오히려 아름답고 치열하게 오래 살아내는 중이다. 결국은 끝까지 자신을 믿고 버티고 끌고 가는 자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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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삶을 살아내는 데 중요한 이야기다. 우리가 하는 일은 결국 사람을 위한 일들이 아니던가.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 수밖에 없다. 그런 삶에 사람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다. 기획은 결국 사람을 향한 깊은 이해와 성찰을 갖고 있어야 한다. 기획은 사람을 바라보다 보니 생기는 것. 사람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사랑하다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 책을 읽고 든 생각은 결국 잘 살아가기 위한 이야기구나, 였다. 사람 기획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뿐만 아니더라도 사람과 함께 살아갈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다. 결국에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고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각자의 감독들이니까. 모든 것을 넘어서서 인간을 향해 눈을 맞추어라. 껍데기 대신에 진정한 나를 더 들여다봐라. 내 주변에 오래가는 것이 바로 나만의 강점이다. 오래 살아내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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