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독박골은 가슴 깊숙이 박혀있는 유릿조각이었다
"서, 선생님, 저 이명훈입니다. 오늘 아침 신문 보셨나요?”
“아, 아니. 아직.”
“선생님에 대한기사가 신문에 났어요.”
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신문 일면마다 나에 대한 기사로 장식되어있었다.
‘양미래, 조앤 플린으로 살아온 그녀가 과거로 돌아오다’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사진작가 조앤 플린의 본명은 양미래였다. 아버지 양준만과 어머니 길은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독박골에서 성장하게 된다. 지금은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당시의 생활이 모두 사라졌지만 독박골은 그녀가 살 당시만 해도 아주 낙후된 동네였다.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수도시설조차 갖춰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일용직에 종사했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없는 동네에 방치되다시피 했던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가 세계적인 사진작가가 되어 한국을 다시 찾았다. 한국은 그녀를 잊었겠지만 그녀는 한국을 잊지 않고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다. 이렇게 빨리 내가 양미래라는 것이 드러날 줄은 몰랐다. 허겁지겁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가방을 꺼냈다. 하지만. 동작을 멈췄다. 장일춘, 그가 나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는 건가.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에게 전화를 걸지 않을 수 없었다. 멈칫. 그는 지금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 쪽에서 먼저 연락을 취한다면 그의 작전에 말려드는 것이다. 뭐지? 그가 요구하는 것은? 돈?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고갔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루 미국으로 돌아갈까?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의구심만 키우게 될 거야. 완전히 내 얼굴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걸 염두에 두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그런데. 내가 왜 피해 다녀야 하는 거지? 장 기자가 남긴 명함을 꺼내들었다.
“여…보…세…요.”
“양미래씨?”
그는 내가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았는데 대뜸 내 이름을 불렀다.
“전화가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지. 햐, 오늘아침 신문은 양미래 씨 기사로 신문마다 도배를 했더군.”
“무엇 때문이시죠?”
“오, 그렇게 흥분할 것까지야. 기자의 의무란 남들이 알고 있지 않은 사실을 정확하게 먼저, 빨리 알아내는 거거든. 그런데 내가 정말로 궁금해서 말이야. 무슨 재주로 미국까지 건너가서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는지. 내가 쪼르르 꿰고 있는 미래의 어린 시절로 봐서는 그런 위치에 오르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야. 이제 조금 있으면 각 여성 잡지사에서 연락이 물밀듯이 올 거야. 그 사람들은 기사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냄새 맡는 데는 도사지. 뭐, 어느 정도는 내가 알려줄 수도 있지.”
“저에 대해 알려주신다고요?”
“그럼. 당신 아버지에 대해서, 아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나도 당신에 대해서 좀 알죠. 당신은 협박하기 위해 천막교회에 오지 않았던가요?”
“협박이라니? 그건 당치도 않은 말이야.”
“그럼, 왜 성극 하는 날 교회로 찾아왔던 거예요.”
“그건 본능적인 기자의 직관력이라고나 할까? 어제 양미래씨가 혼자 불광동에 갔다는 걸 알아 본 내 직관력은 천부적이야.”
“저를 미행했었나요?”
“미행? 그럴 리가 있나? 내가 미래씨한테 뭘 뜯어먹을 게 있다고. 다만 진실을 밝혀주고 오해를 풀어주고 싶어서였지. 그게 임무라고. 우리 이럴 게 아니라 독박골을 한 번 가보지 않겠어? 그곳은 지금 많이 바뀌어서 말이야. 옛날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지. 자, 가자고. 내가 들려줄 얘기도 많고, 나도 또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지금 내가 호텔 로비에 있으니까 어서 내려 오셔.”
“호텔 로비에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허겁지겁 가방을 열고 진열대 위에 꺼내놓았던 소지품을 챙겼다. 더는 이곳에 머물 수가 없었다. 유목민처럼 떠돌았던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엄마는 흉한 꿈만 꾸어도 짐을 쌌다. 살았던 동네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옮겨 다녔다. 이사를 다니는 동안 짐은 점점 더 단촐 해졌다. 택시 안에 실을 수 있을 정도로만 꾸렸다. 나는 책가방과 교복을 챙겼고 엄마는 몇 가지 옷가지와 귀중품을 챙겼다. 아버지의 훈장은 언제나 내가 챙겨들었다. 혼자 들기에는 거추장스러웠지만 엄마더러 도와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 옆구리에 들린 훈장을 힐끔 보았을 뿐 이렇다 저렇다 참견하지 않았다.
“빈 방 나온 거 있어요?”
엄마는 복덕방에 가면 제일 작은 방으로 달라고 꼭 토를 달았다. 전입신고도 아주 늦게 해서 학교에 주소를 알리지 않고 다녔다. 학교에서 거주지 주소가 필요하다고 요구할 때는 복덕방 아저씨의 도움을 구했다.
“저, 아저씨! 이곳 주소를 좀 빌려주세요.”
“그게 뭔 소리요? 지금 이사 간 그 집 주소로 하면 되지.”
“사정이 있어 전입신고를 좀 늦게 해야 하거든요.”
“…….”
“아이 학교 전학 문제 때문에 그러니까 좀 도와주세요.”
“쫓기는 신세슈?”
“남편이… 우리를 찾아내면 괴롭힐 거예요.”
사람들은 남편에게 쫓기고 있다는 말만 하면 동정을 베풀었다. 더 이상 캐묻지 않고 필요한 서류에 주소를 넣도록 도와주었다. 사실은 아버지를 피해 다녔던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겉으로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행적을 찾고 다니는 듯 했다. 엄마는 이따금씩 납작만두를 사왔다. 그 만두를 어디서 사왔는지 엄마에게 묻지 않았다. 엄마가 대조시장에 가면 항상 사오던 납작만두였다. 엄마는 나 몰래 독박골을 맴돌았고 나도 지금까지도 독박골 주변을 맴돌았었다. 떠나지 않고 맴돌았던 결과가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니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살 순 없지.
새벽에 내빼듯 용달차는 우리 가족을 싣고 독박골로 향하던 날, 생판 모르는 낯선 동네보다는 외할머니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가는 건 다행이라고 여겼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고 한참 달리니 멀리 북한산자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넙적한 바위가 박혀있는 산등성이는멀리서 보니 꼭 털 빠진 똥개 등짝 같았다. 갈라진 바위 틈 사이로 노랗게 핀 개나리가 질 무렵에 우리 식구는 그렇게 독박골로 들어섰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우리 가족이 살 수 있는 장소는 서울 땅에서는 이곳밖에는 없다는 것을.
용달차가 우리를 내려놓은 곳은 대문도 없이 방문만 달랑 있는 집 앞이었다. 집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방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방 옆에 붙어있는 부엌도 무척 작았다. 부엌공간이 너무 작아 찬장과 전기스토브는 밖에 내놓아야했다. 엄마는 부엌으로 들어가는 디딤돌 옆에 돌을 궤고 그 위에 찬장을 올려놓았다. 엄마는 연신 조심하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겨레가 아버지 무공수훈장이 들은 액자를 꺼내 옮긴다고 끙끙 거렸기 때문이다.
“야, 그거 조심해. 잘못하다간 유리가 깨진단 말이야.”
내 핀잔에 혓바닥을 낼름 내밀던 겨레는 결국 액자 옮기기를 포기하고 빗자루니 쓰레받기니 하는 따위의 자질구레한 소품들을 꺼내 방안으로 옮겨놓았다. 이불을 싼 보따리가 옮겨지고 반닫이를 내려놓은 후 용달차는 덜컹덜컹 몸을 흔들며 떠났다.
바람이 불면 당장 날아갈 것 같은 회색 슬레이트 지붕은 어찌나 낮은지 손을 뻗으면 손끝에 닿을 것 같았다. 집 뒷 켠에는 작은 도랑이 있었는데 홈만 패였지 물은 흐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꽤 할 일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대패로 나무판을 밀기도 하고 망치를 들고 다니며 방 문짝을 수리했다. 국방색 군복 바지에 검불이 붙어있는 줄도 모르고 움직였다. 군인도 아닌 아버지는 언제나 국방색 군복바지만 입고 있었다. 그 바지는 평상복이자 작업복이었다. 군복바지 때문인지 외할머니는 아버지를 ‘양 대위’라고 불렀다.
학교에 처음 가는 날 나는 입학식 때 외할아버지가 사주셨던 빨간 가방을 챙겨들었다. 가방은 아직도 새것처럼 반짝거렸다. 수업시간표를 모르니 가방 안에는 공책 한 권과 필통만 넣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필통이 털럭털럭 소리를 냈다. 운동장에 들어서자 뻥 뚫린 운동장 바닥에서 쏴한 바람소리가 가슴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엄마와 나를 닮은 그림자가 앞장을 섰다. 철봉대가 드리운 그림자도 나를 향했고 담장 아래 심겨진 플라타너스 나무가 드리운 그림자도 우리를 따라왔다. 나도 모르게 엄마 손을 꽉 잡았다. 이번에는 나를 따라오던 그림자를 밟으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층계를 올랐다. 엄마와 나는 복도를 따라 걸어 교무실이라는 표지판이 걸려있는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교실에 남아있던 선생님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았다.
“선생님, 오늘 처음 전학을 온 양미래인데요.”
“아, 그러세요. 양미래라… 3학년 7반이군요. 이쪽으로 오시죠.”
그 남자 선생님은 우리를 복도 끝으로 데리고 갔다. 활짝 문이 열린 복도 끝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햇살이 가득 몰려있었다.
“오늘 선생님 반에 새로 전학 온 학생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교감선생님.”
턱이 길쭉한 여자 선생님이 아래턱을 내밀고 웃으며 나와 엄마를 맞이했다.
“선생님, 우리 미래를 잘 부탁드립니다.”
엄마는 나를 학교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홀로 남게 된 나는 뒤통수가 뻣뻣해지고 목 뒷덜미가 저릿저릿 했다. 멀찍이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엄마를 불러 세우고 싶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서니 아이들이 나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오늘 우리 학교에 전학 온 친구예요. 이름은 양미래라고 해요. 처음 와서 모르는 게 많을 테니까 우리 친구들이 친절하게 알려주세요.”
합죽이 선생님은 내 양 어깨에 두 손바닥을 올려놓고 힘을 주었다. 왜 선생님이 내 어깨에 손을 얹고 힘을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미묘한 압력은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가리키는 곳에 앉았다. 맨 뒷자리였다. 다음 주에 자리배정을 해준다고 했지만 난 3학년 올라갈 때까지 사물함 옆에 놓인 책상에 짝꿍 없이 혼자 앉았다.
쉬는 시간이 두 번이 지났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 안은 먼지가 풀풀 나도록 소란스러웠다. 남자 녀석들이 공연히 사물함 문을 열고 닫으며 빗자루를 꺼냈다가 도루 집어넣었다. 하지만 녀석들이 나를 힐끔힐끔 바라 봤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다음 수업시간을 걱정해야 했기에 주변을 신경 쓸 처지가 아니다. 빈 가방만 털레털레 들고 왔으니 하루 종일 받는 수업이 지겨울 수밖에. 등교첫날이니 봐줄 거라는 안도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아이들이 색종이를 꺼내고 가위를 꺼낼 때 멋쩍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넌, 어디 사니?”
3교시가 되자 앞자리에 앉은 진숙이라는 아이가 말을 걸었다.
“저기, 독박골.”
“…….”
진숙이는 그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난 ‘독박골에 사는 아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는 몰랐다. 내가 독박골에 산다는 말에 반응을 보였던 건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마시던 남자 애였다.
“나도 독박골에 살아. 내 이름은 찬우야.”
“그래? 반갑다.”
가뜩이나 낯설어 얼이 빠졌는데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를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다행히도 이 괴이한 분위기는 다시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아예 독박골에 뿌리를 내려 산이 되고 가을이 되며 개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 다음은 장편소설 독박골 산14번지 "제11화 하늘에서 뛰노는 아이들" 편이 이어집니다-