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작가님 소설반 글쓰기 숙제 - 12 (배움을 정리하는 시간)
예전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걸 좋아했다. 재밌어 보이면 어디든 달려갔고, 갖가지 취미를 시도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어려워지면 금세 흥미가 떨어졌다. 열정은 대게 한 달 안에 식었으므로, 8주 이상 이어지는 강의에는 개근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과제도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 뭐든 마지막엔 흐지부지되기 일쑤라 '성실하게 끝마쳤다.'는 말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정윤작가님이 소설반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도, 처음엔 엄청 신이 났다. 여태 읽은 소설책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수강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나는 이미 소설가가 되어있었다. 수업은 총 12주 차 강의로 일주일에 한 편씩 주제에 맞는 글을 쓰는 숙제가 있었다. 시작할 즈음엔 전체 기간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적극적으로 첫 과제를 끝내고 다음 수업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곧바로 고비가 찾아왔다.
그간 가장 기억에 남는 과제를 꼽으라면 단연 '2주 차 : 자세하기 묘사하기'이다. 나에겐 사진을 보고 글로 표현하는 일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1시간 동안 손을 쉬지 않고 계속 써야 한다는 거였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한 가지에만 몰입해야 한다는 사실이 괜히 부담스러웠다. 누군가에게는 식은 죽 먹기 일 수도 있으나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정윤작가님이 뒤에 서서 지켜보는 것도 아니니까 어느 정도 구색이라도 맞춰보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과제를 시작하려고 2주 차 강의를 상기시켰다. 60분을 어떻게 쪼개면 되는지 세세히 적어주신 문장이 떠올랐고, 무엇보다 '훈련'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시간에 맞춰 쓰는 훈련. 그 짧은 말에 자유를 핑계로 내 멋대로 흘려보냈던 날들이 떠올랐다. 갑자기 과거의 나를 이겨내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대충 작성하겠다는 생각을 지워내고, 핸드폰을 켜서 시작 시간부터 적었다. 자꾸만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시선을 애써 끌어당기며, 1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정확히 60분이 지나고, 마친 시간을 쓰는 것으로 과제를 마무리했다. 옆에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딱 마시는데, 얼마나 뿌듯하던지. 맥락도 전혀 없고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막 적기도 했지만, 엄연히 내 안에서 탄생한 한 편의 글이었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본거지로 복귀한 군인이 된 마냥 어디에라도 드러눕고 싶었다.
https://brunch.co.kr/@sohee290928/50
'7주 차 : 도입부 다시 쓰기'의 과제가 두 번째 고비였다. 무얼 고쳐볼까 고심하다 2024년 12월에 처음으로 쓴 수필 '무(無)의 의미'를 골랐다. 첫 문단 말고도 손댈 부분이 많은 이 글을 선택한 이유는 또다시 솟아오른 도전 정신에 있었다. 이 작품은 몇 안 되는 내 글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합평을 해준 것이다. 다니고 있는 수필반과 미야쌤의 글빵 정모에서 소개가 되어 약 40명이 넘는 분들이 지혜를 더해주었다. 2025년 7월에 했던 1차 퇴고를 끝으로, 몇 개월간 애매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이번 기회에 어설프게 마무리를 짓는 습관을 버리고 싶었고, 귀한 의견을 모아준 문우님들에게 더 나은 글로 보답하고자 했다.
굳게 먹은 마음과는 달리, 그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힘든 걸 견디지 못하는 성향이 다시 걸림돌이 되었다. 같은 글을 보고 또 봐야 한다는 일이 지루했고, 생각이 예전 글에 갇혀있어서 새로운 문장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헤밍웨이도 200번을 고친다는 말에 '나는 헤밍웨이가 아니라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라고 울부짖었다.
정윤작가님이 초고와 1차 퇴고본을 읽어봤다는 것에도 중압감이 느껴졌다. 오히려 고치기 전이 났다고 할까 걱정이 되어 포기를 고민하기도 했다. 편한 일만 쫓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매일 다퉜다. 속에서 올라오는 투덜거림을 누르고, 말 그대로 꾸역꾸역 한 글자씩 살펴봤다. 기한이 임박해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어찌어찌 완성한 최최종안을 숙제 매거진에 발행했다.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는 작가님의 말에 울컥했고, 눈물까지 나올 뻔했다.
https://brunch.co.kr/@sohee290928/68
작년 10월부터 진행된 수업이 새해를 맞이해 끝이 났다. 그간 정윤작가님의 수준 높은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었음에 매우 기뻤다. 그리고 12주 치 과제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했다는 것에 무척 뿌듯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자신이 우스울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아무튼 나는 끝까지 해냈다. 누군가 요즘은 초등학생도 이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놀려도 상관없다. 이제야, 마흔이 되어서야 나도 한 번쯤은 참으로 성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