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아빠, 광호에게 - 외전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에 곧장 일본어를 배웠다. 직장에 다니며 취미를 하나 가지고 싶어서 선택한 게 어학 공부였다고 했다. 전문적으로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지만 1년 정도 도쿄로 어학연수를 간 적도 있었다.
나와 동생은 엄마에게 기초 일본어를 배웠다. 나는 암기가 싫어 슬그머니 피해 다녔고, 동생은 진득하게 앉아 배웠다. 그렇게 엄마에 이어 동생까지 일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우리 가족은 일본으로 떠나는 일이 잦아졌다. 여행을 가면 자연스레 언어에 능숙한 엄마와 동생이 나섰고, 나와 아빠는 둘을 졸졸 따라다니기만 했다.
우리 넷이 처음으로 도쿄에 놀러 갔을 때는 내가 중학생이었다. 엄마가 유학 시절에 단골이었던 돈가스 가게를 가기로 했는데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맛집이었다. 가게 앞에는 문을 열기 전이었는데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꽤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은 느낌에 나와 아빠는 대기행렬에 가담했고, 엄마와 동생은 마실 거리를 사러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더운 날씨 속에서 지친 아빠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답답하다고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가게 점원에게 말을 걸었다.
“익스큐즈 미~.”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고 있던 점원은 아래를 향하던 눈을 옮겨 아빠를 멀뚱히 쳐다봤다. 아빠는 그와 눈을 마주치고 다시 한번 더 또박또박 말했다. “익. 스. 큐. 즈. 미.”
그러자 그 점원은 갑자기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아빠의 말에 제대로 대꾸도 안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문을 쾅 닫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이 상황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빠는 당황한 표정을 짓고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순간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일본인은 외국어에 유난히 경직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가타카나라는 외래어 전용 언어까지 만들었다고. 실력보다는 자신감 문제라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그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깊게 공감했다. 외국인과 대화하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니 아무렇지도 않게 영어를 말하는 아빠가 어찌나 멋있어 보이든지. 확실히 아빠보다 내가 더 많은 영단어를 알고 있을 텐데 나는 일본에서 말 한마디 꺼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못한다고, 부끄럽다고 엄마와 동생 뒤에 숨었다. 아빠도 같은 마음인 줄 알았건만. 아빠는 자신감이라는 비장의 무기를 숨겨두고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나, 식탁에 먹음직스러운 돈가스가 나타났음에도 내 눈에는 계속 아빠가 반짝였다. 일본어 자격증 1급을 딴 엄마보다, 초등학생임에도 일본어를 술술 내뱉는 동생보다도 아빠가 더 빛나 보였다. 그날의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하다.
작년에 여름휴가를 맞이해 오랜만에 일본에 놀러 갔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도쿄에 처음 가는 거였다. 여행할 때 쓰려고 간단한 일본어 회화를 공부해 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가 일본어를 더듬거리면 모두가 영어로 솰라솰라 해댔다. 호텔뿐만 아니라 작은 상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에서나 영어가 통하는 일본이라니. 약간 충격을 받았다.
요즘 아빠와 함께 일본에 여행을 왔더라면 정직한 발음의 “익스큐즈미” 하나로 멋있어 보이진 않았겠지. 나에게는 아빠와의 시간이 멈춰버렸는데, 일본은 쑥쑥 자라서 이제는 영어까지 잘하게 되었구나. 며칠 간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에는 별 근거 없는 섭섭함까지 느껴졌다. 다음에 일본으로 올 때는 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겠다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혼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