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어쩌면 죽음의 다른 표현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원치 않은 일을 버릴 수 있다는 건 성공만큼이나 대단한 일이었다. 더 이상 사내의 몸을 주무르지 않아도 되었다. 그동안 세상은 나와 전혀 상관없이 돌아갔었다. 그런데 나와 무관했던 세계가 내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었다. 누군가는 평생을 매달려도 오지 않을 명성이 부고장을 내밀듯 불현듯 찾아온 것이다.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기도 해서 희망은 어쩌면 죽음의 다른 표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감당할 수가 없었기에 퓰리처상을 죽음과 대등하다고 여겨졌다. 만약에 그 운명이, 수상이 의도된 일이거나 계획된 일이었다면……, 아니, 결단코 그건 아니다. 단언컨대 챙이 당한 폭행은 예상치 못했던 사고였고 한쪽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든 챙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었던 나는 무지막지하게도 생각이 없거나 정신이 나갔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대신 나는 사람을 찾아 다녔다. 그 길만이 챙에게 빚을 갚는 일이라고 여겼다. 나는 독이 오른 싸움닭처럼 푸드덕거리며 남들이 보지 않거나 외면해버린 세상 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카트에 펫트병을 잔뜩 싣고 가는 백인할머니에게서 자존심의 몰락을 보았고,
노숙자들이 터널 밑 깔아놓은 매트리스를 치우는 미국경찰의 모습에서 무자비와 사랑이 공존하는 세상의 모순을 읽었다.
나는 예술적 기교가 아니라 증거를 남기기 위해 카메라 렌즈를 들이댔다.그런데 내가 찍은 사진에 세상이 반응했다. 예술이 뭔지는 모르는 내게 예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고 나에 대한 대접이 달라졌다. 잡지사에서는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며 감탄했다. ‘고통’이라며 머리를 흔들면서도 그들은 내 사진들에 돈을 지불했다. 어쩌면 인물이나 풍경 따위를 찍고 다녔다면 작업은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게서 ‘고통’을 보길 원했다.
사진 찍는 동안 지린내 나는 후미진 거리를 다니는 게 역겨울 뿐 사진을 찍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순간적으로 낚아채는 샷이 연출로 얻어지는 거라면 나는 사진을 찍지는 못했을 것이다. 역한 냄새에 코를 막고 잠시 호흡을 멈출 수만 있다면 고통을 찾는 일은 아주 쉬웠다. 내가 보고 있는 시선에서 약간의 각도만 틀어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도시에 깔려있는 고통을.
사람들이 외면한 그곳에서도 삶은 존재했었다. 어떤 삶은 아침을 맞이했고 어떤 삶은 더 이상 밤을 보지 못했다. 죽음을 잊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천천히 죽음의 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쌍하다라는 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도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중이었을 테니. 그들에게 갖는 연민도 일종의 편견이라는 걸.
파티가 많아졌다. 뜻하지 않은 유명세는 사람들을 꼬이게 했다. 아니 그들이 나를 그들의 자리에 초대를 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내 주위를 둘러쌌다. 화가, 잡지 편집장, 그리고 대학교수들.
“어떻게 그런 사진을 찍게 됐나요?”
그들은 던져진 사냥감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듯 나를 떠보고 얼렀다. 나는 그들의 집요한 관심에 조심스러웠다. 왜냐하면 내가 과거에 어떤 직업을 가졌었는지 알게 된다면 일제히 등을 돌릴 것이기에. 그들에게 나의 과거는 나노 테크놀러지 발견보다도 더 충격적인 일이 될 테니. X축에서 A가 절대로 나올 수가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나 간혹 Y축에 붙었더라도 새로운 B가 될 확률이 있다고 관대하게 평가하는 사람들까지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언제라도 나를 바닥에 끌어내릴 수 있는 사람들은 나를 추켜세우고 환호했다. 자신들이 자선한 열광을 되찾아가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내 과거를 캐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내 이름이 조앤 플린(Joan Flynn)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양미래, 가끔 내 이름을 읊조려 본다. 왁자지껄 떠들던 사람들이 일순간에 빠져나가고 나면 허탈감에 견딜 수 없어서다. 가면을 쓰고 있는 내가 내 이름을 나직이 불러본다. 이름을 바꾼다 해도 나는 양준만과 길은녀 사이에서 태어난 딸임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나도 X축과 Y축이 만나는 꼭짓점에서 출발했음은 부인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어느 방향으로 튀었든 출발을 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지나온 삶은 과거라는 불미스런 발자국을 남겼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게임이지 않은가.딱 한 번 내가 한국인이라는 신문기사가 실리긴 했었다. 퓰리처상 수상에 한국계 미국인이 타게 됐다는 헤드라인 때문에 내 존재가 한국까지 알려졌는지는 몰라도 세상에 알려야 하는 건 흑인에게 얻어맞아 일그러진 챙의 얼굴뿐이었다. 그거 이외에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건 원치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미국 국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시민권을 신청할 때도 망설임이 없었다. 주저하지 않고 한국국적을 포기했다. 존재감 없던 내가 한국국적을 포기하는 일이 무슨 대수인가. 필요에 의해서 취득한 국적이지만 나에게는 미국시민과 한국인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조앤 플린으로 살아가든 양미래로 살아가든. 나는 숨을 쉬고 있었고 여태 살아있다. 무엇을 하며 살았냐가 중요하겠지만 빵을 먹고 살든 밥을 먹고 살든 생명이 붙어있다는 건 위대하다. 나는 살아야만 했다. 정말로 살고 싶었다.
한 번 유명세를 타게 되니 그 위세는 멈출 줄을 모르고 계속 앞으로 전진 했다. 영사관에서 온 전화를 받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명성에 딸려온 옵션이라고나 할까.‘어떤 표정’라는 제목의 사진은 팔을 뻗어 단숨에 밑바닥에 있던 인생을 지상으로 끌어내었다. 내가 성공을 이룰 수 된 배경에는 타인의 희생이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의 희생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인가? 라고는 자문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어떻게 깨달을 수가 있겠는가? 찬우를 다시 만나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장편소설 독박골 산1번지 제4화 돈을 줍는 비둘기 1편이 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