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역군'으로 불리던 서민이 이룩한 눈부신 발전인데...
마음이 소금밭이다. 우크라이나 수도로 향한 러시아의 총부리는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금방이라도 온 세계가 전쟁에 휘말릴 것 같은 불안함이 검은 곰팡이처럼 마음속에 피어난다.
뿐만 아니라 5년 동안 한국의 운명을 짊어질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국의 선거판은 혼돈의 무덤 속에 갇힌 듯 답답하기만 하다. 70년대 산업화라는 우산 밑에서 인권이 짓밟혀도 그러려니 받아들였던 문맹에 가까운 무지가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개발붐을 타고 지어진 고층 아파트가 빈부의 격차를 넓힐 때 서민은 점점 더 빈곤 속으로 빠져들었던 그 시절, 먹고 사는 것 이외에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없었던 몹시도 궁핍한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반공을 부르짖으며 산업화에 박차를 가했다. 초가지붕을 걷어내던 농촌운동은 새벽종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고 돈을 벌기위해 도시로 몰려드는 젊은이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안간힘은 탈농촌화를 만들고 ‘영자의 전성시대’는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시대적 비극이었다.
버스 안내원을 하다 버스에서 떨어져 팔을 잃게 된 영자는 산업재해를 몸으로 떠안아야 했다. 장애가 된 영자가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하던 창수의 가난이 오히려 순수해 보이는 착시현상까지 일으켰다. 영자와 창수가 살았던 그 시절, 부의 불균형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였다고 지적할 만한 그 누구도 없었다. 오직 그 소설을 발표했던 조선작만이 밑바닥에서 살아가던 이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었다.
‘별들의 고향’의 경아도 마찬가지였다. 원치 않는 관계로 임신을 하게 된 그녀는 결국 눈밭에서 약을 먹고 목숨을 끊는 결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이만 낳았더라면 그녀의 인생은 물질의 풍요를 만끽하는 안방 마나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불법 낙태 수술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그녀가 정착할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별들의 고향’ 의 인기 때문에 호스티스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줄을 이어 상영됐다. 성매매를 하는 그녀들의 딱한 속사정이 사람들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감동이 아니라 절망이었다. 가난에서 빠져나오려는 몸부림은 늪처럼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과거에 무슨 직업을 지녔든 어두운 과거를 딛고 성장했다면 박수를 받을 일이지만 보복의 칼날을 준비하는 사람에게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서민을 위한 사회 구조를 바꿀 의지는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편법과 꼼수로 재물을 쌓아올린 사람이 하루아침에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시절, 신문에 연재되었던 소설을 읽는 재미라도 있었다. 지금은 감동의 틈마저도 없다. 비판의 감각을 잃어버린 시절에 문학도 제 역할을 잃었으니 산업의 역군이라고 불리면서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일터로 내몰렸던 서민들의 희망을 누가 지켜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