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가 없는 쥐들은 날지 못하는 새들의 발가락을 갉아먹었다.
쿽이 작업을 하는 스튜디오는 3층짜리 목조건물 꼭대기에 있다. 담장이넝쿨에 둘러싸인 건물은 창문만 빼꼼하게 뚫려있다. 계단을 밟으면 오른발, 왼발. 나무 널빤지들이 서로 다른 음폭으로 번갈아가며 삐거덕거렸다. 오른 쪽 복도 끝에 그의 스튜디오가 있다. 그가 스튜디오 안에 있을 때는 문을 잠그질 않는다. 그림을 그릴 때는 누가 들어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을 집중하기 때문에 그는 문을 잠글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 그의 습성을 아는 사람들은 알아서 들어오고 알아서 나갔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예전처럼 책 제목을 훑고 붓통에 꽂아있는 붓들의 개수를 셌으며 창밖 너머로 바닥에 푸드득 내려앉는 비둘기들의 둔한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부스스하게 빗지 않은 머리카락도 사뭇 진지하다. 용 문신을 새긴 팔뚝을 바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림을 그릴 때 그는 안경을 위로 치켜 올리기도 하고 양 눈썹을 미간으로 모았다. 그건 그가 집중을 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라는 표시이기도 하다. 그의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은 아마도 그의 버릇 때문에 생긴 것이리라.
예전에 내가 누드모델로 그의 앞에 섰을 때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바닥에 놓인 집기들을 세었다. 금색 문양이 도금된 청색 세라믹 화병 속에 꽂힌 붓의 개수를 천천히 세고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제목을 읽고 또 읽었다. 내용은 몰라도 책 제목만큼은 박사수준이다. 첩첩이 쌓인 책들의 제목을 보며 나는 그 내용을 머릿속으로 짐작하며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가 궁금하기도 했고 서브 헐리우드라는 소설책은 읽고 싶기도 했다. 코스모스라면 가을이면 한국에 피는 꽃 이름 아닌가? 하지만 나중에 그 책이 꽃이 아니라 우주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알고는 호기심도 거뒀다. 내용이 궁금한 책은 그에게 무슨 내용인가 묻기도 했는데 아주 드물지만 신기하게도 어떤 책은 내가 상상했던 내용과 흡사했다.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옛 생각에 잠시 잠겨 있다가 조용히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예전에는 알몸으로 유리창 앞에 서있었는데. 태초의 인간의 모습을 아는지 비둘기 녀석들은 벌거벗은 내게 달려올 것처럼 유리창에 자기 몸을 들이받았다. 그러다 어떤 녀석은 균형을 잃고 푸드덕 땅 아래로 내려앉았기도 했다. 가끔 발톱이 한 개뿐인 놈들이 창턱으로 슬쩍 날아들기도 했다. 도시에 사는 비둘기들은 높이 날 줄을 모른다. 비둘기들은 떨어진 빵조각을 찾기 위해 바닥으로 내려앉았고 점점 뚱뚱해져갔다. 새들은 뚱뚱해지면 날지 못한다. 날개가 없는 쥐들은 날지 못하는 새들의 발가락을 갉아먹었다. 쥐들이 발가락을 갉아먹어도 새들은 고작 몇 발자국 옆으로 옮길 뿐이었다. 굶주림은 말초신경조차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다. 살아남기 위해선 육신의 어느 부분인가 절단되고 끊어져야했다. 그의 모델이 되는 동안은 벌거벗은 채로 움직여야 했다. 정지된 채 있다가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지면 나체로 커피를 마시고 잡지를 뒤적였다. 가끔 그림을 그리다가 은빛 털이 부숭부숭한 그의 손바닥이 내 몸을 훑기도 했다. 거부할 어떤 것도 걸치지 않은 내 알몸은 손에 목탄가루를 묻힌 그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쿽 반 (Kirk Vaughn), 그는 내게 처음으로 사진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남자다. 지금은 롱비치 아트 스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화가이고 크로키 작가로 정평이 나있는 중년의 작가다. 나를 처음 만날 때 그는 가난한 대학원생이었다. 그에게는 내 거죽이 필요했고 나는 돈이 필요했다. 그에겐 돈이 없는 날이 더 많았다. 돈이 없을 때는 물건으로 화대를 지불하기도 했고 돈이 생기면 맡긴 물건을 도루 찾아가기도 했다. 한 번은 그가 내게 돈이 없다며 디지털 카메라를 맡겼다.
나는 호기심으로 그가 맡겨놓고 간 카메라에 눈을 가까이 들이댔다. 작은 구멍을 통해 들여다 본 세상은 은밀했다. 마치 여자의 성기를 들여다보듯 쾌미하고 자극적이었다. 희한하게도 보고 싶은 대상이 렌즈 안에 가득 찰 때는 포만감과 배고픔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 충동은 아주 강렬해서 살고 싶다는 의욕까지 불러일으켰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 그가 맡겼던 카메라로 업소에 있는 여자들을 마구 찍어댔다. 그녀들은 알몸에 더 이상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 영혼이 빠져나간 육체에 부끄러움이라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반발도 저항도 없는 그녀들의 도발적인 일상은 카메라 메모리칩에 하나 둘 쌓여갔다. 흑인에게 얻어맞는 챙의 얼굴도 그즈음에 찍었던 사진이었다. 그 사진으로 나는 퓰리처상을 타게 되었으니 챙과 쿽은 내게 스승이자 은인이었다. 그는 내게 몇 광년 전에 존재했던 우주의 한 별이었다.
그는 사진뿐 아니라 나에게 새로운 언어도 가르쳐주었다. 그의 언어, 그의 손에 들린 연필이 스스슥 지나간 종이 위에는 무언가 나타났다. 간결하고 자유로운 손놀림에 나는 반했다. 속박되지 않는 언어가 머무는 곳, 거기에 꽃이 피어나듯 창조가 이루어졌다. 그는 종이 위에 집약적이고 밀도가 단단한 이미지가 아니라 허술하면서도 아주 세련된 흔적을 남겼다. 나는 그림을 통해 죽어버린 내 영혼을 가까스로 되살려낼 수가 있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구태여 A가 되어야한다는 억압도 받지 않았고 설사 B가 된다 해도 움츠러들 필요가 없는 용기가 생겼다.
-장편소설 독박골 산1번지 제4화 돈을 줍는 비둘기 2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