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요즘이다. 예전에는 간단하게 3월, 4월, 5월은 봄이라고 여겼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언제까지가 겨울이고 언제부터가 봄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추위에 약한 편이라 아침에는 얇은 패딩을 꺼내 입고, 아직도 털이 달린 신발을 신는다. 그런데 낮에는 겉 옷을 벗어던질 만큼 따뜻해진다. 어떤 사람은 반팔을 입고 다니기도 하니, 하루가 온 계절을 모조리 품고 있는 듯하다.
지난 주말에는 청소를 하기 위해 옷방 문을 열었다. 변덕을 부리는 기온 탓에 남편의 반팔부터 내 니트까지 종류별로 굴러다녔다. 계절이 정리되지 않으니 옷도 제각각으로 흩어져 있었다. 어디에 먼저 손을 대야 할지 몰라 한숨이 먼저 나왔다. 우선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주섬주섬 주웠다. 반소매티를 반듯하게 개서 선반에 두고, 긴팔 스웨트셔츠를 반으로 접어 그 옆에 놔뒀다. 바닥에 앉아 양손만 바삐 움직이다 보니 생각이 자꾸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그러다 지난 가족모임이 떠올랐다.
명절을 맞이해 친척들이 전부 모였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두고 술 한잔을 하고 있는데, 작은 삼촌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남편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 장면을 본 나는 둘이서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남편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있다가 남자들끼리 나가기로 했다고 멋쩍게 대답했다. 90세 할머니와 뛰거나 기어 다니는 조카들까지, 4대가 한 자리에 모여서 종일 정신이 없긴 했다. 모두가 속으로는 느긋한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몰래 도망칠 궁리를 하다니. 욱하는 감정이 올라와 나도 데리고 가라며 떼를 썼다.
"여자들이 애들을 보고, 남자끼리만 나가자." 애처럼 졸라대는 나를 떼어내며 삼촌은 농담을 던졌다. 결국 아이들을 번갈아 돌보고, 두 무리로 나뉘어 놀기로 했다. 여자들끼리 노래방에 다녀왔고, 이후 남자들끼리 맥주집에 갔다. 일정을 마치고 침대에 누웠을 때, 같은 식탁에 앉아 있었는데도 자연스럽게 둘로 무리가 나뉘던 게 생각났다. 명절이란 자고로 복작복작한 게 아닌가. 꼭 끼리끼리 뭉쳐야만 했을까. 효율적으로 놀았다고 여겼는데, 마음 한쪽이 괜히 불편했다. 가족들끼리 함께한 자리에서도 은근하게 편이 갈린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생각의 가지가 계속 뻗어나가 엉뚱한 곳에 닿기도 했다. 딱딱 구분 짓기를 좋아하는 요즘 분위기가 서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그날이 떠오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해가 지날수록 모호해지는 계절감이 유난히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한 쓴소리처럼 다가왔다. 자연은 스스로 경계를 흐리고 있는데, 우리는 계속 너와 나를 가르고 있었다. 어두운 방에서 옷을 정리하는 동안, 혹시 나도 누군가를 내 편이 아니라며 선 밖으로 밀어낸 건 아니었는지 돌아보기도 했다.
옷더미를 매만지는 손이 점점 느려졌다. 깔끔해진 옷방이 조금은 낯설게 보였다. 박스 안에 들어간 털옷과 선반에 켜켜이 쌓인 반팔로 분리된 모습이 생경했다. 뒤섞여 있던 전의 상태가 오히려 자연스러웠달까. 손에 들고 있던 옷을 대충 아무 데나 얹어 놓았다. 애써 정리한 걸 다시 흐트러뜨릴 필요는 없겠지. 그저 방이 덜 혼란스러워진 것에 만족하고 옷방을 나왔다.
방 문을 닫는데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자연의 경계니, 사람의 편 가르기니 한참을 생각했지만 어쩌면 어설픈 깨달음으로 청소를 끝내려는 속셈이었을지도. 아무래도 산더미처럼 쌓인 옷을 정리하는 일이 예상보다 훨씬 지루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