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아름다움의 고대 도시, <폼페이 유물전>
정적에 묻힌 죽은 자의 도시를 거닌다는 것,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폐허가 된 거리를 어슬렁 댄다는 것은
기묘하고 멋스러운 유희였다.
그 도시는 한때 수천 명의 사람들이 물건을 거래하고, 탈것에 올랐으며,
교통의 혼잡스러움과 즐거움이 뒤섞인 소음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 마크 트웨인, 폼페이 편 중
폼페이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우아한 대리석 조각들, 아름다운 꽃들과 들판이 펼쳐져있던 그곳에 베소비오 화산이 폭발했다. 화산은 불을 뿜었고 화산재는 눈처럼 쌓이며 찬란했던 도시 폼페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폼페이가 많은 고대 유적지 사이에서도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고대 로마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폼페이는 화산재 때문에 도시 전체가 2000년이라는 시간 동안 타임캡슐에 담겨 멈췄다.
더현대서울에서 열린 전시 <폼페이 유물전: 그대, 그곳에 있었다>에서는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를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이탈리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 엄선한 유물 127점이 한국에 들어왔다. 2000년 전 폼페이를 장식했던 장식품부터 조각상, 일상에서 쓰이던 유물들을 볼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 사랑의 신은 '아프로디테'이다. 하얀 바다 거품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웠으며 그녀의 탄생 이야기는 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었다. 아프로디테의 아들들은 네 가지의 사랑을 대표한다. 에로스는 신적인 사랑, 히메로스는 육체적인 사랑, 안테로스는 응답된 사랑, 포토스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상징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리움과 향수의 상징인 포토스의 석상을 볼 수 있다.
포토스의 석상을 보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후회, 갈망 등 사랑으로 인해 요동치는 마음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다리를 꼬고 어깨 한쪽은 내려간 채로 S자의 형태로 몸의 우어미를 느낄 수 있다. 옷 아래쪽 거위는 비너스를 상징하며 비너스의 아들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포토스는 원래 육체적인 욕망을 보여주었지만 신적인 사랑으로 변화하면서 욕망을 문화, 예술로 승화하게 된다. 지금도 리라를 연주하며 자신의 사랑을 음악으로 승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폼페이의 로마 조각상들은 다른 고대 신화의 석상들과는 다르게 감정을 맘껏 드러내고 관능미 넘치며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신들의 육체는 완벽하였기에 옷으로 가릴 필요도 없었으며 당당하게 자태를 드러냈다. 이렇게 표현된 폼페이의 조각상은 후대에 악마의 모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동상 이외에도 많은 유물들을 보며 폼페이 시민들이 얼마나 고급스러운 생활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히드리아라고 하는 그리스 도기는 손잡이가 세 개로 운반을 편하게 하고 물을 쉽게 따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 히드리아엔 섬세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죽음을 맞이한 듯한 여인이 작은 신전에 앉아있고 두 여성이 양쪽에 서있다. 앉아있는 여인은 생전에 사용했을 보석함을 들고 있고, 양쪽의 여인은 목걸이나 옷 같은 장신구를 들고 서있다. 장례용 히드리아에도 호화로운 그림을 그려 넣어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폼페이 사람들이었다.
폼페이엔 이러한 동상들과 아름다운 유물들로 저택을 꾸미고 호사로움을 누렸다. 폼페이 사람들에게 이런 호사로움은 부를 드러내는 과시용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였다. 폼페이 사람들의 호화로움은 신을 통해 바라본 영원히 완전한 아름다움이라는 이상을 좇고 이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이었다. 이들은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주의적인 태도를 지녔다.
사랑하는 자는 번영할 것이며,
사랑할 줄 모르는 자는 멸망할 것이며,
사랑을 금하는 자는 두 배로 멸망하리라.
- 폼페이 저택 벽면에 적힌 시 한 구절
폼페이의 호화스러움은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며 한순간에 집어삼켜졌다. 폼페이는 화산재에 뒤덮였고 겁에 질린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은 그대로 남았다. 생명은 한순간에 끝났지만 고고학적인 발견과 그들의 풍요로운 삶의 모습은 영원해졌다.
전시 마지막 순간에는 대형스크린과 쓰러져 있는 여인의 동상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폼페이 최후의 날에 있던 시민의 캐스트였다. 유독가스를 마셔 사망한 여성 위에 화산재가 쌓였고 시간이 지나 시체는 부패하여 없어져 빈 공간이 남았다. 그곳에 석고를 부어 당시의 사람들을 재현한 캐스트를 만들었다. 단단하게 굳은 화산재 때문에 여성의 실루엣이 그대로 남을 수 있었다.
폼페이 최후의 순간에 있던 사람들은 호화스러움의 상징인 동상들과 영원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들의 마지막 순간은 영원함이 되었다.
2천 년 전 고대인들을 만날 수 있는 폼페이는 다양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괴테, 마크 트웨인 등 문인들은 자신의 감정을 생생하게 여행기를 남겼다. 러시아 화가 브롤로프는 수년간 연구 후 <폼페이 최후의 날>을 완성했다. 이 그림은 영국 작가 애드워드 리턴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동명의 소설 <폼페이 최후의 날>을 집필하게 했다.
죽음의 도시 폼페이를 느낀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그곳에서 예술적 아름다움과 삶의 영감을 느끼게 했으며 삶을 충만하게 만들 힘을 불어넣었다.
"짧은 우리네 인생에 긴 욕심일랑 잘라내라. 말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질투하는 세월은 흘러간다. 내일은 믿지 마라. 오늘을 즐겨라."
폼페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100년 전,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남긴 시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 시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폼페이 최후의 순간의 생생한 모습을 보며 내게 지금 주어진 이 순간을 최후의 마지막 순간처럼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 하루를 더 충만하게 살길 바라면서, 카르페디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