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빠, 광호에게 - 처음 이야기
제 작년 겨울, 수필반 막 들어간 새내기 시절이었다. 연말을 맞이해서 작은 전시회를 열기로 한 모양인지 수강생들이 작품 준비로 분주했다. 짧은 글에서 얇은 책까지. 다양한 모습의 '글'들이 화려하게 뽐낼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쑥스럼이 많은 나는 커다란 책상에 놓인 작품을 흘깃거리면서 북적거리는 강의실 한편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별 관심이 없는 체하며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데, 파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수강생분이 지난 1년 간 쓴 수필은 모아둔 책이었다. 전부 가족과 관련된 내용이고, 새해에 친척과 지인에게 선물을 할 거라는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환한 표정으로 책을 훑어보는 그분의 얼굴을 보면서, 그 글 안에 스며있는 따스함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했다. 그러다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나도 아빠 이야기를 묶어서 가족들에게 선물하면 어떨까.
그렇게 큰 뜻 없이 돌아가신 아빠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수필반과 미야쌤의 글빵수업을 수강하며 아빠와의 추억에 대한 글을 적어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문우님들께 합평을 받으며 조금씩 한 편의 형태를 갖추어 가는 글이 생겨났다. 그때는 출판에 대한 개념이나 정보도 전혀 없이, 그냥 써서 모은다는 단순한 계획뿐이었다. 어찌 보면 맨 땅의 헤딩보다도 더 무모한 도전이었다.
내 소박한 목표를 알고 있는 몇 분이 출간 전에 편집자를 구해서 교정과 교열을 받아보라는 조언을 했다. 곧바로 집 근처에 있는 전문가를 구해서 의뢰를 요청했다. 독립 출판사의 대표로 겸임하고 있는 편집자님은 첫 만남에서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왜 이 책을 내고 싶은지, 어떤 책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등. '콘셉트 미팅'이라는 명목하에 진행된 회의였는데,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나는 우물쭈물 거리며 그제야 그 답을 떠올려보았다.
17년 전 돌아가신 아빠를 기억할 방법이 별로 없어 무언가를 남겨두고 싶고, 가족들이 편하게 울고 웃으며 볼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고. 내 친척과 지인을 위한 다정한 한 권이었으면 한다고. 어렴풋이 흘러가는 단어들을 모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순간적인 답변이었지만 어딘가에 오랫동안 담아둔 마음이었다. 편집자님은 두서없는 내 말을 메모하며 들으시고는 원고가 어느 정도 완성되면 2차 회의를 하자고 했다.
이후로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소재 꺼내고, 써둔 글을 퇴고하며 한 두 달을 보냈다. 그 사이 18편을 작성했고, 편집자님을 또 만났다. 이번에 그분은 의외의 제안을 했다. 글이 너무 좋아서 가족용으로는 아까우니 정식 출간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내가 누가 돈을 주고 우리의 개인사를 보냐고 반문하자, 편집자님은 그런 게 바로 에세이라고 힘을 실어 줬다. 원래는 주변에 나눠줄 용도로 소량만 인쇄하려고 했는데, 급작스럽게 일이 커져버렸다. 얼떨떨하게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나 빼고 모두가 기뻐했다. 그 당시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잘 설명이 안된다. 처음 겪는 상황이라 그냥 '물음표 감정'이라고 혼자 정의해 뒀다.
이게 어떤 형태의 출판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아빠에 대한 기록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나름 고심해서 지었던 '함께했던 시간의 조각들'이 아닌, 아주 오래전 아무렇게나 끄적였던 '나의 아빠, 광호에게'라는 제목이 선택되었다. 판매를 위한 책으로 다듬어야 하니 편집자님과 몇 번의 회의를 더 거쳤다. 너무 부끄러워서 어디에 말하지도 못하고, 혼자 한 달간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 결과 25편의 꼭지가 만들어졌고, 지난주 탈고를 마쳤다.
나와 오래 관계를 이어온 온, 오프라인 문우님들은 내가 언젠가 아빠에 대한 한 권을 쓰겠노라 다짐한 걸 알고 있을 테다. 그날이 곧 오게 될 것 같다는 소소한 뉴스를 전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내가 쓴 인생 첫 책을 마주할 순간을 상상해 본다. 밝은 미소를 짓게 될지, 벅찬 감동이 밀려올지 아니면 그날까지도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부족한 내 글을 봐주셨던 모든 분들 덕에 이렇게 출간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정말 어쩌다 보니, 정식 출간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용기를 북돋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적어주신 댓글과 관심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작가님들과 함께 앞으로도 오래오래 읽고 쓰는 사람이 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