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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희 Oct 06. 2022

제2차 세계대전의 비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기념관을 방문하다

시간은 흐르기도 하고 멈추기도 한다. 시미벨리에 있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기념관을 방문했던 건 시간에 대한 흔적을 더듬기 위해서다. 

10월9일까지 ‘제2차 세계대전의 비밀’이 전시되어 있는 그곳은 포성 없는 전쟁터였다. 실제 크기의 커다란 탱크에서부터 통신장비와 암호를 찍어내던 타자기들, 작은 파편조각까지 오밀조밀하게 전시된 대통령 기념관 안에는 꽤 많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주로 백인들이었고 나처럼 아시아계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런 장소에 섬광을 뿜어내듯 한 전시판이 눈에 확 뜨였다. 어! 저 사진은?

 군복입고 찍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3남매 사진과 설명이 적힌 판이었다. 한 손으로 권총을 쥐고 사격하는 수산 여사의 사진과 필립 안의 모습 등 4점의 사진과 훈장이 걸려있었다. 백인들이 이민자로서 조국의 독립운동을 했던 도산 안창호의 가족에 대한 설명하는 글을 읽고 있었다. 한 가족의 자녀들이 각각 해군과 육군에 입대해서 복무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게다가 한국계 안수산 여사가 미 해군 최초로 여성 포격술 장교가 되었다는 건 당시 상황으로서는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이 끝나고 국가안보국 (The National Security Agency)에서도 암호분석가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안 여사의 기록을 미국 대통령 기념관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전시판에 소개된 도산 안창호 선생의 3남매

 암호는 보안을 필요로 하는 내용을 포함하기에 중요한 통신수단이다. ‘나바호 코드’는 그런 의미에서 대단한 전술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윈드 토커 ‘Wind Talker’가 떠올랐다. 원주민 암호병과 특수부대원의 암호를 사수하기 위한 갈등을 그린 영화였다. 그때는 그 암호가 뜻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일본인들의 암호해독력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미국인들이 원주민의 언어로 절대 해독할 수 없는 코드를 만들어 내었다는 실제 참전군인의 증언과 기록은 매우 흥미로웠다.


 원주민 말로 besh-lo(iron fish)는 ‘잠수함’을 뜻했으며 dah-he-tih-hi(hummingbird)는 ‘전투기’로 통했다. Po′sa taibo(Crazy White man)은 ‘히틀러’를 의미했다고 한다. 만약 원주민 암호병이 적에게 포로가 되면 그 암호를 파기하고 새로 암호를 만들었다 하니 암호는 전쟁의 승패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밖에 음료수 환타가 탄생하게 된 비화, 브래지어제작 회사가 만든 통신병 역할을 하던 비둘기 의복, 적을 속이기 위한 위장술 등 갖가지 비화가 소개되었다. 전쟁 중에 원재료가 귀해지자 물자공급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기록에 한국전쟁이 떠올랐다. 그 전쟁 중에 미군들을 통해 얻은 밀가루로 피란민들의 주린 배를 채울 수가 있었는데 그건 미군부대에서 나온 햄 따위의 부식들로 부대찌개를 만들어 먹었던 이야기와 더불어 한국인들의 가슴 아픈 전쟁비밀이다.

대통령 전용기 안에 붙은 표지

 대통령이 일하던 집무실을 지나 낸시 여사에게 보냈던 편지를 둘러보고 전용기 공군1호기(Air Force One)에 올랐다. 그가 평범한 시절을 거쳐 미국의 대통령이 되기까지 어느 부분은 부족했고 어느 시간은 충분했으리라.


 전시판에 적힌 “안전한 삶만 추구한다면 자신이 얼마나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지 결코 알 수 없다”는 안 수산 여자의 고백처럼 나도 고난을 기회로 여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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