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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Feb 24. 2024

스스로 선택한 자유

연극 <비 Bea>


"비극이 어둠에 가려지지 않고 반드시 빛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관객평점 9.6, 95%의 높은 평균 객석 점유율과 뛰어난 호평을 받는 연극 <비 Bea>가 5년 만에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LG아트센터 U+스테이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만성 체력 저하 증상으로 8년째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비. 그녀는 스스로 옷도 입지 못하고, 볼일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며, 말도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음만은 다른 여성과 같은 28살이다.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뛰어난 공감능력의 레이는 그녀의 간병인이 된다. 비는 소통이 어려운 레이의 말을 잘 알아듣고 그녀가 자유를 위해 세웠던 계획을 돕기로 한다. 


레이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고 그들의 생활을 돕는 간병인이다. 비가 레이와 함께 이야기할 때면 그녀는 또박또박 똑바른 발음과 힘찬 동작을 취한다. 그것이 레이의 관점이었다는 걸 깨달은 것은 비는 절대 침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본 이후였다. 이 연극이 장애를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마치 레이가 뛰어난 공감력으로 그녀를 이해하듯 관객에게도 힘찬 모습의 비를 보여준다. 


그러나 공연 중간중간 비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 힘없이 침대에 늘어져 비의 몸을 씻어주는 레이, 레이의 어깨에 기대어 그가 옷을 갈아입히는 모습 등이다. 실제 비가 하는 말은 병아리가 삐약 대는 것처럼 어눌하고 알아듣기 힘들었다. 레이의 섬세하고도 뛰어난 공감능력이 그녀의 본모습을 보게 한 것이다. 


장애라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특성이라 한다면, 레이처럼 뛰어난 공감능력이 있다면 서로 소통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레이는 비를 위해 해야 하는 일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함께 해준다. 그녀가 느끼고 싶어 했던 감각을 느끼기 위해 돕기도 한다. 


그녀는 춤을 좋아하는 소녀였다. 그녀의 옷걸이엔 8년째 입지 못한 아름다운 드레스와 이쁜 구두가 있었다. 온몸에 힘이 없는 비 대신 레이는 그녀의 옷을 입고 구두를 신고 그녀의 손짓 지휘에 따라 춤을 추기 시작한다. 마치 그녀가 직접 춤을 추는 것처럼 그녀의 손짓과 같은 방향으로 같은 동작을 취했다. 비가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비는 병에 걸린 이후로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삶을 산다. 지루하고 무덤덤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지옥 같은 삶이었을 것이다.


자유를 얻고 싶은 비가 선택한 방법은 죽음이다. 역설적으로 비에게 죽음이란 우울하고 어두운 선택이 아니라, 자유로워지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결국 더 잘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이었다. 


자신과 신기하리만큼 소통이 잘 되던 레이, 그는 자신의 자유를 가져다줄 사람이었다. 레이는 비와 함께 오랜 시절을 지내며 비가 스스로 자유로워질 계획을 돕는다. 비에게는 스스로 행복해질 권리가 있었다. 엄마 캐서린은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결국 레이의 설득 끝에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고 그녀의 존엄성을 존중해 주었다.  



죽음 이후 비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8년 동안 침대 밖으로 나올 수 없던 그녀는 바라고 바라던 행동을 한다. 침대 밖으로 뛰쳐나와 마음껏 발을 구르고 팔을 휘저으며 뛰어다니고 춤을 춘다. 아니, 춤이라기보다 애절한 몸짓과 발짓이었다. 이와 같은 몸동작들이 그녀가 얼마나 춤을 추고 싶어 했는지,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싶어 했는지 진정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비는 신나는 음악과 함께 침대 위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그것을 정말 바라고 있던 사람처럼 말이다. 죽음 이후 그녀를 가두던 벽들이 사라지고 그녀는 침대 위를 벗어나 푸른 들판을 뛰어다녔다. 비의 손끝과 발끝에서 행복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죽음을 선택하고서도 자유를 쟁취한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비 Bea>라는 연극을 통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 고민해 보고 뛰어난 공감능력의 힘에 대해서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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