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값 미술사> 책리뷰: "저 그림은 왜 비쌀까?"의 질문에 대한 미술
현대의 미술시장에서는 억대의 예술품들이 거래된다. 반 고흐의 생전에는 그의 그림이 단 한 점밖에 팔리지 않을 정도였는데, 현재 그의 작품의 값은 미술시장의 슈퍼스타이자, 천문학적인 그림값이 되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림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가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그림 자체는 미술사만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그림값이 결정되는 미술 시장은 미술사뿐만 아니라, 경제학, 역사학, 심리학, 언론학 등 많은 외부요인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이해할 수 있다.
<그림값 미술사>에서는 미술시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9가지 요인을 설명하고 그에 해당하는 작가와 작품의 사례를 함께 소개한다. 이 책으로 그림의 가치와 미술시장에서 그림값이 결정되는 특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화가의 애틋한 사연과 아름다운 그림도 음미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되었다.
9가지의 요인은 'VIP의 소장작, 희귀성, 미술사적 가치, 스타 화가의 사연 많은 작품, 컬렉터의 특별한 취향, 투자의 법칙, 구매자의 경쟁심, 뜻밖의 행운, 명작을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는 앙리 마티스, 라파엘로, 클로드 모네, 클림트, 반 고흐, 피카소, 앤디워홀, 에두바르 뭉크, 에드워드 호퍼 등 미술시장을 꽉 잡고 있는 거장들의 라인업이 준비되어 있다.
집값이 결정될 때, 때로 성공한 사업가가 살았던 곳, 연예인이 유명해져서 나갔던 곳이라는 명분으로 그 집이 다른 곳에 비해 프리미엄 값이 붙기도 한다. 성공한 사람이 살았던 곳에 살면 나의 삶도 성공할 것이라는 것은 연관관계가 없는 미신이다. 그래도 '성공의 기운이 나에게 좋은 일을 가져다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이러한 마법의 효과가 돈으로 귀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술시장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
프랑스 출신 인기 화가 '앙리 마티스'도 이 효과를 톡톡히 봤다. 마티스가 그림을 시작한 계기는 동화와도 같다.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던 마티스는 맹장수술로 입원을 하고 있었다. 심심해하는 그를 위해 어머니가 스케치북과 물감 등을 선물했고, 그림에 빠졌고 그는 결국 법률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그림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20대 중반 시작한 그림은 타고난 재능과 열정으로 화실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당시 인상파 스타 화가인 귀스타브 모로의 눈에 들 정도였다.
1905년, 색을 연구하던 마티스는 새롭게 등장한 조르주 쇠라와 폴 시냐크의 파격적 점표법을 활용해서 <호사, 정적, 일락>을 완성했다. 색으로 만든 점들이 눈이 부시게 되는 효과를 준 이 작품으로 그는 독립 화가 전에서 상을 받았다. 마침내 자신만의 스타일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후 마티스는 야수주의의 중심에 섰다. 미술평론가 루이 보셀이 야수파 그림을 보며 '야수들 가운데 서있는 것 같다'라는 평론이 시초가 됐다는 주장과 마티스가 가을 연합 전시회 '살롱 도톤느'의 '혁명'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야수의 무리'라고 감탄한 것이 시초라는 의견이 있다. 누가 먼저 주장했든 화가와 평론가 모두가 같은 것을 느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만큼 마티스는 기존에 없던 양식을 만들어 내 미술계의 혁명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초록색 줄무늬>는 마티스 부인의 별칭으로 유명한 그림인데, 색채의 조화를 완벽히 구현해 낸 작품이다. 배경의 초록, 빨간, 분홍색과 선홍빛 셔츠와 머릿칼의 보라색, 콧대의 초록색이 중심을 잡는다. 어지러워보이기도 하지만, 강한 색들끼리 부딪혀 활기찬 느낌이 든다. 당시 사람들은 마티스의 거침없는 색채에 놀랐고, 사람의 얼굴에 여러 색이 사용되는 비사실적 표현에 충격을 받는다. 마티스는 인간의 얼굴도 풍경의 일부, 사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마티스에게 세상은 색채이고, 그의 그림의 힘은 색채의 힘이었다. 이 그림으로 마티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해진다.
내가 색채들을 병렬시킬 때, 그들은 음악의 화음이나 조화와 같은 색채의 살아있는 화음이나 조화 속에 결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
- 앙리 마티스
이러한 이유로 마티스는 서양미술사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분명한 화가로 자리 잡았다. 미술시장에서 인기 있는 그림은 단연 유명화가의 대표작들이다. 그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어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고전의 인기화가가 시장에 나오면 컬렉터들의 경쟁이 심해져서 심리를 반명해 경매 감정가가 정해진다.
파란 테이블보에 마티스의 화법인 아라베스크 문양이 그려져 있고 고풍스러운 흰 화병에 노란 앵초가 꽂혀있다. 마티스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이 정물화는 2009년 2월 경매에서 예상가를 훌쩍 뛰어넘은 3,590만 유로(약 520억 원)에 판매된다.
결정적인 이유는 '이브 생로랑'과 '피에르 베르제'의 컬렉션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다. 패션 산업계의 스타이자 유명한 미술 컬렉터였던 이브 생로랑이 별세하고 이뤄진 경매에서 그들이 내놓은 작품들이 예상가를 모두 뛰어넘었다. 패션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이 수집하고 있었다는 이유가 됐다. 그리고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소장작들을 공개했을 때 그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은 것이 특별한 이력이 됐다. '생로랑과 베르제'컬렉션의 대표작처럼 된 것이다.
미술 시장에서는 미술이 아닌 분야의 유명인 컬렉터도 일종의 예술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구매자들은 그 그림에는 창작자와 소장자의 재능이 합쳐져 마법이 깃들어있다고 여기게 된다. 어쩌면 단순한 그림을 넘어선 신성한 기운을 품은 성물로까지 여겨질 수도 있다. 명작을 소유하던 재력가의 힘과, 마티스의 창조성과 독창성이 자신에게 온다는 믿음이다.
심리학에 따르면, 이런 종류의 감정 전이가 모든 수집행위의 기본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생로랑 컬렉션이나 이건희 컬렉션을 구매하면 마치 내가 그들이라도 된 기분에 휩싸이는 것이다. 영화 <베스트 오퍼>에서는 최고의 미술품을 최고가로 파는 유명 올드먼이 나온다. 그의 비밀스러운 컬렉션 공간에는 미술사를 빛낸 아름다운 여인 초상화들로 빼곡하다. 어느 날 우연히 초상화 속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녀가 올드먼을 잘 아는 사기집단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그의 컬렉션들을 모두 잃은 후였다.
올드먼이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를 모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물욕은 물건을 많이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바를 가지지 못해 생기는 불안을 일시적으로 해소하려는 진통제와도 같다. 올드먼(Old man)은 가지지 못한 젊음을 불안으로 여겼고, 젊고 잘생긴 청년이 가질 수 있는 젊고 아름다운 미인 초상화들을 모은 것이다.
이러한 미술사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요인으로도 그림값은 책정된다.
앞서 소개한 이야기는 그림값이 결정되는 첫 번째 요인이었다. <그림값 미술사>에서 나머지 여덟 가지의 그림값의 중요 요인이 무엇인지 어떤 화가의 이야기와 작품이 그 주인공이 되었을지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요인으로 책정되는 천문학적 그림값을 보고 억만장자들이 거래하는 그림이 역사적으로 중요하거나 모두가 좋아할 작품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미술사는 높고 거대한 산과 같아서 정상에 이르는 길은 어렷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그림값' 또한 서양 미술사를 알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다. 화가의 생애를 들여다보고 그림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