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라면 한 그릇

어린 시절에 보았던 별빛, 독박골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by 권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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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요번에 곧 다가올 성탄절에 연극을 하려고 하는데.”

“연극이요?”

“그래, 연극. 날씨도 춥고……,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오는데 이 천막에서 예배를 보는 것이 힘들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동네 사람들을 이 천막교회 안으로 초청할 거야. 연극공연으로 헌금이 많이 걷히면 교회를 공터가 아닌 곳으로 옮길 수도 있거든.”


목사님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 일이 생겼다는 건 책임감이 따르긴 하지만 오히려 반가운 일이긴 했다.동기가 부여되면 관심과 열의가 저절로 생겨나기 마련이다. 나는 마리아 역을 맡았고 찬우는 요셉 역을 맡았다. 여관 주인 역에는 병찬이가 맡았다. 천사역할은 희옥이가 하기로 했다. 우리는 매일 저녁 천막에 모여서 연습했다.


“빈 방 있습니까?”

“이미 손님들로 꽉 찼습니다.”

“지금 제 아내가 아이를 곧 낳을 것 같으니, 그러지 말고 묵을 방을 좀 주시오.”

“글쎄요. 저기 말구유를 비워서 쓰면 모를까…….”

“그러면 그곳이라도 쓰게 해주세요.”

“그럼, 냄새는 나지만 그곳을 사용하도록 하세요.”

“아……, 여보! 지금 아기가 나오려나 봐요.”

“정말이요? 주인장, 빨리 좀 서둘러 마구간을 치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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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소꿉놀이처럼 재밌었다. 잡초로 반찬을 만들고 황토로 밥을 담은 가짜 밥상을 차리듯 나는 아이를 낳는 장면도 실감나게 했다.나를 지켜보던 목사님이 나에게 칭찬을 하셨다.


“미래는 나중에 연극배우 해도 되겠어.”


목사님의 칭찬 때문에 더욱 신이 났다. 하지만 성극은 연습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포스터를 만들기로 했다. 영화포스터처럼 근사한 포스터를 말이다. 그러려면 사진이 필요했다. 그러나 사진을 모으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마리아와 요셉의 사진을 구할 수가 없었다. 찬우와 나는 머리를 맞대고 사진이 있을 만한 곳을 생각해내야 했다.


“어디에서 사진을 구하지?”

“사진관에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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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와 나는 제일 문방구 옆에 있는 행복 사진관으로 갔다. 문방구에서 공책 따위를 살 때 나는 사진관 앞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을 힐끔 보았다. 나는 그 가족을 잘 안다. 매일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교문으로 들어갈 때도 교문을 나설 때도. 나는 그 가족을 바라보았고 그들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양복과 한복을 차려입고 사진을 찍은 그들은 넉넉하고 행복해보여서 부러웠다. 가족사진 찍으려면 돈이 많이 드나? 사진관 문을 열었다. 사진관 안에는 더 많은 가족들이 벽에 걸려 웃고 있었다.


“아저씨, 우리가 성모 마리아 사진을 구하는 중인데요.”

“성모 마리아?”

“네!”

“여기는 사진을 파는 곳이 아니야. 사진을 찍어주는 곳이지.”

“그렇구나.”

“달력을 인쇄하는 인쇄소를 가보렴. 간혹 성모상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기도 하거든.”


그렇지. 달력! 우리는 톱밥이 날리는 목공소 옆에 있는 인쇄소를 찾아갔다. 인쇄기계가 갈고리처럼 덜컥덜컥 종이를 한 장씩 넘기고 있는 일층을 지나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깨진 유리창을 뒤로 하고 한 아저씨가 토씨를 낀 채 전기스토브에 불을 쬐고 있었다.


“아저씨, 마리아와 요셉의 사진 구할 수 있어요?”

“마리아와 요셉? 이 녀석들아! 마리아를 찾으려면 성당엘 가야지 왜 인쇄소에서 찾아?”


그렇구나. 성당.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지? 성당에 가면 마리아 사진을 구할 수 있을지 몰라.


“근데, 성당이 어디 있어?”

“저기 보이는 저 높은 탑이 있는 곳 아냐?”


버스 종점 부근에 높다란 탑이 있는 건물을 떠올렸지만 그곳이 성당인지 교회인지 확실치는 않았다. 일단은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신호등을 두 개 지나 버스 종점 맞은편에 스테인 글라스 유리창으로 장식된 건물로 갔다. 그곳은 성당이 맞았다. 지나칠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성당 건물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너무 웅장해서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우리는 성당 앞에 세워진 마리아 동상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비둘기 한 마리가 포르륵 날아와 성모상 머리 위에 앉았다가 다시 하늘 저편을 날아갔다. 나와 찬우는 마리아 상 발가락 앞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주눅이 들어 성당을 찾아 온 목적을 잊어버렸다.

“야, 이 성당 무지 크다.”

“그런데 교회와 성당은 뭐가 달라?”

“성당은 신부님이 있는 곳이고 교회는 목사님이 사는 곳이지.”

“그렇구나. 신부님이 믿는 하나님은 신부하나님이고 목사님이 믿는 하나님은 목사하나님이네?”

“그렇게 되나?”

“같은 하나님이면 왜 신부님 사는 곳과 목사님 사는 곳이 달라?”

“그러게…….”

“찬우야, 넌 왜 교회 다녀?”

“천당 가게 해달라고.”

“우린 죽으려면 아직 한참 남았잖아.”

“알아, 근데 할머니가 돌아가실 날이 얼마 안 남아서 내가 대신 기도해주는 거야.”

“할머니 때문에?”

“응, 할머니는 무릎이 안 좋아서 잘 걷지를 못하셔. 그래도 이번 연극을 할 때는 내가 모시고 교회에 올 거야. 아마도 내가 연극하는 모습을 보면 무척 좋아하실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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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의 기도는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도 엄마를 위해 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동생 겨레가 죽고 나서 죽을 것만 같았던 엄마를 살려달라고 말이다. 그건 엄마를 위한 기도는 아니었다. 엄마가 없으면 홀로 남게 될 내 처지가 두려워서 했던 기도였다. 엄마가 천국에 가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 단지 고아가 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하나님께 엄마를 살려달라고 기도 했는데 찬우는 할머니가 천국 가는 것을 위해 기도를 했다니. 나 같으면 혼자 살기 싫으니까 할머니를 살려달라고 기도했을 텐데 찬우는 고아가 되는 게 두렵지 않은 것 같았다.


“너, 만약에 할머니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

“…….”


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연한 질문을 했나? 미안한 마음에 나는 엉덩이의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내가 몸을 일으켜 세우자 찬우도 따라 일어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으로 향했다.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밑바닥에서 올라왔다. 나는 말도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음을 알았다. 밀려오는 그 어떤 감정을 정확히 ‘이것’이라고 표현 할 수 없는 건 마땅한 단어가 없어서가 아니라 감추고 싶어서였다는 것을 몰랐을 뿐. 그리고 공연히 둘러댔다.


“배가 고프다”


실은 그 반대였다. 우울했고 아주 슬펐다. 슬픔은 가슴에서 시작되는 거라고는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눈물이 나오지 않은 슬픔은 대신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래도 가슴이 아픈 것은 다행이라고 여겼다. 남에게 들킬 필요도 없이 몰래 아프면 되니까. 배가 고프다고 내뱉고 나니 정말 배가 고파졌다.


“찬우야, 우리 라면 사먹을래?”

“라면?”


찬우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마치 돈을 꺼낼 것처럼.


“그냥 집……에 가자.”

“따라와. 내가 사줄게.”


나는 성큼 앞으로 나섰고 찬우는 내 뒤를 따랐다. 학교 앞에 있는 분식점으로 갔다. 테이블이 두 개 밖에 없는 식당이다. 떡볶이를 주걱으로 뒤적이던 아줌마가 컵에 물을 담아왔다.


“아줌마, 라면 두 개만 주세요.”

“라면 두 개? 알았다.”


분식점 아줌마는 가스총으로 불을 켜고 뜨거운 물을 담은 냄비를 올려놓았다. 라면 물은 빨리 끓었다. 아주머니가 라면봉투를 찢어 마른 면을 끓는 물속에 넣는 것을 찬우와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배고파서 말할 기운도 없었다.


“…….”

“…….”


아줌마가 긴 젓가락으로 익은 라면을 그릇에 나눠담고 마지막으로 국물을 붓는 것을 보며 찬우는 성급하게 수저통에서 젓가락을 꺼냈다. 은색 쟁반에 라면을 들고 온 아줌마에게서 시큼한 식초냄새가 났다. 코앞에 풍겨지는 라면 국물냄새를 맡자 입안에 침이 고였다. 후르륵, 후르륵. 입술 안으로 라면이 빨려 들어가는 소리는 요란했다. 시큼한 라면국물까지 남김없이 들여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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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이제야 살 것 같다.”

“…….”

“아줌마, 여기 잔돈 거슬러주세요.”


“…….”

잔돈을 받아 지갑에 동전을 집어넣는데 그제 서야 찬우는 입을 열었다.


“미래야.”

“응?”

“고마워.”

“뭐가?”

“라면 사줘서.”

“겨우 라면 한 그릇 사줬다고 아부하니?”

“그게…… 아니고.”


찬우는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대신 찬우의 귀밑이 발그스름해졌다. 찬우는 귀뿐이 아니라 뺨까지 벌겋게 색이 변했다. 나는 사람얼굴을 가리켜 왜 살색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감정에 따라 얼굴색이 저렇게 바뀌는데. 까만 얼굴, 하얀 얼굴, 노란 얼굴, 보랏빛 얼굴, 누런 얼굴. 따져보니 얼굴색깔은 셀 수 없이 많았다.


“…….”

“바보.”


나는 홱 분식점을 나섰다. 왜 찬우더러 바보라고 그랬는지 모른다.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게 바보라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내 감정이 어떤 것인지 딱 꼬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슬픈 건지, 우울한 건지. 아니면 두려운 건지. 아마 찬우의 마음도 나처럼 복잡했나보다. 그래도 찬우는 나처럼 엉뚱하게 배가 고프다는 말로 자신의 감정을 둘러대지는 않았다.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을 뿐.


“…….”

“…….”

“난 나중에 크면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와주고 싶어.”

“너는 지금도 어렵거든.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너라고.”

“그건 알아. 그러니까 지금은 말고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그렇게 할 거라고.”

“…….”


여태껏 나는 나밖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누구를 돕겠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 하나도 추스르기가 버거운데 주변을 돌아볼 여유는 정말로 없었다.


“난 사람들이 좋아. 나도 너처럼 가족들과 같이 살고 싶어.”

“네가 할머니랑 사니까 가족이 어떤 건지 잘 몰라서 그래.”

“…….”


불현듯 화를 내는 아버지가 무서웠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엄마를 생각하면 우울해졌다. 겨레가 나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면 어디론가 멀리 달아나고만 싶었다. 찬우에게 무슨 말이라도 설명해야 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족은 나중에 크면 자연히 만들 수 있다는 걸. 어차피 사람은 부모를 떠나 결혼을 하게 되면 자연히 가족이 생긴다는 걸 말해줬어야 했다. 하지만 결혼이란 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해주진 못했다.


겨우 지친 다리를 끌고 집 앞에 도착하자 멀리 대머리 바위가 어렴풋이 보였다. 찬우는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다.


“미래야!”

“응?”

“넌 어른이 되면 독박골을 떠날 거니?”

“아니.”

“그럼, 됐어.”

“그건 갑자기 왜 물어?”

“그냥.”

“넌 왜 자꾸 말을 하다 말아! 사람 속 터지게.”


나는 화 낼 일도 아닌데 나는 심통을 부리며 집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양말을 벗었다. 물방개처럼 발밑에 물집이 올라왔다. 포도 밭 너머까지 걸어가고 있을 찬우가 떠올랐다.


‘그때 찬우 발바닥도 물집이 잡혔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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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불광동 다 왔습니다.”


어느새 택시는 지하철 불광역 입구에서 멈췄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구기터널로 향하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저 멀리 족두리처럼 새끼 바위를 얹고 있는 대머리바위가 보였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에는 먹구름이 꺼멓게 몰려있었다. 구기터널로 향하는 가로수 길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산으로 향하는 조무래기들이 어른거렸다. 메뚜기 팔뚝 같은 다리로 이산저산을 뛰어다니던 꼬맹이들이 조각조각 생각 속에서 퍼즐처럼 제자리를 찾아들었다.

이미 흘러가서 현재일 수도 없는 시간. 이 돌작밭 어딘가에 흘리고 다녔을 유년의 조각들이 무덤덤하고 밋밋한 기억사이로 떠올랐다. 나에게 독박골은 가슴 깊숙이 박혀있는 유리조각이었다. 성장이 배양되다 말라버린 계절처럼 초라했고 가련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파편은 숨을 쉴 때마다 가시처럼 폐부를 찔렀다. 나는 가슴 어디엔가 깊이 박혀있던 추억의 편린들을 더듬더듬 꺼내며 독박골에, 지금 서 있다.



-다음은 장편소설 독박골 산1번지 "X축에서 만난 과거"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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