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결혼 한지 11년 차이다. 아이도 하나 있으니 영락없는 아줌마인데, 나에게 붙는 이 단어가 좀처럼 익숙해 지질 않는다. '유부녀' 또는 '기혼자' 그리고 '어머님'까지는 수긍이 되면서도 유독 '아줌마'라는 말에는 발끈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머릿속에 그렸던 아줌마의 모습은 언제나 비슷했다. 머리칼은 뽀글거리고, 화장기가 거의 없는 얼굴에, 몸에 맞지 않은 헐렁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었다. 시장에 가면 무조건 값을 깎고, 대중교통에서 빈자리가 나면 가방부터 던지는 장면도 그려졌다. 머릿속에 가장 깊게 박힌 건, 쭈그려 앉아서 걸레질을 하거나 남은 음식을 먹는 거였다.
아줌마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내가 상상하는 아줌마만은 되고 싶지 않았다. 특히 갓난아이를 돌보는 중이라도 최대한 우아하게 살고 싶었다. '자식이 남긴 건 결국엔 엄마의 입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그리 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아이가 바나나를 한 입만 먹고 말던, 누룽지를 한 숟갈 남기던 전부 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었다. 자연스레 아깝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눈을 꼭 감고 '나는 궁상맞은 아줌마가 아니야.'라고 속으로 외쳤다. 허리를 굽히고 집안일을 하기 싫어서 꼿꼿하게 서서 바닥을 닦을 수 있는 기다란 막대기 걸레도 구매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이대로 하면 빼박 아줌마'라는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다. 문체를 보아하니 요즘 젊은이를 일컫는 소위 MZ가 작성한 듯했다. 나도 나름대로 MZ 끝자락에 속하는 나이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마우스를 내렸다. 나에게 해당하는 건 단 하나도 없을 거라 자부했다.
- 밤 11시 넘으면 졸림.
- 영양제 3종 이상 복용 중.
- 카페 가서 물티슈 챙기고 자리 닦음.
- 건강 이야기 자주 함.
- 메뉴 고를 때 속 편한 게 기준임.
- 날씨에 민감함, '오늘 바람이 차다.' 입버릇
- 남의 집 가면 설거지 각 잡음.
- '이거 싸줄게.' 자동 발사
정확한 전체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대충 저런 문장들이 이어졌다. 하나씩 읽을수록 마우스를 잡은 손이 점점 느려졌다. 누가 내 하루를 관찰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전부 다 나였다. 마지막 말이 화면에서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 아줌마 되기 싫어서 안달함.
내가 되고 싶지 않아 발버둥을 쳤던 아줌마의 모습은 하나도 적혀있지 않았다. 그 마저도 너무 오래된 생각이었나 보다. 말 그대로 나는 '빼박 아줌마'였다. 괜히 속상한 마음에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이제라도 스스로를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나를 놀려댔다. 애써 꾹꾹 눌러도 내 안에서는 아줌마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아줌마는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에 소소한 위로를 받고, 그날 이후로는 구차하게 허리를 세우거나 음식을 남기는 일은 하지 않았다.
지난주에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카페에 갔다. 아이스커피 두 잔을 시키고, 딸기 조각 케이크를 하나 샀다. 방금 점심을 먹고 왔기에, 포크질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두 시간 수다를 떨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반쯤 남은 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새 하얀 크림 안에는 반으로 썰린 딸기가 세 개나 남아 있었다. 예전 같으면 못 본체 하며 그대로 놔두고 밖으로 나갔겠지만, 새빨간 딸기가 발을 붙잡았다. 나는 재빨리 포크를 들어 딸기만 쏙쏙 골라먹었다. 케이크 빵까지 다 먹기에는 배가 너무 불렀다.
손을 급하게 움직이는 나를 보고 친구가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다가오길래, 남은 딸기 하나를 입에 넣어주며 말했다. "요즘 딸기가 얼만 줄 알아?" 친구는 입에 미소를 머금고 겨우겨우 딸기를 씹었다. 나는 조금 민망해져서 "맛있지?"라는 말을 내뱉었다. 조금은 깨끗해진 접시를 뒤로하고, 친구와 팔짱을 낀 채로 가게를 나왔다. 우아한 발걸음을 사뿐하게 내딛으면서.
어제는 동네 친구가 토마토가 제철이라고 하면서 커다란 봉지를 들고 집으로 왔다. 나는 뭐 줄게 없는지 두리번거리며 냉장고에 있던 키위를 나눠 주었다. 현관에서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서는 데, '내가 이제 진짜 아줌마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에 웃음이 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